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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등록문화재 [登錄文化財]
글쓴이 tntv 등록일 [2011.12.24]


등록문화재 [登錄文化財]

국보 및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ㆍ명승 등 기존 지정문화재가 아닌 우리나라 근대 이후 제작ㆍ형성된 문화재 중에서 그 보존 및 활용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화재를 말한다. 등록문화재의 지정은 문화재청장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록할 수 있므여, 지정된 등록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변경하려는 날의 30일 전에 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등록 기준은 건설ㆍ제작ㆍ형성된 후 50년 이상 지난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에서 역사ㆍ문화ㆍ사회ㆍ경제 등 각 분야에서 근대사의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지역의 역사ㆍ문화적 배경이 되고 가치가 널리 알려진 것, 기술 발전이나 예술적 사조 등 그 시대를 반영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 등이다. 한편, 등록문화재 제1호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 사옥이다. 

 

등록문화재 등록 기준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34조)

    -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ㆍ제작ㆍ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건설 후 50년 이상이 지나지 아니한 것이라도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것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다.

        1. 역사, 문화, 예술, 사회, 경제, 종교, 생활 등 각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2. 지역의 역사ㆍ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으며, 그 가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3. 기술발전 또는 예술적 사조 등 그 시대를 반영하거나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 각각의 등록 목적 및 취지, 법적근거

  ㅇ 등록문화재 등록 목적 및 취지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비지정문화재 중에서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나고, 문화재적 가치가 지닌 것을 보존․활용하기 위함이다.

        <죄송합니다. 아래를 클릭하시면 등록문화재 현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B%93%B1%EB%A1%9D%EB%AC%B8%ED%99%94%EC%9E%AC
대전 등록문화재 건물 화재...내부 전소
2011.11.19  새벽 2시쯤 대전시 선화동 구 사범부속학교 교장 사택에서 불이 나 내부 134㎡를 태우고 30여 분 만에 진화됐습니다.
불이 난 사택은 1930년 건립돼 지난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로 모 기독교 재단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韓 最古영화 '청춘의 십자로', 등록문화재 지정
2008년 영상자료원이 국내에서 기적적으로 발굴한 '청춘의 십자로'는 복사본(Print)이 아닌 원본(Original Negative)이라는 점, 현존 유일의 무성영화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영상자료원에 따르면 2011년 9월 문화재 등록을 신청해 2012년 2월 등록문화재(제488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은 2013년 8월 29일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건물을 등록문화재 제568호로 등록하였다
등록문화재 제153호 ‘진주 하촌동 남인수 생가’를 등록 말소한다.(2013년12월 17일 관보고시 예정)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2014년 2월 26일 근대 시기 회계장부인 ‘개성 복식부기 장부’ 를 등록문화재 제587호로 등록하였다.

등록문화재 제595호 ‘임실 회문망루’와 등록문화재 제596호 '임실 운암망루‘는 광복 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시기에 지역 방어를 위해서 지역 주민의 자금으로 축조된 시설물이다.
등록문화재 제597호 ‘구 수원문화원’은 금융회사인 조선중앙무진회사의 사옥으로 건립된 벽돌조 2층 건물로 광복 후 오랫동안 수원문화원 건물로 사용되었다

등록문화재 제598호 ‘구 수원시청사’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돌을 사고석 형태로 다듬어 외벽 마감을 하고, 상자 모양의 창틀을 설치하여 입면의 단조로움을 보완한 것이 특징이다
등록문화재 제599호 ‘고양 행주수위관측소’는 부자식(浮子式) 자기수위계를 설치하여 한강의 수위를 관측하던 시설이다
등록문화재 제600호 ‘구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는 철근콘크리트 2층 건축물로 지붕은 철근콘크리트 평슬래브로 되어 있으며, 평면은 전체적으로 ‘ㄴ’자형이다.

