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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35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求禮 華嚴寺 四獅子 三層石塔)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11.04]
▲각황전 옆, 사사자 삼층석탑으로 가는 안내판. 적멸보궁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재 대규모 공사가 진행중이다.
▲각황전 옆, 사사자 삼층석탑으로 가는 안내판. 적멸보궁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재 대규모 공사가 진행중이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운 절로, 호남 제일의 사찰답게 많은 부속 건물과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등의 중요한 유물들이 전해온다.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


지리산(智異山) 화엄사(華嚴寺)

삼국시대 지리산의 옛 이름은 두류산(頭流山), 며칠 계속 안개처럼 연기가 피어 오르는 곳을 마을 주민 여럿이 찾아 올랐다.

계곡의 한 움막에서 독경소리가 새어 나오니 그들이 발을 멈추고 귀를 모으자 독경이 끝나고 잠시후 한 사문이 나왔는데 그는 얼굴 생김이나 피부 등 모습이 달랐으며 말도 통하지 않아 글로써 필담(筆談)을 나누게 되었는 바 자기는 천축국에서 불법을 펴고자 인연국토에 찾아왔으며 연(鷰)이라는 짐승을 타고 비구니이신 어머니와 함께 날아서 왔다는 말에 마을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피리와 비슷한 악기를 꺼내어 입에 대고 길게 세 번 불어대니 웅장한 소리와 함께 천 년 묵은 거북만한 연(鷰)이 공중에서 날아오더니 사문 곁에 사뿐히 내려 앉았는데 그 형상이 머리는 꼭 용같고 몸은 거북이며, 몸 길이가 열자는 넘어 보이고 두 날개를 가진 짐승이었다. 사문은 연의 등에 올라타고 연은 곧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날아가는 것이었다.

일행은 감탄을 하며 연을 타고 다니시니 연존자라 할까. 비연존자(飛鷰尊者)라 할까. 의논한 끝에 연기존자(鷰起尊者)라고 부르기로 결정하였고 몇 달이 지나 연기존자도 우리말에 상당히 익숙해져서 이제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향상되었을때 마을 사람들은 법당을 건립하고자 간청을 하였고 마침내 불사를 진행하기 시작하여 설법전과 법당을 낙성하니 백제 성왕22년 갑자세(서기544년)였다.

▲화엄사 전경, 각황전 뒷쪽 '효대'라고 표시된 지역에 국보 제35호 사사자 삼층석탑이 있다.
▲화엄사 전경, 각황전 뒷쪽 '효대'라고 표시된 지역에 국보 제35호 사사자 삼층석탑이 있다.

절 이름은 그를 연기존자라 부르니 연기사(鷰起寺)라 하자 하였으나 존자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멀리 창해를 건너 화엄법문을 선양하러 온 것이니 화엄사(華嚴寺)라고 하자는 의견을 내었고 모두가 찬성하였다. 이어서 존자가 말하기를 '이 산은 멀리 백두산의 정기가 줄곳 흘러 내려와서 이뤄진 산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 일컫는다니 좋은 이름이외다. 헌데 빈도가 이 산에 처음 닿았을 적에 삼매에 들어보니 문수대성께서 일만보살대중에게 설법하시는 것을 친견하였으니 이산은 분명히 문수보살이 항상 설법하는 땅 임에 틀림이 없소. 그리니 만큼 산 이름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의 이름을 택하여 지리산(智利山)이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라 하니 그리하여 智利山(지리산) 華嚴寺(화엄사)가 되었다.


연기조사의 효심을 새긴 효대(孝臺)

이렇듯 백제시대 인도에서 오신 연기스님이 세운 지리산 화엄사에는 연기조사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기려 세운 사사자 삼층석탑이 있다. 각황전에서 108계단을 올라 산중에 자리잡은 이곳을 연기조사의 효심에 비겨 효대(孝臺)라고 부르는데 고려시대 문종의 넷째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아래와 같은 시를 읊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효대(孝臺)

寂滅堂前多勝景 吉祥峯上絶纖埃 (적멸당전다승경 길상봉상절섬애 )
彷徨盡日思前事 薄暮悲風起孝臺 (방황진일사전사 박모비풍기효대 )

