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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세계유산체험여행] 정조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글쓴이 tntv 등록일 [2012.01.11]

모든 근거 없는 예와 내리 행하는 절차를 일체 혁파(革罷)하고
의절(義節)을 다시 정하도록 하라. _정조실록 

 

개혁정치를 강행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태종 이방원이 지은 창덕궁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된 경복궁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렸으며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이 거처했던 궁이다. 창덕궁에는 정조가 개혁을 꿈꾸면서 세운 규장각과 바른 정사를 이루고자 고뇌했던 그를 달래준 후원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만 8살에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으나,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진종의 후계자가 되어 영조의 뒤를 이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영조에 의해 만 3살 때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은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20년간 왕세자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영조가 승하한 후 25살에 왕위에 오른 정조가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왕권강화를 위한 효율적인 정치기구 설립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세력의 양성이었다. 이를 위하여 정조는 즉위와 동시에 외척을 배제하고 주합루를 세워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정조가 강력한 개혁정치를 추구하면 할수록 사도세자를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한 기존 당파와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구중궁궐 속에서 정조의 깊은 시름은 잊게 해준 것은 오직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한 후원뿐이었다.


정조는 후원의 아름다운 열 가지 경치라는 뜻의 상림십경(上林十景)이란 한시를 지을 정도로 후원을 사랑했다. 정조는 망춘정에서 꾀꼬리 소리를 들으면서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찬양하였다. 청심정에서는 맑은 달을 보며 밝은 정치를 꿈꿨고, 능허정에서는 해질녘에 소소하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눈 내린 후원의 모습이 마치 옥과 같이 아름답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모든 개혁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종결되었다. 평소 아버지의 능인 현륭원(훗날 융릉) 곁에 묻히길 바랐던 정조는 그의 바람대로 현륭원 동쪽 두 번째 언덕에 건릉이 조성되었다.

 

>> 관련 유적지

 

창덕궁 후원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경복궁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덕궁 주합루


정조 즉위년에 지어진 주합루의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 서고이며 위층은 열람실이다. 규장각은 점차 정책연구기
관으로 기능하여 정조의 개혁 정치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건릉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지극한 효심의 정조가 승하한 후, 그의 유언대로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 곁에 건릉을 조성하였다. 

 

출처:한국문화재보호재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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