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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김희진 보유자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8.16]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김희진


  • 색에 반하고 짜임새에 홀려 '매듭 엮기 50년'
    생동하는 끈이 모여 이룬 하모니여러분도 들리나요?

형형색색 고운 빛깔의 명주실을 꼬아 끈을 만들고, 그 끈을 다양한 방법으로 엮어 모양을 내는 '매듭 공예'.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우리나라 전통 매듭 공예를 부활시켜 세상에 널리 알린 이가 있다.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매듭장' 김희진(78세) 선생이다. 남다른 열정과 뛰어난 솜씨로 전통 매듭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김희진 매듭장을 지난 26일 만났다.
◇스물아홉, 매듭을 만나다
1934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어머니는 가족들의 옷을 직접 염색해 지어 입힐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어요. 할머니도 기발하셨죠. 한겨울, 검은 광목천에 두툼한 솜을 넣어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버선을 만든 뒤 내게 신겨주셨어요. 지금으로 치면 '부츠'지요.(웃음) 그 솜씨를 물려받았어요. 항상 무언가를 만들면서 놀았지요. 친구들의 인형 옷도 내가 다 만들어줬어요. 손이 쉬고 있으면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김희진 매듭장이 매듭으로 만든‘노리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전통 노리개보다 길이가 긴 작품으로 키가 큰 요즘 여성들에게 어울리도록 모양을 변형했다. 오른쪽 도구는 끈을 짤 때 쓰는 끈틀. / 김종연 기자
▲ 김희진 매듭장이 매듭으로 만든‘노리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전통 노리개보다 길이가 긴 작품으로 키가 큰 요즘 여성들에게 어울리도록 모양을 변형했다. 오른쪽 도구는 끈을 짤 때 쓰는 끈틀. / 김종연 기자

고교 졸업 후 목각 공예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그는 신문을 통해 우리 전통 공예를 소개하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1963년 매듭장 정연수 선생의 작업실을 찾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알록달록 화려한 색깔에 홀렸는지, 처음 보는 매듭의 짜임새에 홀렸는지…. 매듭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죠. 다음 날부터 매일 작업실에 나갔어요. 처음에는 날 거들떠보지도 않던 정 선생님이 일주일쯤 지나자 옆 자리를 내어 주셨어요. 가까이 와서 보라면서요. 그런데 매듭을 엮는 손이 어찌나 빠른지,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죠. 아무도 설명을 안 해주니 무작정 보고 익히는 수밖에 없었어요. 어느 순간, 매듭이 어디로 흘러들어 가는지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3개월 만에 기본 매듭기술 10여 가지를 모두 배웠지요."
◇전국 돌며 38가지 전통 매듭기술 집대성
이후 그는 지방의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더 많은 매듭기술을 익혀나갔다. 그가 배우고 찾아낸 전통 매듭기술은 모두 38가지.
"대구에 심칠암이라는 매듭 장인이 계시다는 얘길 듣고 찾아갔어요. 그분께 끈을 내놓고 매듭을 맺어 달라고 부탁드렸지요. 정말 기뻤어요. 내가 서울서 배우고 싶어 안달 났던 안경매듭, 나비매듭을 그분이 하시더라고요. 남원의 강기만 선생께도 몇 가지 매듭기술을 더 배웠어요. 내가 이분들을 만난 뒤 2년 뒤부터 한 분, 한 분 돌아가셨으니, 조금만 늦었어도 이 기술들이 영영 사라질 뻔했죠."
매듭을 엮을 때 쓰는 끈도 스스로 짜서 썼다. "시중에 파는 끈은 하나같이 빛깔이 천박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이걸로는 제대로 된 매듭 작품을 만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는 전통 방식으로 끈을 짜는 장인인 '끈목장(다회장)' 박용학 선생을 찾아가 끈 짜는 법을 배워왔다. 끈 만드는 명주실도 직접 염색해서 썼다.
"조선시대에는 실을 염색하는 '염장', 실로 끈을 짜는 '다회장', 끈으로 매듭을 맺는 '매듭장'이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겁도 없이 처음부터 모든 걸 다 해버린 거죠. 자연스럽게 제자들도 나처럼 실 염색부터 끈 짜고 매듭 엮는 것까지 모두 하게 됐어요. 나 때문에 고생이 많죠."(웃음)
◇전통 매듭의 가능성 보여주고파
그는 1966년 제1회 민속공예전 문교부장관상, 1971년 동아공예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매듭 장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역사 속 매듭작품을 복원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전통 복식, 실내 장식, 악기 등에서 매듭 공예의 흔적을 찾아내 이를 재현해냈다. 그리고 1976년,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매듭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전 세계에 우리 전통 매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섰다. 1970~80년대에는 프랑스·독일 등 해외에서 매듭 전시를 열었고,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전통 매듭이 장식된 미사복을 선물해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다.
매듭과 함께한 50년. 그는 스스로를 '축복받은 장인'이라고 불렀다. "명주실을 염색하고 합사해 끈틀에 올리기까지는 남들은 잘 모르는 수고로운 과정이에요. 끈을 짜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행복해져요. 마치 봄에 새싹이 톡톡 돋아나듯, 눈이 반짝반짝 살아 있는 끈이 만들어지죠. 끈으로 매듭을 엮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져요. 각기 다른 악기들이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를 이루듯, 다양한 매듭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지요. 힘든 줄도 모르고 50년을 보냈어요. 단지 운동 좀 해가며 할 걸. 그게 좀 후회됩니다. 일할 때 너무 빠져들다 보니 골반이 틀어져 요새 허리가 안 좋거든요."
그의 매듭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매듭으로 만들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다.
"매듭으로 만들지 못하는 작품은 없어요. 귀걸이나 목걸이를 만들 수도 있고 실내 장식품을 만들 수도 있어요. 앞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매듭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원문보기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7/20121127019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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