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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글쓴이 tntv 등록일 [2018.03.04]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성업을 누렸던 한산모시짜기는 이제 존재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

▲     © 인물뉴스
충남 서천 한산모시관에 가면 국가지정 제 14호 중요무형문화재 한산모시짜기 국가 기능보유자 방연옥(69) 여사가 있다.

2011년 11월 28일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한산모시짜기의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1500년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한산 모시의 우수성이 만천하에 입증된 날이다.

당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현장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산모시의 최고 명작은 방연옥 명장이 직접 짠 세모시였다.

모시밭에서부터 베틀까지 전 과정이 온 몸을 사용해야하는 힘든 작업이지만 한 눈 팔지 않고 여섯 살 젖먹이 때부터 평생 모시를 짜며 직녀(織女)로 살아온 방연옥 명장을 만났다.

60여 년 동안 방연옥 여사의 손을 거쳐 나온 한산 모시의 길이를 모두 합쳐 놓으면 지구를 10바퀴 돌고도 남지 않을까 싶다.

한여름 찌는 듯한 삼복더위에도 모시를 짰고 온 국민이 일손을 놓고 명절 분위기에 흠뻑 취하는 한가위 연휴에도 베틀 앞을 떠나지 않았다.

“전성기 때는 5일에 한필(31cm×21.6m)씩 짜냈지요. 지금도 사시사철 모시를 짜요. 태모시로 구입하여 세모시로 째서 개량 베틀로 모시짜기를 합니다. 입으로 손으로 무릎으로 다 동원해서 하는 100% 수작업이지만 평생 해온 이 일에 후회는 없습니다”

현재 일선에서 활동하는 모시짜기 국가 기능보유자는 방연옥 여사 뿐이다. 무릎과 허리가 안 좋고 혀와 입술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모시를 짰지만 아직은 괜찮다며 웃는다.

앞니로 물어뜯고 침과 혀를 동원하는 모시째기를 하면서 숱하게 입술이 부르트고 터져 피가 나기를 반복했고 닳아버린 이를 대신해 아예 째기 좋게 틀니를 했다.

방여사는 모시의 고장 서천군에서 태어나 자랐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오리지널 서천 토박이로 집에서 매일 한산 모시관으로 걸어서 출퇴근한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한산 모시 옷을 입어보고 칭찬해주시면 기분 좋죠. 한산 모시가 비싸다고 하지만 공임을 생각하면 비싸다고 생각 안 해요. 완성하기까지 손길이 4000번이나 들어가는 명품입니다. 오셔서 과정을 보시면 비싸다는 말을 안 해요”

▲     © 인물뉴스
모시 적삼 한 벌에 남방 하나가 나오는 한 필의 가격은 보통으로 수공 포함해서 100만 원선이다.

모시짜기는 이로 쪼개고 무릎으로 비비고 날기- 바디쓰기-꾸리감기-매기를 거쳐 모시틀(베틀)로 짜는 전 과정이 힘든 작업이다.

국가 기능 보유자인 천하의 방 여사도 며칠만 일손을 놓았다가 모시 째기를 하면 입술이 터지고 피가 난다.

“특히 밖에서 매기작업 할 때가 가장 어려워요. 봄가을 찬바람 불 때 밖에서 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는 외부 시연 행사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시관에 항상 나와서 모시짜기 작업을 한다.

6살 젖먹이 때 엄마등에 업혀 다니면서 따라 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60여년을 매달려온 일이다.

“한산 모시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배워서 전통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해마다 여름이면 서천군 한산면은 1500년을 이어온 전통천연섬유 한산모시의 역사성과 우수성을 직접 체험하는 한산모시문화제가 열리고 모시 짜는 베틀소리로 들썩인다.

한산모시관에는 한평생 모시를 짜며 인생을 엮어온 방연옥 한산모시짜기 명장의 공방이 있다.

오늘도 그는 베틀에 앉아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한산모시짜기의 맥을 한 올 한 올 이어가고 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열세 살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모시 짜는 일만 해왔어요”

서천 기산면에서 2남6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29살에 결혼하여 서천군 한산면으로 와서도 모시와의 질긴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산은 예로부터 모시 산지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막내라서 여섯 살까지 젖을 물고 살았다는 그는 ‘젖 먹던 시절’ 어머니 따라 동네 아낙네가 모여 같이 모시하는 자리에 갔다가 자연스레 모시실을 잡았다.

어른들 틈에 끼어 따라하다 보니 열 살이 되자 실을 매끈하게 이을 정도로 솜씨가 좋아졌다.

