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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보물(寶物) <1>
글쓴이 tntv 등록일 [2011.12.02]


보물이란 유형문화재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국보 다음으로 높은 문화재이다.

  

문화재보호법 부칙 제3조에 의하여 1962년에 종전의 국보를 국보와 보물 2종류로 나누었다. 같은 유형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나눈 기준은 국보는 작품의 제작기술·연대 등이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것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면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데 비해, 보물은 일반적인 지정 기준에 도달하는 문화재를 지정한 것으로 엄격한 구분은 불가능하다. 보물로 지정된 수는 국보보다 많으며, 지정번호는 가치의 높낮이를 표시한 것이 아니고 지정된 일련순서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지정대상은 목조건축·석조물·전적·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고고자료·무구(武具) 등이다. 지정의 법적 근거는 문화재보호법 제4조 제1항에 의거하여 "문화부장관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지정기준은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에 따라 관계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서 지정한다. 보물 지정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해방 후 제헌헌법 제100조에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의 효력을 계속 유지시켰다. 1955년에는 일제강점기에 보물로 지정된 419건(남한 367, 북한 52)을 일괄 국보로 승격·지정하여 보물은 한 점도 없게 되었다. 그후 1962년 1월 10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공포되고 이 법에 따라 국보와 보물로 분류·지정되어 1963년에는 386건이 보물로 다시 지정되었다.→국보 , 문화재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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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를 클릭하시면 보물 제1호부터 제1815호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B%B3%B4%EB%AC%BC

 

  보물 제1816호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昌寧 觀龍寺 大雄殿 觀音菩薩 壁畵)’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서 설법하는 유희좌(遊戱座)의 관음보살(觀音菩薩)을 벽면 전체에 걸쳐 그렸다.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한편, 관음보살이 머무는 보타락가산을 그리면서 특징적인 물가 표현을 생략하는 등 색다른 표현 형식이 나타나 의미가 크다.
* 유희좌(遊戱座): 불보살의 자세중 한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다른 한쪽 다리는 편안히 가부좌로 앉은 모양

 

  보물 제1817호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달마대사벽화(淸道 雲門寺 大雄寶殿 觀音菩薩?達摩大師 壁畵)’는 한 화면에 관음과 달마를 나란히 표현한 유일한 사례이자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경의 불화양식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보물 제1818호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서울 普陀寺 金銅菩薩坐像)’은 조선 초기로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의 금동으로 제작된 상이다. 여성적 면모가 느껴지는 얼굴 표현과 옷주름 형식은 조선 초기 보살상에서 볼 수 있는 양식적 특징으로, 조선 초기에 왕실이나 지배층이 발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요소이다.

 

  보물 제1819호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서울 奉恩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조선 후기 1651년 조각승 승일(勝一)이 중심이 되어 제작한 상이다. 1765년의 개금발원문(改金發願文)을 통해 1689년 무렵 화재가 발생하여 본존 석가여래상을 새로 조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삼불좌상 모두 조각적으로 우수하고, 발원문을 갖추고 있어 17세기 중후반의 불교조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 개금발원문(改金發願文): 불보살상 표면 금칠을 고쳐 하면서 시주자 등 관련 내역을 적은 글

 

  보물 제1820호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서울 玉泉庵 磨崖菩薩坐像)’은 5미터가 넘는 대형 마애상으로 엄숙하고도 단정한 보살상의 얼굴 표현, 유려한 설법인(說法印)의 손 모양 등 뛰어난 조각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 설법인(說法印): 여래나 보살 등이 설법할 때 취하는 손 모양.

 

  보물 제1821호 ‘서울 청룡사 석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서울 靑龍寺 石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지장보살삼존상을 중심으로 시왕상, 귀왕(鬼王), 판관(判官) 등이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명부전 조각의 구성형식을 잘 보여준다. 또 승일(勝一)이 우두머리 조각승으로 제작한 상으로 작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보물 제1822호 ‘서울 화계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서울 華溪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조각승 영철(靈哲) 등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지장보살삼존상과 함께 시왕, 판관, 사자(使者), 인왕(仁王) 등 총 25구이다. 당당한 신체와 율동적인 옷주름 묘사 등에서 수연(守衍), 영철로 이어지는 수연파의 작품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이번에 지정된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등 벽화 2건은 문화재청이 시행한 사찰건축물벽화 조사사업을 거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 5건은 불교문화재 일제조사사업을 통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적극 협조해 나갈 계획이다.


 보물 제1823호 ‘농경문 청동기(農耕文 靑銅器)’는 한 면에 따비 같은 농기구로 밭을 가는 남성과 추수하는 여성을 표현하고, 반대 면에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새긴 청동의기(靑銅儀器)다. 이러한 문양은 ▲ 많은 생산을 기원하는 농경의례 ▲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등에 나오는 솟대 ▲ 우리나라 민간신앙에 나타나는 신간(神竿)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농경문 청동기는 역사 기록이나 고고학 조사를 통해서 밝힐 수 없는 초기철기 시대의 생업과 신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문화사적 가치가 크다.
 * 따비: 논이나 밭을 가는 원시적인 형태의 농기구 연장
 * 신간(神竿): 무속에서 신령이 하강하는 통로 또는 신령의 임재(臨在)를 나타내는 나무

 

  보물 제1824호 ‘기장 장안사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機張 長安寺 石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17세기 중엽에 활약한 ‘녹원(鹿元)’이 수조각승(首彫刻僧)을 맡아 1659년에 불석(沸石)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삼불좌상은 중앙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 아미타불로 구성되었다. 본존 석가여래상은 턱이 짧은 방형(方形, 네모반듯한 모양)의 얼굴에 콧날이 우뚝하고, 부드럽고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다. 이 불상은 조성 연대와 작가가 밝혀져 있어, 17세기 중후반 불교 조각사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다.
 * 불석(沸石): 경주 일원에서 출토되는 연질의 돌

  보물 제1825호 ‘의성 만취당’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晩翠堂 金士元)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이곳을 찾은 온계 이해(溫溪 李瀣),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등 많은 인사의 시문이 남아있고, 현판은 석봉 한호(石峯 韓濩)의 친필이다. 1584년 완공된 이후 1727년(영조 3) 동쪽으로 2칸을 증축하였으며, 1764년(영조 40) 서쪽으로 1칸 온돌방을 증축하여 현재와 같은 T자형 평면이 완성되었다. 목조가구의 결구법 등에서 초창 당시의 건축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6세기 사대부가의 주거, 선비 문화, 사회적 요구에 따른 건축적 변화 과정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물 제1826호 ‘양산 통도사 영산전(梁山 通度寺 靈山殿)’은 1714년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의 건물로, 통도사 하로전(下爐殿)의 중심건물이다. 상부 가구와 공포 형식은 18세기 초 불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건축물 용도에 따른 불단 배치, 벽화를 구성하기 위한 벽면과 반자의 구성 등이 주목되는 건물로서 불교 건축사와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가치가 있다.

