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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중국의 고대문화 들여다보기] 세계에서 가장 큰 절이 되려는 법문사(法門寺)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3.09]
 반야문 앞의 불상
 반야문 앞의 불상


세계에서 가장 큰 절이 되려는 법문사

[중국의 고대문화 들여다보기] 법문사 1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에서

 법문사
▲  법문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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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사(法門寺)는 섬서성 부풍현(扶風縣) 법문진(法門鎭)에 위치한다. 법문진이라는 지명이 법문사 때문에 생겨났다. 법문사는 후한(後漢) 환제(桓帝: 147-167)와 영제(靈帝: 168-189) 때 처음 세워졌다. 창건 당시 이름은 아육왕사(阿育王寺)다. 아육왕은 아소카왕의 한자식 표현이다. 당시 아육왕사에는 목탑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 부처님의 지골사리(指骨舍利)가 모셔졌다고 한다.

중국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진 절은 모두 19곳이다. 이곳 법문사가 5번째 절이 된다. 그 후 400년 동안 아육왕사는 부침을 거듭한다. 아육왕사가 다시 황실의 지원을 받은 것은 583년 수(隋) 문제(文帝: 581-604) 때다. 이때 성실도량(成實道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법문사라는 이름은 618년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 618-626)에 의해 내려졌다.

 진신보탑
▲  진신보탑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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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교를 장려하는데, 이로 인해 당나라 때 불교가 성행하게 되었다. 고조는 법문사를 황실사원으로 정하고, 태종(627-649)은 친히 법문사를 방문한다. 631년에는 기주자사(岐州刺史) 장덕량(張德亮)이 법문사탑을 다시 지어 진신사리를 공양할 것을 주청한다, 그것은 불지사리(佛指舍利)가 나라를 보호해주고 백성을 도와주리라(護國佑民) 믿었기 때문이다.

고종(650-683) 4년에는 회창사(會昌寺)라는 절 이름이 내려지고, 곧 이어 아육왕탑이 중건된다. 그리고 중종(684-710) 때인 710년 대성진신보탑(大聖眞身寶塔)이라는 탑명이 내려진다. 이후 당나라 황제들은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이 절을 찾아 사리공양을 행한다. 그것이 절정에 달한 것이 숙종(757-762)과 대종(763-805) 때다. 이때 절의 확장과 건물 중수가 이루어져 괴림궁(瑰琳宮)과 24개 원(院)이 있는 대규모 절이 되었다.

 종루
▲  종루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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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종(841-846) 5년 회장법난이 일어나 불교를 탄압하고 도교를 숭상하면서 법문사는 파괴와 훼불을 겪게 된다. 이때 진신사리와 당대 사리공양물이 진신보탑의 지궁에 숨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법문사는 숭진사(崇眞寺), 숭정사(崇正寺)로 그 이름이 바뀌었고, 명나라 만력(萬曆: 1573-1619) 연간에 탑이 중수되고 절이 중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청나라 말기인 1884년에는 대불전 등 전각을 신축하고 종루를 만들어졌고, 법문사의 새벽종소리(法門曉鐘)가 부풍8경에 들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절이 되려는 법문사

 대웅보전
▲  대웅보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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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는 기간 법문사는 오히려 퇴락해간다. 그것은 20세기 전반까지 국력의 약화 때문이고,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문화혁명 같은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문화혁명으로 인해 법문사의 전각과 불상 등이 파괴되고, 귀중한 비석까지도 파괴되는 불행을 겪는다.

1966년 법문사로 들이닥친 홍위병은 전각과 불상을 파괴하고 진신보탑에 이른다. 이에 주지스님인 양경법사(良卿法師)가 진신보탑 앞에서 분신으로 이를 저지한다. 이 때문에 탑의 지궁(地宮)에 있던 진신사리와 공양물 일체가 보전될 수 있었다. 다행히 1978년 공산당 제11차 3중전회 후 종교정책이 바뀌었고, 1979년 대웅보전과 동불각(銅佛閣)이 중수되었다.

 8중사리함
▲  8중사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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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8월 4일 호우로 인해 진신보탑이 반파되었고, 1985년 이 탑을 재건하기로 결정했다. 1987년 4월에는 기단 부분을 발굴 ·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대의 지하궁전(唐代地宮)을 발견했다. 궁전은 모두 6개 실로 구성되었는데, 면적은 약 32㎡다. 8중 상자에 들어 있는 사리 외에 금은기 · 유리그릇 · 청자기 · 궁전다기 · 견직물 등 도합 9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당 말기인 873~874년에 사리를 공양할 때 의종(懿宗)과 희종(僖宗)이 절에 봉납한 것들이다.

1988년 10월 진신보탑이 완공되었고, 11월에는 박물관을 개관해 이들 유물을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박물관은 현재 진보진열실(珍寶陳列室)과 대당진보실(大唐珍寶室)로 나눠져 있다. 진보진열실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보관했던 8중 사리함 등이 전시되고 있다. 대당진보실에는 황실에게 진상한 사리공양물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사리함에 보관되어 있던 진신사리는 2009년 5월에 준공된 합십사리탑(合十舍利塔, Namaste Dagoba)에 봉안되어 있다.

