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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탑 속에 간직된 보물, 삼국시대 사리장엄구
글쓴이 tntv 등록일 [2018.12.27]
사리(舍利)는 부처님의 열반 후 화장을 하여 나온 유골을 말하며 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이 탑이다. 즉 불교에서 탑의 존재 이유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것이고, 탑에 사리를 봉안할 때는 금, 은, 동, 유리, 수정 등으로 만든 사리용기를 여러 겹 포개어 봉안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사리는 신라에만 전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백제의 왕흥사지, 미륵사지에서도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백제에도 사리가 전래되어 탑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고구려의 사리장엄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구려에도 사리를 봉안했던 사리장엄구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01.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보물 제1767호) 중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 청동합 ⓒ문화재청 02.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은 가장 바깥에 청동제의 원통형 사리합을 두고 그 안에 은으로 만든 사리호, 그리고 보다 작은 금제 사리병을 중첩하여 안치한 3중의 봉안 방식을 취하였다. ⓒ문화재청

최초의 사리 전래와 신라의 사리장엄구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흥왕 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는데, 한반도에 최초로 전래된 사리에 대한 기록이다. “十年春 梁遣使與入學僧覺德送佛舍利, 王使百官, 奉迎興輪寺前路” 진흥왕 10년인 549년 중국 양나라에서 사신과 승려 각덕을 파견하여 사리를 보냈고, 진흥왕은 백관에게 명하여 흥륜사 앞에서 맞이하였다는 내용이다. 549년에 신라에 전래된 사리는 사리를 봉안할 사리장엄구와 함께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신라는 양나라의 사리장엄법식을 따라 탑에 봉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신라의 가장 오래된 사리장엄구로, 634년에 건립된 분황사 모전석탑의 사리장엄구는 돌로 만든 석함과 은합, 유리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을 놀라게 한 백제의 사리장엄구

백제에 사리가 전래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588년 백제가 일본에 사리를 전해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백제에도 사리를 봉안했던 탑과 사리장엄구의 존재는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좀처럼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백제의 사리장엄구의 흔적은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이미 폐기 상태였기 때문에 사리장엄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치형의 석조사리감에는 오른쪽에 세로로 ‘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백제창왕십삼년태세재)’, 왼쪽에 세로로 ‘丁亥妹□公主供養舍利(정해매□공주공양사리)’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창왕(위덕왕) 13년인 567년에 능산리 절터의 목탑에 사리가 봉안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을 놀라게 한 백제의 사리장엄구는 창왕명 석조사리감 발견 이후 12년 후인 2007년 부여 왕흥사지에서 발견되었다.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네 모서리를 귀죽임하여 지붕 모양을 한 녹정형 석제 뚜껑을 들어내자 장방형 사리공 안에서 청동합,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이 발견되었다. 청동합의 몸체 표면에는 6행 29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577년 창왕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사찰을 만들고 목탑에 사리장엄구를 봉안한 것을 알 수 있다. 왕흥사지 사리장엄구는 녹정형 석제 뚜껑을 포함하면 ‘석-동-은-금’의 4중 구조로 되어 있고, 금제병에 사리를 넣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왕흥사지 사리장엄구는 완벽한 조합으로 발견된 최초의 백제 사리장엄구이고, 녹정형 석제 뚜껑과 청동합, 은제호, 금제병은 577년 당시 백제에서 탑에 사리를 봉안할 때 중첩되는 재료와 사리용기의 형식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009년에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577년 왕흥사지 사리장엄구에 이은 백제의 두 번째 사리장엄구이자 금제사리봉영기가 발견되어 639년에 미륵사지 석탑에 봉안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륵사지석탑 심주석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금동외호와 금제내호, 유리병의 3중 구조로 되어 있고, 심주석을 포함하면 ‘석-금동-금-유리’의 4중 구조로 중첩되어 있었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외호와 금제내호는 왕흥사지 목탑지 발견 사리장엄구의 은제사리호와 형태적으로 유사하여 백제 사리장엄구의 양식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창왕명 석조사리감을 비롯해 왕흥사지 사리장엄구,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는 모두 왕실 발원으로 탑에 봉안되었고, 시기적으로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해당하고 있어 백제에 사리가 전래된 기록은 없지만, 567년 조성된 창왕명 석조사리감을 비롯해 588년 일본에 사리를 전해 준 기록을 참고하면, 신라에 사리가 전래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백제에도 사리가 전래되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사리장엄구를 조성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리기 舍利器 사리를 봉안할 때 사용하는 사리병이나 사리함, 사리호 등의 용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유리나 수정으로 된 병 모양의 용기에 사리를 담은 뒤 이것을 다시 은이나 동으로 된 여러 겹의 용기 안에 넣어 불탑에 안치한다. 그래서 내용기(內容器)·외용기(外容器)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고구려의 사리장엄구는?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한 고구려는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사리장엄구를 조성했을까? 1945년 이전 고구려의 사찰터 발굴에서는 탑지가 발견되었다. 탑지의 발견은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탑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고구려도 백제와 같이 사리의 전래기록은 없고, 현재까지도 고구려의 사찰터에서 사리장엄구의 발견 소식은 없다. 그렇다면 고구려에는 사리 전래와 사리를 봉안할 사리장엄구의 조성이 없었던 것일까? 중국 섬서성 남전현 법왕사지 출토(7세기)의 석제 녹정형 사리합의 외면에 새겨진 분사리도(分舍利圖)에는 조우관(鳥羽冠: 새의 깃털을 장식으로 꽂는 관모)을 쓴 인물이 표현되어 있어 고구려의 사신으로 추정되고, 『광홍명집(廣弘明集)』 권17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사신이 수 문제에게 사리를 청하여 허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면 고구려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탑에 사리가 봉안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고, 머지않은 시기에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통일신라의 사리장엄구