적멸당 앞에는 빼어난 경치도 많은데 길상봉 위에는 한 점 티끌도 끊겼네
온종일 서성이며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날은 저무는데 효대에 슬픈 바람 이누나
다보탑과 함께 이형석탑(異形石塔)의 쌍벽, 사사자 삼층석탑


국보 제35호 사사자 삼층석탑은 이형석탑(異形石塔)이다. 이형(異形)은 전형(典形)에 대비되는 말인데 우리가 삼층석탑하면 통상적으로 이중의 기단위에 몸돌과 지붕돌로 한층을 구성하고 이를 3개층 얹은 모습을 말하는데 이것이 삼층탑의 전형(典形)이라면 이형석탑은 이처럼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팔각 사각 원형을 복잡 다양하게 구사하거나 사사자 석탑처럼 이층기단의 모습이 전혀 다른 형태를 띄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이중기단의 2층을 4마리 사자로 조각하였다. 인간세상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려 함인가. 사자 네마리가 받치는 가운데의 인물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이고 탑 앞에서 차를 공양하는 이가 연기조사라고 한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이중기단의 2층을 4마리 사자로 조각하였다. 인간세상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려 함인가. 사자 네마리가 받치는 가운데의 인물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이고 탑 앞에서 차를 공양하는 이가 연기조사라고 한다.

불국사 동탑인 다보탑(국보 제20호)도 이형석탑의 대표적인 예인데,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과 더불어 이형석탑의 완성으로 쌍벽을 이룬다는 평(評)이다.

▲이를 드러낸 모습의 사자 네 마리가 네 귀퉁이를 받치는 가운데에 선 모습은 남성적인 스님 모습으로 보인다.
▲이를 드러낸 모습의 사자 네 마리가 네 귀퉁이를 받치는 가운데에 선 모습은 남성적인 스님 모습으로 보인다.
▲탑 앞의 공양상은 연기조사 자신이라고 하는데 석등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석등을 받치는 3개의 기둥 가운데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공양하려는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탑 앞의 공양상은 연기조사 자신이라고 하는데 석등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석등을 받치는 3개의 기둥 가운데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공양하려는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사사자 석탑은 탑 앞에 공양상을 하나 더 세움으로써 공양을 바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표현하였으며, 효(孝)를 상징한다는 전설인데 아들인 연기조사가 비구니 어머니에게 차(茶)를 공양한다 해도 되고, 불자가 스님이나 부처님에게 공양을 한다해도 전혀 어색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탑 안에 서 있는 인물상을 자세히 보면 스님 복장을 한 남성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적멸보궁을 갖고 싶은 화엄사

일부에서는 연기조사 자신이 이 탑을 세웠다고 하나 화엄사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사사자 삼층석탑과 공양탑을 세웠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과 함께 마침내 대화엄사마저도 적멸보궁의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으니 5대 적멸보궁, 8대 적멸보궁도 못미더웠는지 지난 2014년말부터 내년인 2017년 하반기까지 이곳을 일제 보수, 정비함과 더불어 적멸보궁 탑전(塔殿) 복원불사가 대대적으로 진행중이다. 현재는 공사중으로 사사자 석탑을 친견할 수 없는데 공사를 마친후 고즈넉한 그곳의 풍광은 어데로 가고 잘 닦은 공원같은 탑 지역과 고래등같은 적멸보궁 법당이 고압적으로 서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다.

연기조사의 효심을 내세우던 사사자 삼층석탑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탑으로 더 높여지고 있는 지금이다.

▲각황전 옆, 사사자 삼층석탑으로 가는 안내판. 적멸보궁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재 대규모 공사가 진행중이다.
▲각황전 옆, 사사자 삼층석탑으로 가는 안내판. 적멸보궁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재 대규모 공사가 진행중이다.
어차피 절집은 부처님을 모신 곳이니 부처님 말씀이나 제자이신 스님들, 즉 불(佛) 법(法) 승(僧) 삼보가 계신 곳인고 전국에는 이미 5대적멸보궁, 8대 적멸보궁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으니 화엄사마저 적멸보궁에 집착하지 말고, 창건설화에 나오는 연기스님의 효심을 계속 높이 받들어도 무방할텐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제발 크고 화려함으로 문화재도 빛이 쇠하고 절집도 산사(山寺)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빌어 본다.

원문보기
http://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22/20160122027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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