결혼해서도 서천을 떠나기는커녕 고향 마을 지산에서 인접한 고개 넘어 동네 한산에서 살았다. 직녀의 운명을 암시하듯 한산에서 문정옥 선생을 만났다

▲     © 인물뉴스
당시 한산모시 짜기 중요무형문화재였던 문정옥 선생님이 같은 마을에 사셨어요”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14호 한산모시 짜기 첫 기능보유자인 문정옥 선생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문정옥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1980년 전수학생으로 등록해 열심히 배우러 다녔지요”

당시 방연옥의 나이는 서른여섯으로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모시짜기의 전 과정을 스승으로부터 배웠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난관이 닥쳤다. 전수학생으로 등록한지 3년째 되던 해 문정옥 선생이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후로 궁금한 점은 스승에게 물어가면서 혼자 모시 짜기를 계속해나갔다.

드디어 1986년 이수자가 되었고 이듬해 전수조교를 거쳐 2000년 기능보유자를 지정 받았다.

한산 모시는 매년 5월말에서 10월 사이에 세 차례 수확한다. 너무 이르면 섬유가 약하고 늦으면 거칠어 8월 수확을 최고로 친다.

모시풀 이파리를 훑어내고 줄기의 겉껍질을 벗겨내면 속껍질이 나온다. 이 속살이 태모시의 재료가 된다.

푸른 속대를 물에 중간 중간 적셔가며 햇볕에 열흘쯤 말리면 푸른 물이 빠지고 하얀 껍질만 남은 태모시가 된다.

하얗게 바랜 태모시를 째어 세모시를 만든다. 태모시를 물에 미리 담갔다 침을 묻혀가며 이로 물고 입술과 혓바닥을 동원해 짼다.

“한 필 분량을 째려면 침이 석 되 들어간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 침이 모자란 할머니들은 가늘게 째기가 힘들지요”

물에 적신 태모시를 침으로 녹이고 입술로 굵기를 가늠하며 앞니와 혓바닥을 놀려 째는 과정이 만만찮다. 한산모시의 비법은 바로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좌우되는 모시째기에 있다. 입으로 얼마나 가늘게 째느냐에 따라 모시의 질이 정해진다.

다 짼 모시 올을 길게 이어 실로 만드는 과정이 모시삼기다. 모시 올을 버팀목에 걸고 두 올씩 침을 묻혀 맨 허벅지에 대고 밀어 잇는다.

다음 작업은 삼은 실을 한 덩어리씩 모아 열십자로 묶는 모시 굿이다. 모시 굿까지 완성하면 날실을 계량하는 방법으로 날실을 몇 올 쓸지 결정하는 모시 날기를 한다. 그리고는 실을 바디에 일일이 끼우는 작업을 한다.

요즘 방연옥 장인은 할머니들이 만들어온 모시 굿을 구입해서 날고 매고 짜기만 한다.

집에서 더 이상 베를 짜지 않게 되면서 나무베틀이 사라졌고 개량베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바디에 끼운 날실을 베틀에 끼우기 전에 마지막으로 실이 매끈해지도록 풀을 먹여 말리는 매기 작업을 거친다. 베틀로 짤 때 실의 엉킴을 막는 사전처리 작업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실로 한 필 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새 기준으로 보름이 걸린다. 수확부터 치면 자그마치 서너 달이다.

방연옥 여사는 겨울철인 요즘도 한산모시관에 나와 작업을 하거나 관광객 앞에서 시연하고 지방무형문화재인 나상덕 씨와 함께 제자를 키우고 있다. 이수자 가운데는 방 여사의 딸도 있다.

“한산세모시는 밥그릇 하나에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생길 만큼 가늘고 곱기로 유명하지요. 통풍성이 탁월하고 빨아 입을수록 윤기가 흘러 더욱 맵시가 납니다”

세계가 알아주는 천년명품이지만 한산 모시가 태어나는 전 공정이 수작업으로 일이 힘들다 보니 모시짜기를 배우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그는 안타까워한다.

“한산 모시짜기 기술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로 명실공히 세계인의 전통이 된 만큼 앞으로 기술을 배우는 후학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류가 함께 지키고 보존해야 할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으로 1500년의 전통과 역사를 지닌 한산모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방연옥 명인의 간절한 소망이다.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모시옷을 만들고 싶어요”

무더운 여름날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여인네들의 땀과 피와 침으로 빚어내는 천년 명품 한산 모시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방연옥 국가 기능 보유자.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인류무형문화유산 시연 및 체험

보유자 방연옥​

 

2017년 9월 26~24일

 

<모시짜기 체험>


<모시짜기 시연>

<학생 모시짜기 체험>


<모시관 안채>

<모시짜기 준비중>


<학생들 견학>


<대표학생 짜기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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