 

  보물 제1827호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梁山 通度寺 大光明殿)’은 1758년에 중건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통도사 중로전(中爐殿)의 중심 불전이다. 부재의 마름질과 조각 수법이 우수한 불전으로 평면 구성과 공포 형식, 창호 등에서 18세기 중반의 다포계 불전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 후기 불전 단청의 특색을 연구하는 자료로써도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보물 제1828호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서울 普陀寺 磨崖菩薩坐像)'은 개운사의 암자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암벽에 조각된 상이다. 전체적으로 넓은 어깨, 높은 무릎 등 당당한 신체를 보여준다. 마애보살좌상 오른편에 새긴 신중패(神衆牌)는 보살상의 조성 시기 추정에 참고가 된다. 이 상은 보물 제1820호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함께 여말선초에 유행한 보살상의 한 형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이다.

보물 제1829호 '대전 비래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大田 飛來寺 木造毘盧遮那佛坐像)'은 등신대(等身大)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단정한 조형감을 보여준다. 불상의 밑면에 쓰여 있는 기록을 통해 1650년(효종 1)의 정확한 제작 시기와 조각가[무염(無染)]를 알 수 있어, 17세기 불교조각 연구의 기준자료가 된다.

보물 제1830호 "
분청사기 상감 '정통4년명' 김명리 묘지(粉靑沙器 象嵌 '正統4年銘' 金明理 墓誌)"는 조선 시대 성천도호부 부사(成川都護府 副使)였던 김명리(金明理, 1368~1438년)의 가계와 이력 등 행장(行狀)을 적은 묘지이다. 종 모양으로 만들어진 묘지로 희귀한 사례이다. 지문(誌文)은 유의손(柳義孫, 1398~1450년)이 지었다. 이 묘지는 개인사를 적고 있으나 조선 초기의 사료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어서 자료적 가치도 높다.

  보물 제1831호 ‘의성 대곡사 대웅전(義城 大谷寺 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인 건물로, 1687년(숙종 13)에 태전선사(太顚禪師)가 다시 중건(重建)하였다고 전해진다. 대곡사 대웅전 중건 당시의 시기적 경향을 읽을 수 있는 특징으로 공포의 형태, 배면의 영쌍창(靈雙窓, 창호 중간에 기둥을 두어 창문이 두 개처럼 보이는 창), 외부 마루 흔적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특징은 18세기 이전 건물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고식(古式)으로, 의성 지역 불교사찰이 부흥하기 시작한 시대의 양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써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보물 제1832호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麟蹄 鳳頂庵 五層石塔)’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해발 1244m 높이에 위치한 봉정암 경내에 있는 높이 3.6m 규모의 석탑이다. 석탑은 기단부․탑신부․상륜부의 3부분이 조화를 이루며 건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봉정암 오층석탑은 거대한 자연 암석을 기단으로 삼아 바위 윗면을 다듬어 2개의 단을 만들고, 그 주변에 16개의 연잎을 조각하여 기단부를 조성하였다. 그 위에 올려진 탑신석(塔身石, 몸돌)은 3층까지 모서리에 우주(隅柱, 기둥)가 모각(模刻)되어 있다. 탑신석 위에 올려진 두꺼운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은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하며 끝부분만 살짝 반전된 형태이다. 상륜부는 연꽃 봉오리 또는 보주 형태의 석재를 올려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 기단부를 생략하고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았다는 점 ▲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라는 점 ▲ 고대의 일반형 석탑이 고려 후기에 단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보물 제1833호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金堤 靑龍寺 木造觀音菩薩坐像)’은 완주 봉서사 향로전(鳳棲寺 香爐殿)에 봉안(奉安)하기 위해 1655년에 조능(祖能)이라는 조각승이 제작한 관음보살상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제작 시기와 조각승, 봉안 장소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안녕과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는 발원문(發願文)이 남아 있어 17세기 중엽 불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또 비록 상(像)은 소형에 해당되지만, 조선 후기 미의식인 대중적인 평담미(平淡美)를 담담하게 잘 표현하여 발원문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 봉안(奉安): 신주(神主)나 화상(畵像)을 받들어 모심
 ※ 발원문(發願文):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적은 글
 ※ 평담미(平淡美): 평범하면서 담백한 아름다움
 
  보물 제1834호 “나주 다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십육나한좌상(羅州 多寶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塑造十六羅漢坐像)”은 여러 존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1625년이라는 정확한 조성 시기와 조성 목적, 제작자, 시․발원자 등 불상의 조성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어 이 시기 불교조각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불상은 17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수연(守然)과 그의 일파가 제작한 것으로, 16나한(羅漢)의 신통력과 특징을 생동감 있게 연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16나한(羅漢): 현세에서 정법(正法)을 지키는 16명의 아라한(阿羅漢)을 일컫는 말
 



보물 제1835호 ‘정종 적개공신 교서 및 관련 고문서(鄭種 敵愾功臣 敎書 및 關聯 古文書)’는 공신의 녹훈(錄勳, 공을 장부나 문서에 기록함) 사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교서와 무과 급제 교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로 되어 있는 적개공신 교서는 보물 제604호 ‘장말손 적개공신 교서(張末孫 敵愾功臣 敎書)’뿐이며, 이번에 보물로 지정하는 ‘정종 적개공신 교서’는 1467년(세조 13)에 발급된 문서로서 전해 내려오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아울러 ‘정종 적개공신 교서’와 함께 보물로 지정된 ‘정종 무과 홍패(鄭種 武科 紅牌)’는 1442년(세종 24) 발급된 교지(敎旨)로서, 무과 급제 교지 가운데 발급 시기가 앞서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조선 시대 고신(告身)의 서식이 왕지(王旨)에서 교지로 바뀌는 시기에 발급된 교지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보물 제1836호 ‘초조본 불정최승다라니경(初雕本 佛頂㝡勝陁羅尼經)’과 보물 제1837호 ‘초조본 불설문수사리일백팔명범찬(初雕本 佛說文殊師利一百八名梵讚)’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으로, 현재 전하는 것이 없는 유일본이기 때문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초조본 불정최승다라니경’은 초조대장경의 다양한 장차표시(張次表示)의 형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불교학(佛敎學)과 서지학(書誌學) 연구를 위한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편, ‘초조본 불설문수사리일백팔명범찬’은 권말(卷末)에 기록된 증의(證義), 필수(筆授), 철문(綴文), 증범문(證梵文), 증범의(證梵義), 윤문(潤文) 등 역경과 초조대장경의 간행과 관련된 여러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보물 제1838호 ‘초조본 법원주림 권82(初雕本 法苑珠林 卷八十二)’와 보물 제1839호 ‘초조본 불설일체여래금강삼업최상비밀대교왕경 권4(初雕本 佛說一切如來金剛三業最上秘密大敎王經 卷四)’는 초조대장경의 판각이 일단락된 1087년(선종 4) 이후에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이 수집·편찬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수록된 불전(佛典)이 추조(追雕)되어 초조대장경에 편입된 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초조본 법원주림 권82’는 1090년(선종 7) 이후에 판각되어 초조대장경에 편입된 초조대장경의 추조본(追雕本)으로 매우 희귀한 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초조본 불설일체여래금강삼업최상비밀대교왕경 권4’는 비록 권두의 2장이 훼손되어 후대에 보수되었으나, 초조대장경의 추조본(追雕本)으로 전본(傳本)이 매우 희귀한 판본이다.