신문왕은 682년 아버지인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아 감은사를 창건하였다. 감은사의 창건은 문무왕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만, 통일 이후 쌍탑가람의 등장과 새로운 사리장엄구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59년 감은사지 서탑에서, 1996년 동탑에서 사리장엄구가 각각 발견되었다. 감은사지 서탑과 동탑의 사리장엄구는 금동외함-전각 모양 내사리기-수정사리병으로 구성되지만, 세부적으로는 차이를 보인다. 전각 모양 내사리기는 동탑의 경우 중앙 화염보주 주위에 4구의 승려와 사천왕이 있어 주악상과 무동이 장식된 서탑과는 차이를 보이고, 서탑 사리장엄구에는 없는 사자가 기단에 장식되어 있는데, 둘 다 화려하면서도 세밀한 장식이 돋보인다. 감은사지 동서탑의 사리장엄구는 양나라의 사리장엄구를 따랐던 신라의 사리장엄구가 통일 이후 새로운 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감은사지 동서탑의 사리장엄구 이후 통일신라의 사리장엄구는 다양한 형식으로 제 작되며, 건탑 세력의 확대와 조탑경(造塔經: 탑을 세울 때 근거가 되는 경전)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영향으로 법사리와 작은 탑이 제작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탑 속에 봉안되는 사리장엄구는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불교의 교주인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기 때문에 조성 당시 최고의 재질을 사용하여 최고의 공예적 기술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03. 보물 제1991호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639년(무왕 40)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 금동제 사리외호(金銅製舍利外壺),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를 비롯해, 각종 구슬 및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 6점으로 구성되었다. ⓒ문화재청 04. 보물 제366호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국립중앙박물관 05. 보물 제1359호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국립중앙박물관 06. 국보 제288호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백제 때 사리를 보관하는 용기로, 왼쪽과 오른쪽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창왕(위덕왕) 13년인 567년에 능산리 절터의 목탑에 봉안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글. 이용진(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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