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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 이재순 보유자
글쓴이 tntv 등록일 [2019.12.08]

  

 
1956. 12. 16. ~ | 보유자 인정: 2007년 9월 17일

"그러다가 아사달은 커다란 바위에
아사녀의 모습을 새기기 시작했다.
괴로움과 혼란 속에서 아사달이 새긴
아사녀의 모습은 점차 자비로운 미소를
담고 있는 부처상이 되어갔다.
아사녀와 부처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
불상이 완성되는 날
아사달도 영지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
- 현진건의 [무영탑] 중


석호, 이재순, 47×34×130cm

재질은 화강암이며, 전통기법인 정다듬질로 제작된 백호를 조형한 작품이다.

까치 호랑이, 이재순, 35×27×41cm

민화에 등장하는 까치호랑이를 입체적인 조각으로 재현한 것으로 호랑이의 모습을 친근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산예, 이재순, 56x56X81cm

독창적인 우리의 석조문화와 석장(石匠)

  • 석장(石匠)이란 석조물을 제작하는 장인으로, 주로 사찰이나 궁궐 등에 남아있는 불상, 석탑, 석교 등이 이들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다채로운 석조문화재가 전해지고 있어 우리나라의 석조물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석공예의 재료는 물론 석재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화강암이 있으며 이 밖에도 납석과 청석, 대리석 등이 활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석장들은 망치, 정 등 수공구를 사용하여 돌이라는 단단한 물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수준 높은 석조문화를 탄생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 석재(石材; 돌)는 인류가 자연에서 채득한 물질 중 그 연원이 가장 오래되었고, 역사 및 문화의 진전 과정에서 늘 함께 해 온 소재였다. 우리나라에도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변천과정과 문화적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문화유산 중에 석조문화는 연원과 양적인 면에서 늘 중심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석조문화재가 석재 중 강도가 가장 높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가장 한국적인 문화의 한 유형임과 동시에 이를 조성했던 석장(石匠)의 기술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살펴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석기시대를 거치고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찰의 불사와 궁실 건축 등은 물론 다방면에 걸쳐 석조문화가 발전되기 시작했다. 백제의 미륵사지석탑과 신라의 분황사모전석탑, 의성 탑리오층석탑 등의 석탑과 익산 연동리석불좌상, 예산 화전사방불을 비롯해 신라의 불곡석조여래좌상, 삼화령 미륵세존, 배리삼존석불 등의 석불이 조성되어 선사시대의 그것과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을 만큼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 또한 묘제에서도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이래 석재가 중심을 이루는 석실분이 중심을 이루게 되었으며, 전쟁이 유난히도 많았던 삼국시대 이후 공격과 방어의 중심에 성곽이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는 석조문화가 발전되고 다양한 석조문화가 조성됨으로 인해 이를 위한 기술 인력의 양성 또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석장이라는 기술자 또는 집단이 본격적으로 탄생되고 정착된 시기로 여겨진다.
  •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백제와 신라의 수도였던 부여와 경주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석조문화는 국가와 국경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가져왔다. 이 시기 석조문화의 대표적인 변화상을 보면 불국사삼층석탑에서 정점을 이룬 석탑은 이후 한국 석탑의 근본양식을 성립했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다보탑이 건립되었으며, 석굴암 본존불의 조성을 통해 가히 석조문화의 정수를 완성했다. 뿐만 아니라 선종의 도입과 함께 발생된 부도라는 새로운 장르의 조형물이 건립된 시기였다.
  • 이와 더불어 그간 자연석으로 조성되는 석비에 있어서도 귀부·비신·이수를 구비하고 나아가 인도와 중국에서는 사암 또는 석회암의 암벽을 굴착해 건립되던 석굴사원과는 달리 화강암을 자르고 다듬어 순수 인공적인 석굴로 석굴암이 완성되는 시기였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신라시대의 석장에 대한 기록이 미미하여 석장의 실상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 놓은 석조문화는 당시 석장들이 지녔던 뛰어난 예술감각과 창의성은 물론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 그들에 의해 탄생된 불국사 다보탑, 석굴암, 팔각원당형으로 대표되는 신라 석조 부도,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석등을 비롯한 많은 석조문화유산은 오늘날까지 세계 석조문화사상에서 그 예를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조형물들인 것이다.