 보물 제1840호로 지정된 ‘청송 보광사 극락전’이 위치한 보광사는 “관아의 남쪽 5리에 있으며 심홍부(沈弘孚)의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이라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전하고 있어 15세기 심홍부의 수호사찰로 지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보물 제1841호 ‘강진 고성사 청동보살좌상(康津 高聲寺 靑銅菩薩坐像)’은 높이 51cm로, 윤왕좌 자세를 취하고 있는 현존 불상 중 가장 크다. 특히▲ 이국적인 얼굴에 우아한 미소를 띤 표정과 편안한 좌세 ▲ 탄력적․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천의(天衣) 자락 ▲ 살며시 천의 자락을 손바닥으로 짚고 있는 모습 등의 생동감 있는 표현력으로 보아, 고려 후기 불상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물 제1842호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益山 觀音寺 木造菩薩立像)’은 석가여래삼불좌상을 협시(脇侍)하는 4구의 보살상 가운데 하나로서, 조선 후기 불전의 봉안 형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이 보살상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조각승 원오(元悟)가 수조각승(首彫刻僧)을 맡아 1605년에 제작한 불상으로, 17세기 초 조각승들의 활동과 조각 전통의 계승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불상이다.


보물 제1843호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康津 淨水寺 釋迦如來三佛坐像)’은 목조좌대의 묵서(墨書, 먹물로 쓴 글씨)를 통해 우협시불상(右脇侍佛像)은 1561년에, 본존과 좌협시불상(左脇侍佛像)은 1645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존과 좌협시불상에서 보이는 균형 잡힌 상호(相好)와 신체, 힘 있는 선 표현은 승일(勝日)의 조각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우협시불상의 착의 형태 표현은 16세기 중,후반의 조각 경향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1844호 ‘경주 월지 금동초심지가위(慶州 月池 金銅燭鋏)’는 경주 궁성과 인접한 월지(月池)에서 출토된 초의 심지를 자르는 특수 용도의 가위로, 전면에 새겨진 섬세한 어자문(魚子文)을 통해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가위는 당초문(唐草紋, 덩굴풀 무늬)을 입체화한 신라인의 창의적인 조형성과 독창성이 잘 드러나며, 동판재를 단조한 성형기법과 어자문 장식기법은 통일신라 시대 금속공예의 특징을 대표하고 있다. 아울러 이 유물은 일본 정창원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가위의 생산지를 밝혀준 근거 유물로서, 8세기 한일교섭사의 중요자료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물 제1845호 ‘부여 사택지적비(扶餘 砂宅智積碑)’는 백제 의자왕 대의 인물인 대좌평(大佐平, 백제의 고위 관직) 사택지적이 은퇴 후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비(碑)이며, 백제인의 손으로 제작된 유일한 비석(碑石) 형태의 유물이다. 이 비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삶과 사상, 백제 관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며, 격조 있는 문체와 서법은 백제의 높은 수준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 비를 제작한 사택지적(砂宅智積)은 백제의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사택씨(砂宅氏) 출신으로, 󰡔일본서기󰡕에 의하면 대좌평(大佐平)의 지위로 왜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보물 제1846호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8(大方廣佛華嚴經 貞元本 卷八)’은 당나라의 반야(般若, 생몰년 미상)가 진본(晋本) 60화엄경과 주본(周本) 80화엄경 중에서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을 번역한 것으로, 간행 시기는 11세기 초․중반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26행 17자본의 희귀본이며, 판각(板刻) 수법도 현존하는 「화엄경」 판본 중 매우 우수한 것에 속한다.


보물 제1847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4(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四)’는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년)가 새롭게 번역한 것으로, 현재 해인사 사간판(寺刊板)의 모본(母本)으로 추정되며, 고려대장경을 간행할 때 저본(底本)으로 사용되었던 1098년 판본의 국내 전래본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본이며, 본문 옆에 표시된 각필(角筆)의 점토(點吐)는 각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1848호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는 선(禪) 수행의 필독서로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저술한 「수심결」을 바탕으로 1467년(세조 13)에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조선 세조(1417∼1468년)가 경복궁 비현각(丕顯閣)에서 구결하고,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 1403∼1480년)가 국역한 것으로 4편의 「법어」로 한데 묶여 있다. 이 언해본은 세조 대에 불경 간행을 위하여 설치한 간경도감의 성격과 훈민정음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보물 제1851호 ‘논산 쌍계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論山 雙溪寺 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1605년에 조성된 석가여래삼불좌상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조각승 원오(元悟)의 현존 최초 작품이자 그의 작품 특성이 잘 드러나는 현존 최고(最高)의 대작이다. 삼불좌상은 석가, 아미타, 약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삼불상의 어깨가 넓고 허리가 긴 장대한 체구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로 이어진 불교조각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풍만한 얼굴과 자비로운 표정은 위봉사 북암 보살입상의 사실적인 얼굴과 거의 흡사하여 원오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보물 제1852호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南原 禪院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塑造十王像 一括)’은 1610년과 1646년에 제작된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존상들은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발원문(發願文)에 의해 두 차례에 걸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원오가 1610년에 수조각승(首彫刻僧)을 맡아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 주요 상들을 조성하였고, 두 번째는 도색(道賾)이 1646년에 수조각승을 맡아 귀왕상, 사자상 등 기타 권속(眷屬)들을 제작하였다. 이 상들은 각각 17세기 전․중반의 시기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명부(冥府) 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보물 제1853호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完州 淨水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은 순치 9년(1652)에 무염(無染)이 수조각승을 맡아 완성한 작품이다. 무염이 수조각승을 담당한 작품은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5년)을 포함하여 여러 지역에 다수의 존상들이 전하고 있으나, 정수사의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조형적인 면에서나 규모 면에서 무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보물 제1854호 ‘김천 고방사 아미타여래설법도(金泉 古方寺 阿彌陀如來說法圖)’는 1688년에 조성된 고방사의 후불화(後佛畵)로서, 민원(敏圓)을 수화승(首畵僧)으로 하여 죽총(竹䕺), 경찬(竟粲), 각림(覺林) 등 총 4명의 화승이 그렸다. 이 불화는 수화승 민원의 유일한 작품으로, 본존의 키형 광배와 높은 육계(肉髻)의 표현, 천공(天空) 바탕에 표현된 화문(花紋, 꽃무늬) 등 세부표현과 기법에서 17세기 후반 불화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 키형 광배: 곡식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인 키 모양의 광배

