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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螺鈿匠) 이형만 보유자
글쓴이 tntv 등록일 [2018.01.28]

나전(螺鈿)은 고유어로 ‘자개’라 하며, 여러 무늬의 조개껍질 조각을 물체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나전칠기는 나전 위에 옻칠을 해서 만들어 낸 공예품을 말하며, 이러한 기술이나 만드는 사람을 나전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기술은 중국 당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칠기는 신라의 고분에서 다량 출토되고 있으며 백제·삼한시대의 칠기도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르러 일반적인 생활용기로 널리 사용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전칠기의 제작과정을 보면, 먼저 나무로 화장대, 교자상 등의 기본틀인 백골을 짠다. 이어 백골의 표면을 사포로 문질러 고르게 한 다음 백골의 틈을 메우기 위해 칠죽을 발라 자개를 백골에 붙인다. 그 후 연마, 옻칠, 광내기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자개로 무늬를 만드는 방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를 백골에 붙여 직선 또는 대각선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어내는 끊음질과, 자개를 실톱, 줄로 문질러서 국화, 대나무, 거북이 등의 각종 도안 문양을 만들어 백골에 붙이는 줄음질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모란·국화·연꽃 등의 식물무늬가 주요 소재로 활용되었고 조선 중기에는 화조·쌍학·포도 그리고 사군자 등의 무늬가 대부분이었다.

나전칠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옻나무 수액인 칠과 자개인데, 자개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가 주로 쓰이며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가장 곱고 우수하다. 현재 나전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경남 통영이며 강원도 원주는 우수한 옻칠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전장은 인내를 요구하는 복잡한 전통공예기술로 가치가 크며 기능보유자로는 끊음질에 송방웅, 줄음질에 이형만 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나전장(螺鈿匠)



상사톱으로자개그리기(줄음질)



자개오리기



종이본걷어내기



상칠



나전상자



칠기의 기원이 언제인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의 기록에는 한(漢)대에 있었다고 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낙랑고분(樂浪古墳)에 칠기가 보이고 신라의 관직제도에 칠전(漆典)이 보이니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다고 할 수가 있겠다.

식리총(飾履塚), 호우총(壺우塚), 무녕왕능(武寧王陵) 등에서도 이미 출토된 예가 있는데 그것들은 포심(布心)이나 목심 칠기(木心漆器)들로서 주(朱)흑칠(黑漆) 외에도 채화(彩畵)한 것이 대부분이나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나전칠기가 있었다는 흔적은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호우총에서 출토한 가면(假面)은 목심(木心)에 흑칠을 하고 눈알을 유리로 상장(嵌裝)한 것과 같은 예가 칠기의 선편(先鞭)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고도 생각된다. 고려에 이르면 기록이나 유례(遺例)가 앞 시대에 비해 많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많다.

현재의 나전칠기장 김봉룡(金奉龍)은 경상남도 충무시 태생이다. 최초의 나전장 보유자로 인정된 고 김봉룡은 17세 때부터 충무에서 당시의 명장(名匠) 박정수(朴貞洙)에게 사사하고 뒤이어 근세 나전칠기 제작의 개척자의 하나라 할 김성규(金成圭) 문하에서 수업을 거듭하였고 1994년 사망으로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 특히 그의 기능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당초문(唐草文)으로서 가늘고 길고 아름다운 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방 전부터 일본, 불란서 등지의 박람회에 출품하여 수상하였고, 조선미술전람회에 14회에 걸쳐 입선을 거듭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국전추천작가로서 후진 양성과 우리나라 나전칠기공예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나전칠기는 목심(木心)인 경우 다음과 같은 공정(工程)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소목장(小木匠)이 만든 바탕을 해어피 나 사포로 문지르며 사포질을 하고 돼지털솔로 생칠(生漆)을 하여 하룻밤을 재운다. 생칠에 톱밥과 밥풀을 섞어 백골 바탕의 이음새나 트집이 난 데를 메운다. 생칠과 쌀풀을 섞어서 삼베나 무명천을 백골에 씌워 바른다. 그 위에 뼈가루나 숯가루 또는 황토(黃土)를 고열에서 구워 얻은 가루들을 생칠과 풀을 섞은 것으로 반죽하여 베위에 발라서 바탕이 곱게 한다. 이를 고래바르기라 한다. 고래바르기를 마친 바닥을 물을 주면서 숫돌로 갈아 바닥이 고르고 반드럽게 다스린 다음 한 번 고래바르기를 하고는 아교를 바른 자개를 인두로 지지며 자개붙임을 한다. 이 공정을 자개붙임이라고 하며 주로 근해에서 잡힌 전복껍질을 많이 사용한다. 자개붙임이 끝나고 풀이 마르면 자개 밖으로 묻어난 풀을 열탕(熱湯)으로 재빨리 문질러 없앤다. 자개를 붙인 곳에 생칠을 한 번 더 올리고 고래바르기를 또 하고 숫돌로 갈고 중칠을 바른 다음에 숯으로 갈아내고 하는 작업을 두세 번 거듭한 끝에 생칠로 마지막 칠(漆)을 한다. 상칠(上漆)이 마르면 숯으로 또 갈고 솜에 콩기름을 묻혀 초광(初光)내기를 하고 재광(再光)과 삼광(三光)을 낸 다음에 솜으로 닦아낸다. 이때야 비로소 나전칠기는 완성이 된다.