12세때 돌과 인연을 맺어 석조각 인생 45년째인 이재순 선생

  •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 기능보유자 이재순 선생은 1955년 12월 16일에 전라남도 담양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아 썰매나 연 등을 만들기 좋아하던 선생이 처음 돌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4세 때 석공일을 하고 있던 외삼촌들과 형의 요청으로 일을 도와 주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학비를 벌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차츰 돌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되어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의 집안이 석공일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대 초반 이모가 전라남도 광주의 한 석공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석공들의 임금은 다른 업종에 비해 매우 높았는데, 이 같은 경제적 이유로 외삼촌들과 형이 석공일을 시작하였고, 이재순 선생은 외삼촌들과 형 밑에서 1년 남짓 일을 하였다.
  • 1970년 이재순 선생은 형과 함께 서울 창동에 작업장이 있던 당시의 유명한 석공이었던 김부관 선생을 찾아가 6개월여 일을 배웠다. 그리고 그 밑에서 돌의 평면을 다듬는 치석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기량을 닦았다. 그러다가 1972년 무렵 석공 인생에 있어서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김진영 선생을 만난다. 당시 김진영 선생이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우리에 있던 김진영 선생의 작업장을 찾아간 것이다. 처음부터 석조각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김진영 선생과 인연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석조각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비록 돌 개는 치석은 외삼촌과 김부관 선생에게서 배웠지만, 석공일에 있어 스승으로 주저없이 김진영 선생을 꼽는다.
  • 일에 대한 눈썰미와 성심함으로 남보다 빨리 일을 배웠지만, 그러다 보니 시기하는 이들도 생겨났고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결국 몇 개월 되지 않아 작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평소 주변에 밉보였던 터라 일이 커지게 되어 작업장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시련은 선생을 진정한 석장의 길로 이끄는 전환점이 되었다. 작업장을 나와 잠시 방황하며 여행을 하던 선생은 경주 석굴암에 들렀고, 여기서 본존불을 비롯한 석불을 보면서 새로이 마음가짐을 다졌다. 다시 스승을 찾은 선생은 이전보다 열심히 일을 배웠다. 김진영 선생 밑에서 10년 정도 일을 하였지만, 석조각 기법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한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김진영 선생이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하거나 어떠한 모임이 있을 경우 함께 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를 통해 다양한 조각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모임에서 오고가는 조각이나 종교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음으로써 이에 관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훗날 작품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 사실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단순한 조각의 의미를 넘어 불교사상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재순 선생은 스님들과의 교분을 통해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고, 이러한 결과는 자연스럽게 작업에 투영되었다. 치석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되자, 선생은 전체 조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이 되었다. 그리고 1977년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국제 기능올림픽 석공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이후 각종 공모전 등에서도 수상하여 석공으로서의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1979년 ‘대한석상’이라는 개인작업장을 내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재순 선생은 이전보다 조각에 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1981년에는 주변 소개로 최종태 전 서울대학교 교수를 만나 조형미술에 관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선생은 석조의 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불상이나 불탑과 관련된 석조분야에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문화재 보수 재현작업도 수행했는데, 월정사석조보살좌상,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 북관대첩비 등이 대표작이다. 그 동안 선생이 제작한 작품은 2,000여점에 이른다. 잔국의 사찰과 문화재가 있는 곳에는 선생의 손때가 대부분 묻어 있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유트리트 박물관, 이탈리아 카라라시청, 일본 덕정사, 타이완 기륭 자항기념당, 프랑스 파리 7대학 등에도 선생의 작품이 보관돼 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적인 디자인과 접목하는 데에도 관심이 있어 마영범 디자이너와 공동협업을 통해 상상 속의 동물인 ‘천록’을 주제로 현대적인 디자인이 가미된 석조형물을 만들기도 했다.
  •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기 전 이재순 선생은 부처님께 항시 삼배(三拜)를 올린다. 작업의 안전과 좋은 작품이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그리고 전통 석장의 맥이 후대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길 소망한다. 보유자이기 전에 선배 석공으로서 우리의 화강석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석장의 맥을 잇는 일이야 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재료