 법문사 평면도
▲  법문사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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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사가 문화경구 건설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7년 3월이다. 법문사 서쪽에 9만평의 땅을 확보하고 이곳에 불광대도(佛光大道)와 합십사리탑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불광대도는 폭이 108m, 길이가 1230m이다. 불광문에서 10만인광장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뻗어 있다. 대도의 우측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조형물로 표현되어 있다. 대도의 좌측에는 왕사성에서의 불전 결집 후 불교가 동쪽으로 전해져 번창하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불광대도의 끝에 위치한 합십사리탑은 높이가 148m에 이르는 거대한 4각형 탑이다. 기단 형태의 건물 위에 마치 두 손을 모은 형태를 하고 있다. 148m의 48은 부처님 탄생일인 4월 8일을 상징한다. 그리고 두 손을 모은 합장은 불교도의 기본자세를 표현하고, 사각형은 불교가 추구하는 화합, 화목, 화해(和諧), 화평(和平)을 상징한다. 법문사 문화경구 건설은 법문사를 세계불교의 수도를 만든다는 원대한 계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네 문을 지나며 만나는 18나한

 반야문 앞의 불상
▲  반야문 앞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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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법문사로 들어가면 정문을 거쳐 오른쪽이나 왼쪽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불광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불광문 다음에 있는 반야문으로 이르는 길의 좌우에는 연꽃으로 장식한 정심지(靜心池)가 있다. 이곳에서 마음을 고요하게 한 다음 반야문을 지나며 큰 지혜를 얻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에 이를 수 있다.

반야문을 지나면 좌우에 묘상당(妙相堂)과 단청각(丹靑閣) 등 불교용품점이 있다. 그리고 선물을 파는 주제예품구(主題禮品區: Theme Gift Area)와 유객중심(游客中心: Visitor Center)이 있다. 이곳까지가 세속의 세계(此岸)다. 여기서 보리문을 지나며 갑자기 부처님의 진리를 깨닿게 되며, 부처님이 계신 피안(彼岸)의 세계로 넘어간다.

 나한상
▲  나한상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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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문 안쪽으로는 좌우에 9나한씩 모두 18나한상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6나한이 보통인데, 이곳은 18나한이다. 우리가 16나한을 말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빈두노 존자(사자후 제일), 소빈다 존자(정법), 발타라 존자(현자), 라후라 존자(계율: 밀행제일) 등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에 중국에서 항룡과 복호 두 존자가 추가되어 18나한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공간에는 또 좌측에 고루 우측에 종루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나는 문이 원융문(圓融門)이다. 원융이란 화엄종에서 언급되는 개념이다.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勝法界圖)에 따르면, 법성(法性)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다고 했다. 진성(眞性)은 깊고도 오묘하니, 자성에 따르지 않고 인연을 따른다고 했다. 원융문을 지나며 우리는 진여의 세계로 들어간다. 

열 분의 보살(十尊菩薩)을 만나 이르게 되는 극락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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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열 분의 보살이 우릴 기다린다. 처음 만나는 보살이 미륵불의 협시보살인 대묘상(大妙相)보살과 법원림(法苑林)보살이다. 대묘상보살은 이승에서의 고난을 벗어나 내세에 원만한 삶을 누리게 해준다. 법원림보살은 이승의 신령들을 호위해서 내세에 도솔천궁에 태어나도록 한다.

두 번째 만나는 보살이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다. 이들은 현세에서 나와 자손에게 지혜를 주고, 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 세 번째 만나는 보살이 석가모니불의 협시불인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해서 이승에서의 고난을 멀리하고 원하는 바를 다 이루도록 도와준다. 지장보살은 중생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내세에 악도(惡道)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준다.

 사리탑
▲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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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만나는 보살이 약사불의 협시보살인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 이들 두 보살은 중생으로 하여금 병과 고통(病痛)을 멀리하고, 두려움과 공포(怖畏)를 없애준다. 다섯 번째 만나는 보살이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관음보살은 현세지옥을 자비로 구호해 내세 극락으로 인도한다. 대세지보살은 현세의 악도를 벗어나 내세에 왕생극락하도록 한다.

거대한 사리탑에는 들어가질 못 하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다음에는 말 그대로 극락이 있다. 그곳이 사리탑이다. 사리탑으로 들어가려면 오복(五福)광장과 십만인광장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이들 광장 이름이 상당히 세속적이다. 광장을 지나면 사리탑 남문이 나온다. 남문을 통해 사리탑 안으로 들어가면 삼신불과 삼세불을 만날 수 있다.

 일광보살
▲  일광보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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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불은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을 말한다. 삼세불은 미륵불을 중심으로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을 말한다. 그리고 보살, 천왕, 존자도 만날 수 있다. 보살로는 위태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있다. 천왕은 우리가 아는 사천왕이다.

존자로는 부처님의 수제자인 아난과 가섭이 있다. 아난은 다문(多聞) 제일로,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뛰어났다. 가섭은 두타(頭陀) 제일로,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번뇌를 버리고 수행하는 데 몰두했다. 이들 두 제자는 왕사성에서 이루어진 제1차 불전결집의 중심인물이다. 이들에 의해 경장과 율장으로 이루어진 법장이 정리되었다.

 싯다르타의 출가
▲  싯다르타의 출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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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일행은 사리탑으로 들어가질 않고 불광대도를 따라 나 있는 부처님의 일생을 살펴본다. 탄생으로부터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 조형물로 만들어져 길을 따라 순서대로 놓여 있다. 이들은 모두 여덟 장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보던 팔상도가 이곳에서는 평면이 아닌 입체로 구현되어 있다.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4168&dable=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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