 

  보물 제1855호 ‘원주 구룡사 삼장보살도(原州 龜龍寺 三藏菩薩圖)’는 1727년에 화승 백기(白基)와 영휘(英輝)가 조성하여 치악산 구룡사에 봉안했던 삼장보살도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 등, 수륙재(水陸齋)의식집에 근거하여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지보살(持地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등 세 보살의 회상(會上)을 묘사하였다. 이 불화는 18세기 전반 영가천도(靈駕薦度)와 추선공양(追善供養)을 위한 수륙재의식 때 봉안되었던 작품으로, 이 시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 수륙재(水陸齋): 물과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에게 공양을 드리는 불교의식

 

  보물 제1856호 ‘대구 서봉사 지장시왕도(大邱 瑞鳳寺 地藏十王圖)’는 18세기에 직지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화승 세관(世冠)이 1741년에 삼옥(三玉), 월륜(月輪), 서징(瑞澄), 순간(舜侃), 존혜(尊惠), 우평(宇平), 응잠(應岑) 등과 함께 조성한 불화이다. 이 작품은 세련되고 우아한 표현 형태와 필선, 채색 등을 보여주는 이 시기 지장시왕도의 대표작이다. 또한, 이 시왕도에는 건륭6년(1741) 5월에 유명회(幽冥會)를 조성하여 남장사 무량수전에 봉안했다는 화기(畵記)가 남아 있어 조성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보물 제1857호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永川 銀海寺 念佛往生捷徑圖)’는 ▲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중생들을 반야용선(般若龍船)에 태우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장면 ▲ 이를 맞이하는 아미타불 일행 ▲ 극락연지(極樂蓮池)에서 연화화생(蓮花化生)하는 왕생자 ▲ 보수(寶樹)와 극락조(極樂鳥) 등 극락의 장엄한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 불화이다. 조선 후기에는 극락왕생의 모습을 직접 그린 불화가 약 20여 점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작품은 현존하는 조선 후기 극락왕생도 중 가장 이른 예이다.
  * 반야용선(般若龍船): 사바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의 극락정토로 중생을 건네주는 반야바라밀의 배
  * 연화화생(蓮花化生): 연꽃이 만물을 화생, 즉 상서로운 조화로서 다시 탄생시킨다는 불교적 생성관으로 저승에서는 모든 존재가 화생이라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함
  * 보수(寶樹): 극락에 일곱 줄로 벌여 있는 보물 나무

 

  보물 제1858호 ‘보은 법주사 동종(報恩 法住寺 銅鍾)’은 1636년이라는 분명한 제작연대,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를 비롯한 섬세한 세부 문양과 더불어 17세기 전반에서 중반까지 활약한 죽창(竹淐)․정우(淨祐)계 범종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조선 후기 동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보물 제1859호 ‘김천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金泉 直指寺 大雄殿 須彌壇)’은 ‘순치팔년신묘사월 대웅전 황악산 직지사(順治八年辛卯四月 大雄殿 黃岳山 直指寺)’라는 1651년 묵서기(墨書記)가 확인되었으며, 이를 근거로 대웅전의 중건과 함께 17세기 중반에 제작된 불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불단은 1668년 작품으로 보이는 삼존불상과 벽화·단청, 1744년 그려진 삼존후불탱화와 함께 예배대상으로 조성된 점에서 조선 후기 불전 건축의 내부 장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보물 제1860호 ‘부여 무량사 삼전패(扶餘 無量寺 三殿牌)’는 1654년에 철학, 천승, 도균이 제작한 것으로, 이 패에 기록된 “二層殿丹靑畢後而兼備三殿牌(이층전 단청을 마친 후 삼전패를 겸비하였다)”의 내용에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삼전패는 정확한 제작 연대와 제작 장인들을 알려주는 묵서명(墨書銘)이 있고,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 목공예의 편년과 도상(圖像)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어 의의가 크다.


  보물 제1861호 ‘보성 대원사 극락전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寶城 大原寺 極樂殿 觀音菩薩․達摩大師 壁畵)’는 대원사에 소장된 「寶城天鳳山大原寺大法堂十王殿與衆寮重刱及丹靑兼地藏改金畵各帖記文」(대원사 티베트박물관 소장)이라는 현판의 기록으로 보아, 1767년 대법당 중창 무렵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벽화는 불전 내부 동․서 벽면에 관음보살도와 달마도를 배치한 독특한 사례이자 운문사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특히 18세기 중·후반 크게 활약했던 의겸파 화풍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보물 제1862호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麗水 興國寺 大雄殿 觀音菩薩 壁畵)’는 한지에 그려 벽에다 붙여 만든 첩부벽화(貼付壁畵)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재 국내에 전하는 조선 후기 주불전 후불벽의 관음보살도는 10여 점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벽에다 직접 그린 것이다. 첩부벽화는 미황사 천불도 벽화에서 보듯이, 보통 천장의 장엄화나 대량(大樑, 대들보)의 별화(別畵)에 사용되었으나, 후불벽 전면에 예불화로 그려진 것은 이 벽화가 유일하다.