  • 화강암
    우리나라에서 채취 가능한 석재 중에서 석조물의 재료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화강암이다. 화강암은 우리나라 전 국토의 25%에 달하며 석재의 90%이상을 차지한다. 국내에 분포된 화강암은 선캄브리아기의 화강암과 화강편마암, 쥬라기의 대보화강암, 백악기의 불국사화강암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석재로 이용되는 화강암은 쥬라기와 백악기 화강암이다. 우리나라의 화강암은 강도와 내마모성이 좋고, 빛깔이 아름다우며 광택이 뛰어나다. 또한 흡수성이 작고 돌결이 치밀하며 석질이 굳고 내구력이 있어서 가공하였을 때 아름다운 단면을 가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800℃ 이상의 열을 접하면 균일이 생기고 붕괴하므로 세밀한 조각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단점도 있다.
  • 대리석
    대리석은 석회암이나 고회암이 압력, 열로 인한 변성작용이 일어나서 재결정된 암석이다. 대리석은 조직이 치밀하고 색상이 다양하여 연마하면 광택이 나는 특징으로 인해서 정밀한 조각이 가능하지만 빗물 등에 함유된 산(酸)에 의해서 용해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야외용보다는 실내용 조각의 소재로 적합하다.
  • 사암ㆍ셰일
    사암이나 셰일은 기존 암석이 풍화와 침식작용에 의해 부스러져 퇴적된 암석인데, 미사(微砂)나 점토 크기의 세립질 입자로 구성되며 층상구조를 가진 퇴적암이다. 사암은 오석(烏石), 셰일은 청석(靑石)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석은 고급 비석 등 장식용으로 청석은 벼루 등의 공예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색상과 석질이 매우 뛰어나서 그 외의 다른 석조물 재료로도 사용한다. 오석은 가공을 하면 짙은 검은색을 띠고 고급스러운 광택이 나는 반면에 강도가 강해져서 정으로 다듬기가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청석은 가공을 하면 청록색을 띠게 되어 특유의 느낌을 자아내지만 질이 고르지 않고 큰 재료를 얻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제작도구

석재를 절단하고 다듬기 위해서는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석조물 제작 도구의 명칭이나 쓰임새, 그리고 사용방법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석장 기능보유자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석재를 채취하고 다듬는데 사용하는 도구의 종류에는 석재의 길이·너비·폭·깊이 등의 일정한 척도를 확인하는데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계측도구인 자, 석재의 틈새에 박아서 그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데 사용하는 쐐기, 자와 더불어 석조물 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인 먹줄, 선을 긋는 용도로 사용하는 먹칼, 석재의 표면에 그림을 그릴 때나 글이나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붓, 쐐기를 박거나 석재를 다듬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메, 메의 형태와 비슷하지만 한 쪽에만 날이 있는 형태로 필요 없는 부분을 떼어낼 때 사용하는 털이개, 정으로 거칠게 작업이 된 석재의 표면을 곱게 쪼아 낼 때 사용되는 도드락망치, 돌을 채취하거나 떼어낼 때 그리고 다듬을 때 사용하는 정 등이 있다.


석조쌍봉탑도, 이재순, 98X82X27cm

제작과정

  • 구상 및 초안: 석조 조각품을 제작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작품을 구상하고 이를 초안으로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 기본 도면작성: 도면을 작성할 때에는 구상된 작품의 형태와 세부적인 특징, 정확한 치수가 표시되어야 하며, 겉감이나 전체적인 색감의 조화를 고려해서 재료를 결정해야 한다.
  • 모형 제작: 모형 제작은 흙이나 석고를 사용해서 작품을 먼저 만들어 보는 과정이다.
  • 모형 본뜨기: 모형 본뜨기는 제작된 모형을 석재에 옮겨 내는 과정이다.
  • 다듬질: 작품 제작을 위해서 마련된 석재에 모형을 본뜨고 나면 본격적인 작품 제작 작업이 시작된다. 이 단계에는 석재를 눕힌 상태로 둔 채 작업의 대부분이 진행된다. 석조 불상을 제작할 때에는 석재의 재질을 살펴본 후에 요철이 보다 많은 쪽을 앞면으로 선정하는데, 그 이유는 이목구비나 손, 옷 등의 높낮이를 고려해서 조각해야 하는 면을 앞면으로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 설치: 불상(작품)의 제작이 완성되면 별도로 제작된 대좌(臺座)와 보개(寶蓋) 등 불상의 전체적인 조합을 다시 한번 점검하여 서로 적절한 크기인지 색감에서 이질감 없이 어울리는지 등을 판단한다.

약력

  • 1956출생
  • 1977동탑산업훈장 수상
  • 1989석공예명장
  • 1989대통령표창 2회
  • 1991대한민국명장회 수석부회장
  • 2004(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부회장
  • 2005경기도무형문화재 석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7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8그룹전 170여회, 각종 심사위원 70여회
  • 2010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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