끊음질나전칠공예에 있어서 나전상감(螺鈿象嵌)은 여러가지로 나뉠 수 있으나 나전의 후박(厚薄)과 감입(嵌入)의 방법에 따라 크게 나뉘며, 제각기 공정에 차이가 있다. 두꺼운 자개를 사용할 경우가 있고 얇은 자개를 쓸 경우가 있으며, 드물게는 두 가지 종류를 병용하는 수도 있다. 감입의 방법도 상감할 자리를 음각해서 거기에 자개를 끼우는 경우와 자개를 먼저 붙여 놓고 그것을 칠(漆)로 발라 감입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나전으로 무늬를 다듬는 방법에도 끊음질과 줄음질의 두 가지가 있다. 끊음질은 자개를 거두로 가늘고 길게 따내어 상사를 만든 다음 날카로운 상사칼 끝으로 상사를 잘게 끊으며 기하문(幾何紋)이나 산수문(山水紋), 초화문(草花紋) 등을 표현하는 우리의 고유하고 전통적인 기법이다. 줄임질은 화조(花鳥), 십장생(十長生) 등을 가위로 오려내고 줄로 문질러 얻은 무늬를 붙이는 기법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이 따로 쓰이기도 하고 함께 쓰이기도 한다. 끊음질은 1910년대 이후 실톱이 사용되면서 그 간편함 때문에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고 줄음질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전통적인 나전칠공예가 지녔던 고유색과 특질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심부길은 서울 태생으로 편성규 문하에서 쇠멸하려 했던 끊음질을 수업하여 평생을 전념해오고 있으며 특히 그의 끊음질로 된 기하학적인 연속문양의 미는 당대의 제일인자라 할 수가 있다.

끊음질의 재료는 주로 근해에서 잡히는 전복 암컷의 껍질을 쓴다. 끊음질에 쓰이는 연장이나 재료로는 숫돌, 인두, 자개솔, 자톱, 탄철, 집게, 줄, 송곳, 거두, 상사칼, 각도, 칠긁기칼, 사포, 솜, 소나무솔, 붓물감 등을 갖추어야 한다.

공정(工程)은 거두로 자개를 썰어 상사를 따내고 백골 바탕에 아교를 칠한 다음 칫수를 풀어 자로 간격을 맞추어 송곳으로 눈금을 친다. 백골에 칠한 아교를 혀로 핥으며 상사가 잘 붙도록 하여 오른손에 상사칼을 쥐고 왼손으로 상사를 집는데 상사의 끝을 검지손톱 끝에 살짝 끼고 상사의 중간을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면서 안에서 바깥쪽으로 칼질을 하며 끊어 나간다.

끊음질이 끝나면 무늬에서 벗어난 상사를 칼로 잘라낸다. 이를 누꼽을 뗀다고 한다. 그리고는 뜨끈한 물을 손에 묻혀 배어나온 아교를 닦아내고 말린 다음 얇게 칠을 올린다. 숫돌로 갈아내고 말려서 옻칠을 다시 한 다음 숯으로 갈고 솜에 콩기름을 묻혀 닦아낸 후 화조(花鳥), 수구(水龜) 등 무늬나 꽃잎, 깃털, 거북 등과 같은 곳은 살을 친다고 하여 각도(刻刀)로 새긴다.

심부길이 끊음질에 즐겨 쓰는 무늬는 다음과 같다. 국화(菊花), 거북, 미자구문, 싸리짝, 백문, 백문, 회포문, 반자문(회포꽃문), 동근수자싸리짝문, 대나무, 쌍희자, 아홉끝뇌문, 성틀뇌문, 거북뇌문, 국화뇌문, 세끝뇌문, 다서끝뇌문, 관사무늬, 삼각산무늬, 세모싸리문, 네모부자문, 네모귀자문, 산수문(山水紋) 등이 있다.

약력

  • 1946년 경상남도 통영군 산영면 출생
    1996년 제5회 한산대첩기념제전 공예전시회 경상남도지상 수상
    1988년 제13회 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1991년 제16회 전승공예대전 문화부장관상 수상
    1996년 한중칠예교류 북경전(중국미술관)
    1997년 일본 돗도리현 박람회 시연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기능보유자 인정
    1998년 제23회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한국전통공예 10대작가 초대전(대전동양타임월드)
    제33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1999년 제24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2000년 독일 하노버 월드 엑스포 시연
    2001년 극동대학 산학연 컨소시엄 책임연구원
    로마교황청 교황께 나전칠기문서함 현지 증정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심사위원
    제26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2003년 제2회 한국옻칠공예대전 운영위원장
    2004년 한국칠예가회 회장
    2006년 배재대학교 예술대학 칠예과 및 국제통상대학원 칠예과 초대교수
    2010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부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나전칠기반 강사