 

  보물 제1863호 ‘해남 대흥사 석가여래삼불좌상(海南 大興寺 釋迦如來三佛坐像)’은 서산대사의 의발(衣鉢, 승려의 가사와 바리때)이 1606년 대흥사에 봉안된 후 6년이 지나 제작된 기념적인 불상이다. 좌우협시 불상에서 발견된「소성복장기(塑成腹藏記)」에는 정확한 조성시기(1612년)와 태전을 비롯한 제작에 참여한 10명의 조각승, 불상 제작에 필요한 시주 물목(물건의 목록)이나 참여했던 380여 명의 사부대중(四部大衆)을 모두 기록하고 있어 불상의 가치를 한 층 높여준다.
  * 사부대중(四部大衆):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네 부류의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출가한 남녀 수행승인 비구․비구니와 남녀 신도인 우바새(거사)․우바이(보살)을 지칭

 

  보물 제1864호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소상팔경”을 주제로 8폭이 모두 갖추어진 완전한 형태의 작품이자, 조선 초기 문인사회의 시화일치사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수화이다. 또한, 16세기 전반 안견파 화풍의 양식적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회화사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회화는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재일동포의 기증을 통해 환수된 문화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소상팔경(瀟湘八景圖): 소상 땅의 여덟가지 승경을 고른 것으로, 산시청람, 어촌석조, 원포귀범, 소상야우, 연사만종, 동정추월, 평사낙안, 강천모설을 드는 것이 보통이다.

 

  보물 제1865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2(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七十二)’는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신역(新譯)한 주본(周本) 80화엄경 가운데 제72권에 해당된다. 이는 현재 해인사 사간판(寺刊板)의 모본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고려대장경을 간행할 때에 저본(底本)으로 사용되었던 수창(壽昌) 4년(1098) 판본의 국내 전래본으로 추정된다. 이 불경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본이며, 불경과 불교학, 서지학의 연구에는 물론 고려 시대 목판 인쇄문화의 연구에도 크게 활용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1866호 ‘삼국유사 권1~2 (三國遺事 卷一~二)’는 2권 1책만이 남아 있어 자료로서의 한계는 있으나, 임신본(壬申本, 1512년) 이전에 간행․공개된 판본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지금까지 임신본의 판독하기 어려운 글자들은 비교할 대상이 없었으나 이 판본으로 인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고, 현전하지 않는 인용문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물 제1219-3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하 1의1∼2, 2의1∼2(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諺解) 卷下 一之一∼二, 二之一∼二)’는 세조 11년(1465)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국역한 책을 바탕으로, 한글 구결(口訣) 부분만 편집하여 금속활자인 을유자(乙酉字)로 간행한 불경이다. 을유자는 주로 불경 간행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유신(儒臣)들의 강한 반대로 오랫동안 사용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전본(傳本)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귀중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조선 시대 국어학과 금속활자 연구에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을유자(乙酉字): 세조 11년(1465년)에 정난종(鄭蘭宗)의 글씨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 동활자


보물 제1867호로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慶州 南山 昌林寺址 三層石塔)’
석탑이 위치한 창림사지는 그간 조사된 탑지와 건물지로 미루어 통일신라 시대 사찰로 추정되며, 탑의 조성시기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가 이곳을 찾았을 때 모사해 둔 ´무구정탑원기(無垢淨塔願記)´를 근거로 신라 문성왕 때(855년)로 보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다.
  * 무구정탑원기(無垢淨塔願記): 탑의 건립배경과 참여 인력, 발원 내용 등을 기록한 금동판으로, ‘무구정’은 불교경전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뜻함

보물 제1868호 ‘포항 보경사 적광전(浦項
寶鏡寺 寂光殿)'보경사 연기(緣起, 절을 짓게 된 유래 등에 대한 설화)에 따르면,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2) 진(陳)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智明) 법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1588년 사명대사 유정이 지은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鏡寺金堂塔記)’에는 통일신라 경덕왕 4년(745)에 승려인 철민 화상(哲敏 和尙)이 중창(重創)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의 적광전은 조선 숙종 3년(1677)에 중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1880호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고려 먹(淸州 明岩洞 出土 ‘丹山烏玉’銘 高麗 墨)」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고려 먹」은 1998년 청주시 동부우회도로 건설공사 구간 내 명암동 1지구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목관묘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 먹이다.

보물 제1881호   ‘서울 창의문(서울 彰義門)’ 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 1396년 (태조 5) 도성 축조 시 건립되어 숙정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설에 의해 폐쇄하여 통행을 금지했으며, 이후 1506년(중종 1) 다시 문을 열어 통행이 가능해졌다.

보물 제1882-1호「고려 십육나한도(제7 가리가존자)」는 시자(侍者, 시중드는 사람)의 시봉(侍奉, 높은 사람을 모시고 받듦)을 받으며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사색하는 이국적인 모습의 수행자를 수묵담채로 담담하게 담아내었는데, 바위와 수목을 배경으로 하는 고려 오백나한도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16나한도로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제15 아벌다존자(阿伐多尊者)와 이 작품이 유일할 정도로 희귀하다. 화기(畵記, 그림이 제작된 경위 등을 적은 기록)를 통해 고려 시대에 제작된 일련의 나한도들과 함께 1236년(고려 고종 23) 김의인(金義仁)의 주관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불화의 기준작이다.
  * 16나한도: 석가모니로부터 불법을 전수받은 16명의 제자를 그린 그림

 

  보물 제1882-2호「고려 십육나한도(제15 아벌다존자)」는 대나무 주장자(拄杖子, 수행승이 지니고 있는 지팡이)에 의지해 팔걸이와 등받이가 있는 큼직한 의자에 앉아 2명의 시자에게 시봉 받고 있는 늙은 비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나한도는 사실적인 인물 묘사, 유려한 필선, 활달한 농묵의 사용, 그리고 붉은색과 백색, 먹색 등의 묘한 색채 대비를 통하여 고려 불화의 높은 격조를 보여준다. 특히 존자의 의자 밑에 자그맣게 묵서로 ‘혜간(惠間 또는 惠閒)’이라는 작자명을 적어 놓았는데, 고려 16나한도와 오백나한도를 통틀어 작자명이 기록된 유일한 예로도 주목된다.

 

  보물 제1883호「고려 오백나한도」는 부처의 제자 중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500명의 나한을 한 화면에 한 존자씩 그린 그림으로, 남아 있는 예가 매우 드물다. 이번에 지정된 「고려 오백나한도」는 모두 6폭으로, 제92 수대장존자(守大藏尊者), 제125 진보장존자(辰寶藏尊者), 제145 희견존자(喜見尊者), 제170 혜군고존자(慧軍高尊者), 제357 의통존자(義通尊者), 제427 원원만존자(願圓滿尊者)이다. 모든 작품에서 존자의 차례와 존명(尊名)을 명시하여 이해를 돕고 있고, 화기를 통해 1235~36년(고려 고종 22~23) 무렵에 적병(敵兵)의 속멸(速滅), 국토의 태평, 국왕의 장수 등을 발원하며 김의인(金義仁)의 주관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어 고려 불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 아라한과(阿羅漢果): 수행을 완수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 생사의 세계에 윤회하지 않는 자리로, 성문 사과(聲聞 四果)의 가장 윗자리를 이름

 

