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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구경거리이자 심오한 사유의 매개, 영등놀이와 만석중놀이
글쓴이 tntv 등록일 [2018.07.23]
구경거리이자 심오한 사유의 매개, 영등놀이와 만석중놀이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인형을 만들어 조종하고 가면을 쓰고 놀아왔다. 각양각색의 가면을 얼굴에 쓰는 것은 물론이고, 손으로 줄로 심지어 발로 인형 조종을 하며 놀기도 했다. 그림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인간은 신기한 구경거리로 혹은 심도 깊은 예술적 주제로 그림자를 활용했다. 그림자는 예부터 예술의 대상일 뿐 아니라 철학의 주제이기도 했다. 유명한 플라톤(Platon)의 ‘동굴의 비유’에 따르면 ‘인간들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동굴에 갇혀,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참된 실재로 알고 살아가는 죄수와 같은 존재’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낱 가상의 그림자극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언급을 통하여, 우리는 그림자극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자극은 신기한 구경거리이기도 했지만, ‘헛것을 통해 헛것임을 깨닫게 하는’ 심오한 것이기도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01. 만석중놀이는 음력 사월초파일에 이루어진 인형을 활용한 그림자극이다. ⓒ국립민속박물관 02. 만석중놀이 중에서 승려들의 의례무의 하나인 범패(나비춤) ⓒ국립민속박물관

신기한 구경거리로서 영등놀이

플라톤의 언급을 통해 그림자를 활용한 놀이가 고대에서부터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자극은 고대 서구에서만 벌어졌던 것은 아니다. 중국의 사기(史記) 를 보면 기원전 121년에 그림자극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는 기록이 나타난다. 어쩌면 인류 최초의 연극은 그림자극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관련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그림자를 이용한 놀이와 예술이 존재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짐승과 사물의 모양을 촛불이나 호롱불에 비추어, 벽이나 창호문의 표면에 투사하는 놀이가 그 한 사례인데, 흔히 그림자놀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영등놀이 역시 그림자를 활용한 구경거리이다. 영등놀이를 위해서는 다소 복잡한 영등을 만들어야 한다. 회 전 장치, 종이로 만든 사람과 동물 모양, 그리고 이를 비추기 위한 등불이 필요하다. 안쪽에 등불이 자리하고, 그 바깥에 말 탄 사냥꾼·사냥매·사냥개·호랑이·이리·사슴·노루·꿩·토끼 등의 모양을 종이로 오려서 붙인다. 사람과 짐승 모양의 종이들은 등불을 통하여 바깥쪽으로 비추어진다. 밖으로 비춰진 사람과 짐승의 그림자들은 고정되지 않고 회전한다. 이는 영등 안에 설치된 장치가 회전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람으로 장치가 돌아가면서 사람과 짐승들이 회전한다. 회전하는 그림자들은 마치 사냥꾼 일행이 짐승들을 쫓아 사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이다. 그림자를 활용하고 그 움직임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영등놀이이다.

03 그림자놀이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짐승과 사물의 모양을 촛불이나 호롱불에 비추어, 벽이나 창호문의 표면에 투사하는 놀이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4. 오랜 옛날부터 중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전역에 그림자를 이용한 놀이와 예술이 존재했다. ⓒ위키백과 05. 사찰에서 행해지던 만석중놀이에 쓰이는 만석중 ⓒ한국박물관연구회 06. 만석중놀이 무대 뒤의 모습 ⓒ국립민속박물관


헛것으로 삶이 헛됨을 드러내는 만석중놀이

영등놀이 말고도 우리에게는 만석중놀이라 불리는 그림자극이 있다. 김재철이 1930년대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만석중놀이는 영등놀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어쩌면 영등놀이의 발전된 형태가 만석중놀이일 수도 있다. 만석중놀이에는 영등놀이에서처럼 2차원적인 종이인형이 등장한다. 노루, 사슴, 잉어, 용 등이 그것이다. 이 종이인형들이 그림자를 통해 구경꾼들에게 보여지게 된다는 점도 유사한 점이다. 그런데 종이인형 각각에 나름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목, 다리, 꼬리 등에 관절을 만든 것은 만석중놀이가 갖는 독특함이다. 영등놀이의 종이인형들은 회전 장치를 통해 움직였다면, 만석중놀이의 종이인형들은 나름의 관절 장치를 통해 움직이는 것이다. 만석중이라는 입체적 나무인형이 등장하는 것도 만석중놀이가 갖는 특징이다.