    빛을 빚어내는 인고의 외길 송주안 나전명인 나전칠기는 ‘빛의 예술’이라고 불린다. 자개의 화려한 빛깔과 영롱한 옻칠이 어우러져 광채를 만들어낸다. 우리나라 나전칠기는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전성규부터 그의 제자 김봉룡, 김태희, 송주안, 심부길, 민종태 등에 이어 현재는 3세대인 이형만, 송방웅, 손대현으로 전해지며 그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전성규는 철종 때 상궁이었던 사람의 양아들로 어려서부터 궁중을 출입하였기에 궁중의 공예품을 잘 알았고, 일제강점기에 골동품장사까지 하다가 나전칠기에 관심을 갖고 공장을 설립하여 이들 나전장인을 길러냈다. 01. 송주안의 유작 ⓒ한국전통무형문화재진흥재단

    나전칠기는 나무에 옻을 칠하고 끊음질, 줄음질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지난한 인고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전칠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66년의 일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1964년)에 이어 전통 공예기술 중 두 번째로 지정된 공예종목이 바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이다. 그만큼 나전칠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예로 인식되었고, 일찍부터 그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특히 통영의 나전칠기는 1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민속 예술품이다. 통영이 낳은 나전칠기의 거장, 송주안(1901~1981)은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랐다. 그는 1917년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나전칠기계의 명인 박정수의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나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끊음질, 줄음질, 옻칠 등 나전칠기의 기초를 배우면서 통영공업전수소를 1년 수료하였다. 그는 이 시기 스승인 전성규를 만나 나전칠기를 본격적으로 작업하였다. 나전칠기의 기법 중 끊음질은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잘라서 모자이크 방법으로 붙이는 기법이고 줄음질은 자개를 실톱과 줄을 사용하여 문양 형태로 오리는 것인데, 송주안은 끊음질 쪽을 택했다. 어느 기능이나 1인자가 되기까지는 뼈를 깎는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성규 선생님 밑에서 전수를 받았는데 기능을 배울 때의 엄격한 수업은 지금도 눈에 보이듯 생생해요.” 스승의 가르침에 미처 따르지 못했을 때는 호된 매도 맞았다는 송주안은 그렇게 해서 나전의 정수인 끊음질을 전수받게 됐다.

     

    나전 螺鈿 나전(螺鈿)은 고유어로 ‘자개’라 하며, 여러 무늬의 조개껍데기 조각을 물체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나전칠기는 나전 위에 옻칠을 해서 만들어낸 공예품을 말하며, 이러한 기술이나 만드는 사람을 나전장이라고 한다.

    02. 전쟁 중에도 나전칠기에 몰두하며 습득한 송주안의 곡선 끊음질은 신기에 가까워 아무도 그 경지를 흉내 내지 못했다고 전한다. ⓒ문화재청 03. 송주안(우)이 송방웅(좌)과 함께 작업하는 모습 ⓒ한국전통무형문화재진흥재단

    1920년에는 일본 다카오카시(高岡市) 소재 조선나전사(朝鮮螺鈿社)에 초빙되어 가는 전성규를 따라 도일하여 1928년까지 일본 칠기인들과 함께 일하며 견문을 넓혔다. 1928년 귀국하여 서울의 엄씨공방 자개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1940년 평안북도 태천 소재 태천군립칠공예소 소장으로 초대되어 나전칠기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도 하였다.

    “어려운 일도 많았어요. 한국전쟁 때는 칡뿌리, 도토리 밥으로 연명하면서도 나전에 몰두했지요. 팔릴 곳도 없는 것을 정성을 다해 만들어내곤 했어요.” 전쟁 중에도 나전칠기에 몰두하며 습득한 그의 곡선 끊음질은 신기에 가까워 아무도 그 경지를 흉내 내지 못했다고 전한다.

    “사람이 있어야 만들어내지요. 사람을 길러내야 해요. 인간문화재(무형문화재 보유자)도 전수할 시간과 힘이 있을 때 지정해서 전통을 잇게 해야겠죠.” 통영의 나전칠기는 그 전통성 때문에 전국에서 인기를 모았으나 디자인이 화려하고 수공품보다 값비싸 보이는 현대공예품이 양산되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이 때문에 평생 나전칠기에 전념해온 송주안은 심한 생계 타격을 받아 전업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면면히 이어온 옛 조상들의 슬기와 정성이 깃든 전통공예를 버릴 수 없어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손만대에 이를 전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는 1979년 5월 24일 79세의 고령에 끊음장 보유자로 인정받았고, 2년 뒤에 별세하였다. 하지만 그의 끊음질 솜씨는 아들인 송방웅에게 이어졌고, 그 또한 부친과 마찬가지로 1990년 10월 10일 끊음질 보유자로 인정받아 대를 잇고 있다.

     

    글. 성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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