  보물 제1884호「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은 1471년〔성종2, 성화(成化)7〕3월에 치러진 별시(別試)의 문무과(文武科) 합격자를 수록한 명단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관련 유물 중 가장 시기가 앞선다. 또한, 과거시험에 합격한 조빈(趙鑌)이 발문(跋文, 책 끝에 간행 동기와 과정을 적은 글)을 직접 지어 수록한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아울러 현재 전하는 인본이 적은 을유자(乙酉字) 중간자(中間字)만으로 찍어냈다는 점에서 서지학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 을유자(乙酉字): 1465년(세조 11)에 정난종(鄭蘭宗)의 글씨를 기본으로 만든 금속활자. 큰자, 중간자, 작은자 등 3종으로 구성됨

 

  보물 제1885호「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705년 당나라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 계환(戒環)이 해설한 경전으로, ‘대불정수능엄경’ 또는 ‘능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체득하여 힘을 갖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으며, 스님들이 수련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이번에 지정된 책은 고려 충선왕 1년(1309)에 간행된 판본의 초인본(初印本)으로 자획이 분명하고 묵색도 선명하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순독구결(順讀口訣)의 토(吐)가 기입되어 있는데, 가장 이른 시기의 구결이라는 점에서 훈민정음 이전의 국어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순독구결(順讀口訣):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의 하나. 한문의 단어나 구절 사이에 ‘토(吐)’를 달아 한문을 순서 그대로 읽기 편하게 사용한 구결 
 
  보물 제1886호「재조본 유가사지론 권20」은 인도 미륵보살의 저술을 당나라 승려인 현장(玄奘, 602~664)이 한역(漢譯)한 100권 중의 제20권이다.「유가사지론」은 대승불교 중 ‘유가파(瑜伽派)’의 기본 논서(論書)로, 유가행을 닦는 사람의 수행 단계인 17지(地)를 밝혀 깨달음에 이르는 실천법을 담고 있다. 책 마지막 부분의 ‘병오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丙午歳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라는 간기(刊記, 책의 간행에 관한 기록)로 고려 고종 33년(1246, 丙午)에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판각한 재조대장경의 판본으로서 중요하며, 특히 각 장 각 행의 좌우에 석독구결(釋讀口訣)이 필사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보물 제1887호「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는 1307년에 작가 노영(魯英)이 흑칠한 나무 바탕 위에 금니(金泥, 아교에 갠 금박가루)로 그린 금선묘(金線描) 불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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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888호「구례 천은사 삼장보살도」는 1776년에 천은사 대법당(극락전) 중단(中壇)에 봉안하기 위해 화련(華連) 등 14명의 화승(畵僧)이 제작한 것이다

 보물 제1889호「구례 천은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은 보살상의 복장(腹藏, 불상을 만들 때 뱃속에 봉안하는 사리 등의 물건)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태능(太能)과 영원(靈源)의 발원으로 조각승 현진(玄眞)을 비롯한 5명의 조각승이 1614년 6월에 조성한 불상이다.

 보물 제1890호「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은 2012년 6월 석탑의 해체 수리 시 지대석 윗면에 마련된 사각형 홈에서 발견된 것이다.

 보물 제1891호「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은 42수(手) 천수관음상으로, 1894년에 작성된「흥천사사십이수관세음보살불량시주」현판 기록을 통해 늦어도 19세기부터는 흥천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892호「익재난고」권6~7  보물 제1893호「역옹패설」은 고려 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년)이 지은 책이다.

 보물 제1894호「퇴계선생문집」및 보물 제1895호「퇴계선생문집목판」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년)의 학문적 성과를 집성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보물 제1896호 부산 운수사 대웅전은 2013년 전면 해체 수리 때 종도리(宗道里)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1647년 공사를 시작해서 1655년 완공되었음이 확인되어, 부산 지역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보물 제1897호 「서경우 초상 및 함」은 조선 중기 문신 서경우(徐景雨, 1573∼1645)의 초상으로, 지금까지 큰 손상 없이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다.

보물 제1898호 「서문중 초상 및 함」은 조선 후기 문신 서문중(徐文重, 1634∼1709)의 초상으로, 조선 시대 시복본(時服本) 전신좌상(全身坐像) 가운데 높은 예술성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보물 제1899호 「은제도금화형탁잔(銀製鍍金花形托盞)」은 은에 금을 입힌 탁잔(托盞)으로, 잔과 잔을 받치는 잔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잔과 잔탁의 형태는 모두 6개의 꽃잎형으로 이루어져 고려 은제탁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조형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보물 제1900호「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는 후한조(後漢朝) 위백양(魏伯陽, 100~170)의 저술로, 도가(道家)의 심신수련 방식과 장생불로(長生不老)를 위하여 복용하는 단약(丹藥)의 제조법에 관한 4~5자의 운문(韻文)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제1901호 「조선왕조의궤」는 조선왕조에서 길례(吉禮)·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嘉禮)를 비롯한 여러 대사(大事)를 치를 때 후세의 참고를 위하여 그와 관련된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하게 정리한 책이다

 

보물 제1902호 「제주향교 대성전은 1394년(태조 3) 제주 관덕정(보물 제322호)에서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5차례 자리를 옮겨 1827년(순조 27) 현 위치에 들어섰다.

보물 제1903호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고려시대 후기에 제작된 이 그림은 선지식(善知識, 지혜와 덕망이 있는 승려)을 찾아다니며 진리를 터득했다는 선재동자가 보타락가산에 머무는 관음보살을 만나 깨달음을 구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보물 제1904호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金泉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 出土 舍利莊嚴具)」는 1916년에 갈항사 터의 동·서 삼층석탑을 경복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보물 제1905호「서울 청진동 출토 백자항아리(서울 淸進洞 出土 白磁壺)」는 2009년 종로구 청진동 235-1 일원 피맛골에서 일괄 출토된 순백자항아리 3점이다.

보물 제1906호 「대명률(大明律)」은 조선 왕조의 법률, 특히 형률(刑律)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 태조는 1392년 반포한 즉위교서에서 명나라의 형률서인『대명률(大明律)』을 쓰기로 선언한 이후, 형률을『경국대전(經國大典)』에 담지 않고『대명률』을 우리 현실에 맞게 해석하여 사용하였다.

보물 제1907호 「함통6년명 청동북(咸通六年銘 靑銅金鼓)」은 865년(경문왕 5)에 만들었다는 명문이 적혀 있어, 우리나라에서 제작연대가 새겨진 청동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보물제1908호 「묘법연화경 목판(妙法蓮華經木板)」은 강화 전등사 소장본으로, 『대방광불화엄경』과 더불어 대표적인 불교 경전 중 하나인 『묘법연화경』을 새긴 것이다.