만석중놀이는 무언극이다. 어떤 유기적인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림자를 통해 비쳐지는 종 이인형들은 음악에 맞추어 일정한 움직임만을 보일 뿐이다. 노루와 사슴이 서로 물어뜯고 차며, 용과 잉어가 여의주를 가지고 희롱을 한다. 입체적 나무인형인 만석중은 연행 내내 손으로 얼굴과 가슴을 치며 뚝딱 소리를 낸다. 그림자를 통해서 비쳐지는 인형들, 그 인형들의 다툼과 희롱의 움직임, 그리고 자신의 몸을 쉴새 없이 때리는 만석중 인형의 존재 등은 신기한 구경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만석중놀이는 그 신기함만을 즐기는 것에 그치는 것 같지는 않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사슴과 노루가 다투고, 잉어와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사이에서 만석중은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치고 있 다.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그것은 세상사의 헛됨 혹은 덧없음을 자각하라는 전언은 아니었을까? 그럴 경우 오랜 예술적 주제이자 철학적 주제인 그림자와 상통하게 된다. 덧없는 그림자로 표현한 극을 통하여 삶의 덧없음을 말하려 한 것이 되는 것이다. 실제 1980년대에 심우성을 중심으로 복원한 만석중 놀이는 이러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때의 만석중놀이는 1930년대 김재철의 조사 자료, 개성에서의 만석중놀이 관극 경험, 경봉스님의 증언 등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복원된 만석중놀이에서는 화청(和請) 소리가 극 전반에 깔리는 가운데 십장생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용 과 잉어가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 만석중 또한 극이 진행되는 내내 자신의 몸을 치며 뚝딱거린다. 복원된 만석중놀이는 막 앞에 등장한 스님의 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내용 전개를 통하여 만석중놀이는 아등바등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의 헛됨과 갈등의 의미 없음을 말하고 있다. 묘하게도 만석중놀이는 헛것의 대명사인 그림자를 통하여 삶의 덧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표현하는 매체가 묘하게 어울리고 있다.


‘그림자 취급’을 받는 영등놀이와 만석중놀이의 현재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아진 현재 구경거리로서의 영등놀이는 그 신기함이라는 흥미요소를 많이 상실했다. 일제 강점 이후 단절된 영등놀이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영등놀이는 그림자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 강남구에 자리한 봉은사에서 주마등(走馬燈)을 복원하고 있어 주목할만하다. 주마등 역시 그림자를 활용한 구경거리였다. 주마등은 한지로 만든 큰 원통 안에 켜진 촛불의 뜨거운 열로 대류현상을 일으켜 원통을 돌게 만든 것이다. 한지로 된 원통엔 말 네 마리가 그려져 있어서 원통이 돌면 말이 위 아래로 치솟았다가 가라앉으며 달리는 형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마등은 영등과 흡사하다. 그림자를 만들고 회전시키는 양상이 같은 것이다. 영등놀이에서의 영등이 바람을 통하여 회전하는 것이었다면, 주마등은 불기운으로 회전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앞에서도 살폈듯이 만석중놀이는 1980년대 복원을 했다. 하지만 그 전승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림자를 활 용한 대표적인 전통연희인 만석중놀이 역시 그동안 그림자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에, 복원 이후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한대수가 중심이 되어 만석중놀이 전승을 하고 있는데,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보존회를 만들어 고군분투 중이다. 그림자 취급을 받아 왔지만, 그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만석중놀이 전승자들은 보여주려 하고 있다. 문화 활동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지역 소도시에서, 헛것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그림자를 활용한 전통연희를 전승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인 동시에 잘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거창 지역의 만석중놀이 전승자들의 의지는 결연하다. 물론 전승자들의 의지만으로 순탄치 않은 전승 환경이 좋아질 수는 없다. 다행히 최근에 만석중놀이가 전문가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림자극 만석중놀이를 더 이상 그림자 취급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주변적이고 낯선 것에 주목하는 만석중놀이 전승 자들과 관계 전문가들의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만석중놀이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글. 허용호(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교수)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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