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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가을, 백제문화제 준비에 한창인 백마강 유역을 찾아 - 백마강
글쓴이 tntv 등록일 [2018.09.11]
너무 더운 여름을 지내고 다시 맞은 가을, 바람이 달라지니 비로소 숨 쉴만하다. 뜨거운 햇살을 견뎌낸 곡식들은 속부터 여물어 이제 가을걷이 준비에 한창이다. 그리고 삼국시대, 백제의 도읍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백마강 유역 부여는 백제문화제 준비에 한창이다.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 한류의 원조를 표방하며 매년 가을 성대하게 열리는 백제문화제는 벌써 64회를 맞이했다. 올해는 9월 14일부터 22일까지 열릴 예정인 백제문화제에서는 미마지쇼, 세계유산등재 기념 콘서트, 대백제 교류왕국 퍼레이드, 백제사비천도행렬 등을 선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백마강 유역을 걷기로 한다. 삼천궁녀의 전설이 어린 낙화암이 이번 여행의 시작점이다.

부여 주변을 이루는 금강 하류를 일컫는 백마강

백마강은 금강군 부여읍 정동리의 앞 범바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흘러간 강은 부여읍 현북리 파진산 모퉁이까지 약 16km를 흐른다. 강의 이름이 백마강이라 불린 것은 백제 말기보다 160여 년 앞선 무령왕 시대부터였다. 백마강은 금강 하류 중에서도 곡류가 뚜렷한 곳이라 주변에 구릉이 있고 하류에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그야말로 도읍이 발전할만한 요소를 모두 갖추었던 곳. 백제 중흥의 역사가 이곳, 백마강 일대에서 일어났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삼천궁녀의 전설이 어린 낙화암을 바라보며

아직 해는 뜨겁지만 한여름에 비할까? 바람이 선선하니 걷기 좋은 날씨다. 부여 백마강 일대에서 부지런한 발품을 팔도록 계획을 짜놓고 보니 마음이 바쁘다. 낙화암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싶어 구드래 선착장에 서본다. 멀리서도 한눈에 바위 절벽이 보인다. 백제의 흥망성쇠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역시 삼천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의 일화다. 그 후 1929년 이 자리에는 유림들의 의지로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섰다. 시기는 다르지만 두 유적지 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설움을 말해주는 것이라서인지 쓸쓸하다. 마침 선착장에서는 황포돛배를 단 배가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한참을 기다리고 있다.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을 유유히 흐르며 햇살과 강바람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갈 길이 머니, 패스! 발길을 돌려 국보 제9호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러 간다.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백제 역사유적지구의 대표적인 유적, 사적 제301호 정림사지는 걷기에 상쾌하다. 정림사지는 사비 시기 도성의 중앙에 위치했던 절터다. 도심에 세워진 절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란다. 너른 절터를 걸어가니 바로 눈에 띄는 국보 제9호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딱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다. 탑을 받친 기단이 좁고 낮으며 지붕돌인 옥개석이 얇고 끝이 살짝 올라간 것이 목탑의 구조와도 닮았다. 그러나 149장 화강암으로 쌓은 것으로 석탑의 우아함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정림사지에서 하나 더 눈여겨 볼 유적은 경내에 안치되어 있는 보물 제108호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이다. 약간은 어설픈 모양의 석조여래좌상은 첫눈에도 매우 친근하게 느껴진다. 왠지 비례가 맞지 않는 이 좌상은 화재로 인해 손실된 얼굴부분의 머리와 보관을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몸체의 마멸도 심해서 오른팔과 왼쪽 무릎은 찾아볼 수 없다. 너무 완벽하지 않아서 도리어 완벽해 보인다고 할까? 내친 김에 백제의 유물 유적을 더 보고 싶어 바로 옆에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한다.

01. 낙화암이 바라보이는 구드래 선착장 02. 백제 최후의 날에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는 낙화암 꼭대기에 세워진 백화정은 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에 세운 정자이다. 03. 우리나라 정원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궁남지

금동대향로에서 백제인의 섬세한 예술혼을 만나고

국립부여박물관에는 한성과 웅진을 거쳐 사비시대를 열었던 538년부터 660년까지의 유물이 자그마치 1만 1,000여점이나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동검이나 새발자국무늬 토기, 곱은옥, 호자 같은 것은 그 모양이 독특해 백제문화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백제인들의 세심한 예술혼은 백제 금동대향로에서 절정을 이룬다.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이것은 높이 61.8cm, 무게 11.85kg의 대작으로 왕실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봉황이 장식된 머리 부분, 신선이 살았다는 산을 표현한 뚜껑부분, 연꽃 모양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몸통 부분, 향로 전체를 떠받드는 용 모양의 받침부분으로 나뉜다. 이 향로는 백제시대의 창의성과 뛰어난 조형성을 바탕으로 당시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 공예기술 및 미술문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백제 금속공예 최고의 걸작품이다. 3전시실에는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보 제293호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을 볼 수 있다.


백제 무왕 때 만든 아름다운 정원, 궁남지와 아름다운 마을, 반교마을

부여는 경주만큼이나 곳곳이 모두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부소산성 옆에 정림사지, 정림사지 옆에 박물관, 그리고 궁남지가 모두 모여 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사적 제135호 궁남지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유적지다.

‘봄 3월에 왕과 왕비가 큰 연못에 배를 띄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역사 속에서도 확인하게 해준다. 우리나라 정원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궁남지. 연못 위 다리를 건너며 백제인들의 정원에 초대된 듯한 상상에 빠진다.