보물 제1909호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大方廣佛華嚴經疏木板)」은 순천 송광사 소장본으로, 우리나라에 현재 전해지고 있는 불서 목판 중에서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다음으로 가장 방대한 자료인 2,347매가 현재 보존되어 있다.

보물 제1910호 「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誡初心學人文(諺解)木板〕」은 불교를 수행하는 초보자가 경계해야 할 내용을 적은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계초심학인문’을 비롯하여 ‘(사)법어〔(四)法語〕‘,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 등이 함께 수록된『계초심학인문』을 한글로 풀어쓴 언해본(諺解本)이 새겨진 목판이다.

보물 제1911호 「인천안목 목판(人天眼目木板)」은 순천 송광사 소장본으로서, 전체 42매가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다. 『인천안목』은 남송(南宋)의 승려 청안 지소(靑眼智昭)가 펴낸 책으로 당시 중국 선종의 5가(五家)인 임제종(臨濟宗), 위앙종(潙仰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의 핵심적인 내용을 알리기 위한 가르침들을 수록하였다.

보물 제1912호 「종경촬요 목판(宗鏡撮要木板)」은 순천 송광사 소장본으로, 모두 17매로 구성되어 있다. 『종경촬요』는 북송(北宋)의 승려 영명연수(永明延壽)가 편찬한『종경록(宗鏡錄)』의 요점을 간추려 엮은 책으로, 1213년 수선사(修禪社, 현재의 송광사)에서 진각국사 혜심(慧諶)이 주관하여 재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 전해지고 있는 목판은 없다.

보물 제1913호 「청량답순종심요법문 목판(淸凉答順宗心要法門木板)」은 순천 송광사 소장본으로, 당나라 승려 징관(澄觀)이 당나라 제10대 황제 순종(順宗)의 물음에 따라 법문에 이르는 긴요한 진리를 간명하게 설법한『청량답순종심요법문』을 2매의 목판에 새긴 것이다.

보물 제1914호 「천지명양수륙잡문 목판(天地冥陽水陸雜文木板)」은 순천 송광사 소장본으로, 수륙재(水陸齋)에 관한 불교의식집인『천지명양수륙잡문』144장을 총 38매의 목판에 새긴 것이다.

보물 제1915호 「달마대사관심론 목판(達磨大師觀心論木板)」은 서산 개심사 소장본으로, 중국 선종의 시조인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설한 심론(心論)을 정리한『달마대사관심론』을 새긴 것이다.

보물 제1916호 「달마대사혈맥론 목판(達磨大師血脈論木板)」은 서산 개심사 소장본으로, 중국 선종의 시조인 보리달마(菩提達磨)의 법문을 문답형식으로 기록한『달마대사혈맥론』제1~20장을 목판 7매에 담은 것이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17호  
경상북도 예천군에 있는「예천 야옹정」(醴泉 野翁亭)은 조선 중종 때 학자인 야옹(野翁) 권의(權檥, 1475~1558)의 아들 권심언(權審言)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아버지의 호를 따서 ‘야옹정’이라 이름 붙였다.

보물 제1918호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高敞 文殊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인간 세계를 교화하는 석가여래를 중앙에 두고 좌우에 동ㆍ서방의 정토(淨土)를 다스리는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배치한 삼불형식을 보여준다.

보물 제1919호「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奉化 淸凉寺 乾漆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은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각하여 만든 건칠불상이다.

보물 제1920호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高敞 文殊寺 木造地藏菩薩坐像 및 十王像 一括)」은 삭발한 승형의 지장보살상과 제왕형의 시왕(十大王)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제1921호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梁山 金鳥塚 出土 遺物 一括)」은 경주가 아닌 양산 북정리(北亭里)에서 발견된 신라 고분군으로 신라 고분 문화의 전파와 계보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보물 제1922호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釜山 福泉洞 出土 金銅冠)」은 현재 신라권에서 출토된 관 가운데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형태이다.

보물 제1923호 「정조 어찰첩(正祖 御札牒)」은 정조가 1796~1800년까지 4년간 좌의정 등 고위직을 역임한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로 300통에 달하는 다양한 내용의 어찰이 날짜순으로 6첩 장첩되어 있다.

 보물 제1924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은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조선 초기인 1394년 국가경영을 위한 통치전범을 마련하기 위하여, 조선의 건국이념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전반에 대한 기본방향을 제시한 서적이다.

보물 제1147-3호 「묘법연화경 권5~7(妙法蓮華經 卷五~七)」은 1470년(성종 1)에 세조비(世祖妃)인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차남인 예종(睿宗)이 돌아가자 이미 고인이 된 세조(世祖)와 장자인 의경왕(懿敬王;德宗) 그리고 예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왕실판본이다.

보물 제1196-2호 「묘법연화경 권4~7(妙法蓮華經 卷四~七)」은 태종의 넷째 아들인 성녕대군(誠寧大君)이 14세에 요절하자 그의 장인으로 인순부윤(仁順府尹) 직에 있던 성억(成抑)이 성녕대군과 대군의 모친인 원경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경전이다.

보물 제1618-2호 「국새 황제지보(國璽 皇帝之寶)」, 보물 제1618-3호 「국새 유서지보(國璽 諭書之寶)」, 보물 제1618-4호 「국새 준명지보(國璽 濬明之寶)」는 한국전쟁 중 미국으로 유출된 것을 2014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 방한(2014.4.25.~26.) 당시 돌려받은 문화재이다.

보물 제1925호「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金剛山 出土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具 一括)」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에 많은 신하와 함께 발원한 사리장엄구로서 1932년 금강산 월출봉 석함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보물 제1926호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는 과거 시험 준비생들의 수요를 염두에 두고, 권람의 교정을 거쳐서 간행한 한국(신라)과 중국의 시인 30명의 시선집이다.

보물 제1927호 「박동형 초상 및 함(朴東亨 肖像 및 函)」은 1728년에 그려진 박동형의 ‘전신좌상본’ 및 1751년에 그려진 ‘반신상본’과 각 함(函)이다. 박동형(1695~1739)은 무신란 당시 반란 주동자 중 하나인 박필현의 포획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며 공신 반열에 올라 충주박씨 가문을 공신 가문으로 격상시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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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928호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慶州 味呑寺址 三層石塔)’ 은 높이 6.12m의 규모에 총 35매의 부재로 구성된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1980년 이전까지는 기단부와 탑신부(塔身部, 몸돌)의 일부 부재가 소실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1980년에 남은 부재들을 활용해 복원됐다.