등록문화재 제601호 ‘강경 갑문’은 3중문 구조로, 제1문과 제2문은 같은 기단부(基壇部)에 인접하여 설치되었고, 제3문은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 설치되었다.
등록문화재 제602호 ‘강경 채운산배수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강경에 거주하던 일본인에게 물을 공급하던 시설로, 배수지와 여과지의 형식, 구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 제654호 「안동교회 예배당」은 1937년에 건립된 안동 지역 최초의 교회로, 안동을 중심으로 한 근대 시기 기독교의 전파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등 역사적‧종교적 가치가 크다.

      등록문화재 제655호 「서울 성북동 천주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은 1953년 설립된 한국국    가톨릭 최초의 내국인 수도자를 위한 남자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이며, 한     국인 방유룡 신부의 설계로 1955년 건립되어 역사적·종교적 가치가 크다.

       등록문화재로 제656호  「고종황제 하사 족자」는 19세기 말기에 정부(대한제국)가 고종의 주치의였던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년)에게 하사한 족자이다.

등록문화재 제657호「이천 수광리 오름가마」는 1949년에 제작되었으며, 22~25˚의 경사지에 진흙과 벽돌로 만들어진 길이 27m, 폭 2~2.3m의 계단식 등요(登窯, 오름가마)이다. 총 12칸의 가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가마의 폭이 넓어지고 천장은 높아지는 구조이다.

       등록문화재 제658호로 등록된 「간호교과서」상권(1908년 제작), 하권(1910년 제작)은 마가렛 제인 에드먼즈(Margaret Jane Edmunds, 1871∼1945)가 간행하였다

등록문화재 제659호「고흥군 소록도 병사성당」은 소록도 내 한센인(나환자)들의 생활 공간인 병사(病舍) 지역에 1961년 건립된 벽돌조 성당으로, 한센인들이 직접 경사지를 평탄한 지형으로 만들고 바닷가에서 모래를 채취하여 벽돌을 만들어 지었다.  

등록문화재 제660호 「고흥군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은 1938년 건립된 벽돌조 주택으로, 40여 년간 소록도 내 한센인들을 위해 적극적인 의료 봉사활동을 하였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거주하였던 집이다. 

등록문화재 제661호로 등록된 「의병장 유인석 심의」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유인석(1842∼1915)이 평소 착용하였던 심의(深衣,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입던 겉옷)이다.

등록문화재 제662호 「서울 남대문로 2층 한옥 상가」는 1910년대 무렵 서울 남대문로에 건립된 벽돌조 한양(韓洋)절충식 2층 한옥 상가로, 당시 남대문로 상가건축의 전형적인 형식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당시 벽돌로 지어진 한옥 상가로는 서울 시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근대 초기 남대문로가 서울 중심 상권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곳임을 보여준다.

 등록문화재 제663호로 등록된「고흥 소록도 한센인 생활 유품」은 한센인들이 치료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제작한 개인 치료용 칼과 생활 도구인 단추 끼우개, 식생활 도구인 국자, 냄비, 솥들개(솥 드는 도구) 등을 비롯하여 강제노역 현장에서 사용된 시멘트 블록 형틀, 기와틀 등 총 8종 14점이다.

 등록문화재 제716호 「제주 4‧3 수악주둔소」는 해방 이후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당시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 속에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이었던 제주 4‧3사건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간직한 유적이다.

등록문화재 제717호 「운강선생유고 및 부록(雲岡先生遺稿 및 附錄)」은 구한말 대표적인 항일 의병장인 운강 이강년(雲岡 李康秊, 1858~1908)이 1908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후 제천지역 의병들이 그가 남긴 글과 의병활동 내용을 기록한 필사본 3책이다. 운강 이강년이 지은 시문과 글을 필사한 유고 1권과 그의 의병활동 등을 적은 부록 3권의 총 3책으로 구성되었다.
등록문화재 제735호 「서울 동국대학교 구 본관(석조관)」

등록문화재 제746호 「매천 황현 매천야록(梅泉野錄)」은 조선말부터 대한제국기의 역사가이자 시인이며, 경술국치 직후 순절(殉節)한 황현이 1864년 대원군 집정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 약 47년간의 역사 등을 기록한 친필 원본 7책으로 한국근대사 연구에 중대한 가치를 지닌 사료다. 「매천야록」에는 한말에 세상을 어지럽게 하였던 위정자의 사적인 비리‧비행과 특히, 일제의 침략상과 이에 대한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저항 등이 담겨 있으며, 자유로운 방식으로 당시의 역사를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였다.