무량사로 향하는 길, 백마강을 건너 지천을 옆에 끼고 달리는 길은 호젓하다. 그러고 보니 부여 청양 지천에는 천연기념물 제533호인 미호종개 서식지가 있다. 미호종개는 몸길이 6~8cm의 작은 물고기로 하천 바닥이 가는 모래로 된 곳에서만 산단다. 지천을 따라가다보니 이렇게 깨끗하고 조용한 곳에서 사는 물고기의 모습이 무척 궁금해진다.

가는 길에 돌담길이 아름다운 반교마을에 잠깐 들렀다. 반교마을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휴휴당’이라는 집을 짓고 살아 더욱 알려진 마을이다. 나지막한 돌담과 형형색색 지붕을 인 집들, 그리고 돌담 사이에 핀 꽃들이 시골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보여준다. 마을이 어찌나 푸근한지 한참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량사 극락전을 바라보며

차를 타고 조금 더 달렸더니 무량사다. 200여m 남짓 걸으니 천왕문이 나서고 비로소 너른 사찰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보이는 곳에 보물 제185호 무량사 오층석탑과 보물 제233호 무량사 석등이 있다. 탑이 눈에 익어서 살펴보니 많은 부분이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닮았다. 지붕돌이 넓고 상층기단받침의 양식을 비롯하여 기단의 면석부재들이 모두 별석으로 구성된 점이 그렇다. 무량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보물 제356호인 무량사 극락전이다. 이 건물은 밖에서는 2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위, 아래가 구분되지 않은 통층이다. 무량사는 신라 말에 세운 사찰이라지만 손실되고 조선 인조 11년(1633)에 중건되었는데 그때 극락전도 새롭게 중건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무량사 극락전은 조선중기의 사찰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곳은 금오신화를 저술한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에 들어와 입적하고 초상화와 부도탑을 남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찰 바깥 부도군에 위치한 김시습의 부도를 보러 간다. 부도 아래 막걸리 1통과 과일이 놓여있다. 아마도 그를 추모하는 누군가의 정성일 것이다. 세상에 없을 천재로 태어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살아간 김시습 선생.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고는 ‘네 모습이 지극히 약하며 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마땅히 구렁 속에 너를 버릴 지어다’하며 자신을 평가하기도 했다. 마음이 곧은 사람들이 늘 그렇듯 자신에 대한 평가가 너무 혹독했던 셈이다. 문득 그의 삶이 더러운 물에서도 혼자 고고하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한평생을 돌아봐도 구속될 것 하나 없네, 내 곁에는 한단지의 햇차와 한줌의 향이로다’ 매월당 김시습이 남겼다는 차시(茶詩) 한편을 떠올리며 너무나 소박하고 단정한 그의 부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04.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딱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다. 05. 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무량사 석등.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06.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시대의 종교와 사상, 공예기술 및 미술 문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백제 금속공예 최고의 걸작이다. 07. 부여 반교마을 옛 담장. 나지막한 돌담과 돌담 사이에 핀 꽃들이 시골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보여준다. 08. 부여 무량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 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백마강주변 추천명소와 음식 1.삼천궁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낙화암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있는 바위 절벽, 낙화암.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수많은 백제의 여인들이 이 바위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여인들이 백마강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이 마치 꽃잎과 같았다 하여 낙화암이라 불리는 유적지. 이름은 애절하고 아름답지만 실상은 나라 잃은 백성들의 안타까운 결말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계백로 390 2.백제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구드래 둔치 - 고대 문화강국이자 한류의 원조인 백제 문화를 세계인과 더불어 즐기는 글로벌 축제로 기획, 구성한 백제문화제 - 9월 14일에서 22일까지 부여 구드래 둔치와 사비 왕궁터, 이색 창조거리 등에서 열린다. 올해는 하이테크 백제퍼레이드, 왕의 미로, 사비왕궁대연회 등 볼거리가 더해져 행사 콘텐츠가 더욱 풍부해졌다고 하니 한 번쯤 둘러보시길. *충남 부여군 일대 3.백제시대의 석탑 양식을 볼 수 있는 정림사지 - 백제시대의 절터로 사적 제301호. 1980년 발굴조사 때 발견된 기와에서 고려 현종 19년(1028)에 중건된 절이며 중건 당시 이름이 정림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절터 내에 국보 제9호인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보물 제108호인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이 남아있다. 특히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시대 석탑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백제뿐 아니라 삼국시대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4.백제 금동대향로를 만날 수 있는 국립부여박물관 - 입체적 모형과 다양한 체험 전시로 백제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보 세 점, 보물 여섯 점을 비롯해 총 유물 1만 9,000여 점, 그중 백제 유물만도 총 1만 1,000여점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새발자국무늬 토기, 곱은옥, 백제 금동대향로 등 백제인들의 섬세한 예술혼이 담긴 유물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5.궁남지의 연잎이 떠오르는 담백한 연잎밥 -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부여 궁남지에서 연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예로부터 부여 사람들은 연잎을 따다가 연잎밥을 해먹었다고 한다. 연잎밥은 잣, 호두, 대추, 밤 등을 넣고 지은 밥을 연잎으로 싸서 찌고 뜸을 들여 짓는다. 연잎밥은 대표적 사찰 음식인데 연꽃이 극락세계를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연잎밥을 만드는 과정에 오랜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적 가르침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일대 6.극락전도 보고 김시습도 보고 무량사 - 대한 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 사찰이 창건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은둔하다가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경내에 보물 제356호인 극락전, 보물 제185호인 오층석탑, 보물 제233호인 석등이 있으며 김시습의 부도가 남아 있다.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글. 신지선 사진. 김병구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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