보물 제1929호 「김윤겸 필 영남기행화첩(金允謙 筆 嶺南紀行畵帖)」은 진재(眞宰) 김윤겸(1711~1775)이 합천, 거창, 함양, 산청과 부산(동래) 등 영남지역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그린 14장의 화첩이다.

보물 제1930호 「청자 퇴화초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및 승반(靑磁 堆花草花文 瓢形 注子 및 承盤)」은 퇴화(堆花) 기법으로 초화문(草花文)을 베푼 주전자와 승반(밑받침 접시)이다.

보물 제1931호 「청자 죽순모양 주전자(靑磁 竹筍形 注子)」는 지정된 다른 상형청자(象形靑磁)에서 볼 수 없는 죽순(竹筍)을 형상화한 것으로, 조형과 장식, 그리고 유색(釉色)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최상급의 상형청자로 평가된다.

보물 제1932호 「청자 투각연당초문 붓꽂이(靑磁 透刻蓮唐草文 筆架)」는 상형과 투각(透刻)의 두 가지 기법이 어우러져 밀도 있게 표현되었으며 특히, 푸른빛의 유색이 유달리 아름답다.

보물 제1933호 「경주 불국사 삼장보살도(慶州 佛國寺 三藏菩薩圖)」는 1739년 밀기(密機), 채원(彩元), 서징(瑞澄) 등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던 화승들이 경주 거동사(巨洞寺) 오주암(五周庵)에서 제작하여 불영사에 봉안하였다는 분명한 화기를 남기고 있어 18세기 전반기 삼장보살도 도상 및 화풍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보물 제1934호 「곡성 도림사 아미타여래설법도(谷城 道林寺 阿彌陀如來說法圖)」는 도림사 보광전의 후불화(後佛畵)로 봉안된 것으로 1730년 철매(哲梅)의 증명 아래 수화원(首畵員) 승려인 채인(彩仁), 진행(眞行), 즉심(卽心), 각천(覺天), 책활(策活) 등이 제작한 것이다.

보물 제767-4호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蒙山和尙法語略錄(諺解)]」는 중국 원나라의 고승인 몽산화상(蒙山和尙) 덕이(德異, 1231~?)의 법어를 약록(略錄, 간략하게 줄여 적은 서책)한 것을 조선 초기의 승려 신미(信眉)가 토를 달고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보물 제1935호 ‘경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溪 池谷 第3寺地 三層]石塔)’
이 탑은 전탑형 석탑으로 8개의 커다란 사각석재를 기단으로 구축하고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이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졌으며 별다른 장엄장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과는 다르다. 그 세부를 살펴보면, 7매의 석재로 이루어진 지대석(地臺石, 바닥의 받침돌) 위에 8매의 기단석이 상·하 2단으로 나누어져 각각 4매씩 올라와 있다.

보물 제1936호 「최석정 초상 및 함(崔錫鼎 肖像 및 函)」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8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최석정이 오사모(烏紗帽,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에 녹색 단령(團領)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모아 잡은 채 교의(交椅)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보물 제1937호「신여량 상가교서(申汝樑賞加敎書)」는 1604년에 조선 시대 무신이던 신여량이 세운 전공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포상으로 정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折衝將軍)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 문무관 품계)로 승진시키면서 내린 상가교서(賞加敎書)이다. 이순신과 함께 전투에서 세운 전공을 평가하여 선조가 발급한 교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보물 제1938호 「신여량 밀부유서(申汝樑密符諭書)」는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는 신여량에게 1605년에 선조가 발급한 밀부유서(密符諭書)이다. 유서란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지방관에게,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일종의 증빙(證憑)인 밀부(密符)와 함께 내리는 명령서를 말한다. 이 밀부유서는 임진왜란 이후 국왕의 군사명령 방식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보물 제1939호「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脩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은 중국 원나라 승려 유칙(惟則)이 회해(會解)한 『능엄경』 주석서이다. 1455년(세조 1)에 주조한 을해자로 찍은 점과 「교정(校正)」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간경도감(1461~1471)에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940호「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41)」은 중국 당나라 승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39품으로 신역(新譯)한 80권본 중 권41이다.


보물 1491호영조의 연잉군(延君)시절인 21때의 초상이다. 영조는 숙동(재위 1674-1720)의 둘째 아들로 1699년에 연잉군에 책봉되고 경종 1년(1721)에 왕세자가 된 뒤 1724년에 경종(재위 1720-1724)의 뒤를 이어
조선 제21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보물 제1942호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華城 龍珠寺 大雄寶殿)는 장조(사도세자)의 묘소인 융릉(隆陵)(전 현륭원縣隆園)의 능침사찰(陵寢寺刹)로 쓰였던 곳으로, 제사 물자를 준비하기 위한 조포사(造泡寺) 역할을 했다.
  * 능침사찰(陵寢寺刹): 왕과 왕비의 능침을 수호하고 명복을 비는 사찰


보물 제1492호  철종어진은 군복 차림을 한 좌안팔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화면의 하단 1/3을 차지하고 있는 바닥에는 화려한 용문석이 깔려 있는데 무늬로 그려진 다섯 발가락을 가진 용은 족좌대와 같이 화면의 왼쪽 방향을 향해 있다. 철종의 왼쪽에는 환도가 수직으로 놓여 있다

보물1493호. 오재순(吳載純) 영정은 현재 족자 반달축 뒷면에 “순암오문정공육십오세진상 이명기사)(醇庵吳文靖公六十五歲眞像 李命基寫)”라는 종이 제첨이 붙어 있는데, 비록 오재순((吳載純) 사후에 쓰여진 것이지만 당시 초상화를 잘 그렸던 화원 이명기()가 오재순((吳載純)의 나이 65세 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전의 산뜻한 선염법을 사용하던 것과는 달리 세세한 붓질의 반복을 통해 얼굴의 형태와 명암을 자세히 표현하였다.

보물 제1944호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密陽 表忠寺 三層石塔 出土 遺物 一括)」은 1995년 삼층석탑 해체보수 작업 중 기단(基壇) 적심부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20구의 금동불상과 탑에 봉안된 여러 공양물, 석탑의 수리를 알려주는 조선 초기의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1491년)를 포함하고 있다.

「서울 살곶이 다리」등 사적 3건 보물 지정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문화재 성격상 사적보다는 건조물(유형문화재)로서의 지기준에 적합하다고 재평가한, ‘서울 살곶이 다리(서울 [箭串橋], 변경 전 사적 제160호)’, ‘창녕 영산 석빙고(昌寧 靈山 石氷庫, 변경 전 사적 제169호)’ 와 ‘서울 관상감 관천대(서울 觀象監 觀天臺, 변경 전 사적 제296호)’ 등 국가지정문화재 3건을 사적에서 보물로 변경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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