등록문화재 제747호 「매천 황현 오하기문(梧下記聞)」은 황현이 저술한 친필 원본 7책으로, 「매천야록」의 저본(底本, 초고)으로 추정된다.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 등을 비롯한 항일활동을 상세하게 전하며 한국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오하기문」이란 표제는 황현이 거처한 정원에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서 이 글을 기술하였다는데서 유래하였으며, 「매천야록」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방식으로 당시의 역사를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였다.

  등록문화재 제748호 「매천 황현 절명시첩」은 황현이 1910년 8월 경술국치 다음 달인 9월에 지은 절명시(絶命詩) 4수가 담겨있는 첩으로, 양면으로 되어 있으며 서간과 상량문 등도 포함되어 있다. 황현은 절명시를 남기고 사랑채였던 대월헌(待月軒)에서 순절하였고,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등록문화재 제749-1호 「매천 황현 시․문(7책)」은 ‘한말삼재(韓末三才)’, ‘호남삼걸(湖南三傑)’로 이름을 날린 문장가였던 매천 황현이 1880년대에서 1910년까지 지은 약 548수의 친필 시를 모아놓은 시집 4책과, 그가 지은 다양한 글을 모은 문집 3책이다. 황현의 시에는 식자인(識字人, 지식인)의 책임의식이 깊이 투영되어 있어서 우국충절의 지사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문집에서는 그가 지은 다양한 글을 싣고 있어 그의 사상과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
  * 한말삼재(韓末三才): 김택영, 이건창, 황현 / 호남삼걸(湖南三傑): 이기, 이정직, 황현

등록문화재 제749-2호 「매천 황현 유묵․자료첩(11책)」은 황현의 저술뿐만 아니라 그의 지기(知己)들, 당대의 지식인들과 주고받은 서간, 중요사건에 대한 신문기사  모음 등 다양한 자료를 모아놓은 유묵․자료첩 11책이다. 황현은 당대의 문인들과  교유하며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의 글을 모아놓은 이 유묵·자료첩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국가적 위기와 민족의 존망, 사회 상황, 그리고 지식인들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희귀 자료라 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 제749-3호 「매천 황현 교지․시권(2점)․백패통」은 황현이 1888년 생원시(生員試)에서 급제(1등 제2인)한 교지(敎旨), 1887년 전북 장수의 향시에 응시하여 장원한 시권(試券)과 1888년 생원시 2소에 응시하여 1등 제2인으로 급제한 시권(試券), 그리고 이를 보관한 백패(白牌)통이다. 당시 선비들이 지향했던 관계 입문의 첫걸음인 과거 시험과 관련된 유물로서,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다. 이 유품들은 순절한 우국지사의 일상을 보존하고, 이 시기 선비들의 생활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등록문화재 제750호 「윤희순 의병가사집」은 여성 독립운동가인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이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지은 낱장의 친필 가사들을 절첩(折帖)의  형태로 이어 붙인 순한글 가사집이다. 윤희순은 ‘안사람 의병가’ 등을 지어 부르게 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의병운동을 고취하고 지원하였으며, 대한독립단에서 활동하고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등 치열한 항일운동을 하였다. 「윤희순 의병가사집」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문집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크고, 근대 가사와 한글 표기 방식 등 국어학과 국문학 연구 등의 중요 기록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등록문화재 제751호 「서울 한양대학교 구 본관」은 한국전쟁 직후,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1956년 대학 본부로 건립되었다. 외관을 석재로 마감하고 정면 중앙부에 열주랑(列柱廊)을 세우는 등 당시 대학 본관 건물에서 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공학을 모태로 성장한 대학으로 경제 개발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기술 인력을 배출한 한양대학교의 역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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