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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0·26의 현장, 궁정동 무궁화동산...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곳엔 굽은 소나무
글쓴이 tntv 등록일 [2018.10.26]
10·26사태 후 실시한 현장검증에서 김재규(왼쪽)가 박선호(오른쪽)로부터 권총을 건네받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는 모습. 궁정동 안가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사진=조선일보


10·26의 현장, 궁정동 무궁화동산...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곳




엔 굽은 소나무

⊙ “공원을 조성할 때 그 자리에 표지석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펄쩍 뛰더군요”(이승률 반도환경개발 회장)
⊙ 1993년 서울시장이 세운 무궁화동산 표지석에는 김영삼 예찬만 가득
⊙ 김상헌 집터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시비는 있지만, 10·26 현장임을 알리는 흔적은 없어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옛 궁정동 안가 자리에 조성된 무궁화동산.
돌담이 끊어지고 소나무가 있는 이곳이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장소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가수 심수봉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신재순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예이 예이 예이 예예예…”로 이어지는 후렴구를 흥얼거렸다. 이때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이 옆자리에 앉은 김계원(金桂元) 대통령비서실장의 허벅지를 툭 치면서 말했다.
 
  “각하를 똑바로 모시십시오.”
 
  이어 김 부장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독일제 32구경 권총을 뽑아들었다. 육군대학 부총장 시절이던 1960년 육대총장 이성가(李成佳) 장군으로부터 선물 받은 권총이었다. 김재규가 외쳤다.
 
  “각하, 이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똑바로 되겠습니까?”
 
  총성이 울렸다.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이 “김 부장, 왜 이래!”라면서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다. 탄환은 차지철의 손목을 뚫었다. 차지철은 “피, 피”라고 외치면서 손목을 붙들고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 경호실장이 권총을 휴대하지 않고 있었다. 김재규가 ‘버러지 같은 자식’이라고 욕한 차지철은 5·16혁명 주체 중 한 사람이었다. 육군대위 출신인 차지철은 그 무렵 권력의 2인자였다.
 
  김영삼(金泳三) 신민당 총재 제명, 부마사태 진압 등을 놓고 김재규와 차지철은 사사건건 부딪혔다. 이날도 차지철은 “요즘 정보부는 뭐하는지 모르겠어. 부산사태만 해도 그렇지” “그 자식들 신민당이고 뭐고 나오면 전차로 싹 깔아뭉개겠어요”라며 김재규의 염장을 질러댔다. 대통령도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라며 김재규를 질책했다.
 
  열이 받은 김재규는 자리에서 빠져나와 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朴善浩), 수행비서관 박흥주(朴興柱) 대령 등을 불러모았다. 김재규는 “오늘 저녁에 내가 해치운다.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는 경호원들을 처치해라. 육군총장과 (정보부) 2차장보도 와 있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박선호에게 김재규가 말했다.
 
  “믿을 만한 놈 세 놈 있겠지?”
 
  박선호는 김재규가 대구 대륜중학교 체육교사 시절 그의 제자였다.
 
 
  궁정동의 총성
 
10·26사태 후 실시한 현장검증에서 김재규(왼쪽)가 박선호(오른쪽)로부터 권총을 건네받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는 모습. 궁정동 안가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사진=조선일보
  최초의 총성과 함께 술자리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달아나는 차지철을 쫓아가려던 김재규가 대통령을 내려다보면서 권총을 발사했다. 만찬장에서 첫 총성이 울리자마자, 만찬장 경호원 대기실에서는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가 권총을 뽑았다. 앞에 앉아 있던 경호처장 정인형(鄭仁炯), 부처장 안재송(安載松)이 권총을 뽑으려고 허리에 손을 댔다. 하지만 박선호가 빨랐다. 총성이 울리고 안재송이 쓰러졌다. 그 순간 정인형이 박선호에게 달려들었다. 박선호는 뒤로 물러서면서 오랜 친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정인형도 쓰러졌다.
 
  밖으로 달려나갔던 김재규가 박선호가 쓰던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가지고 만찬장으로 돌아왔다. 경호원을 부르러 밖으로 나가려던 차지철이 그와 딱 마주쳤다. 차지철은 문갑을 들고 김재규를 막으려 했다. 김재규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가슴에 탄환을 맞은 차지철이 쓰러졌다. 이어 김재규는 대통령에게 다가가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1961년 5월 16일 한강다리에서의 총성으로 시작된 박정희 18년은 10월의 총성과 함께 저물었다.
 
 
  10·26 현장이라는 표지 전혀 없어
 
무궁화동산 입구에 있는 표지석. 김영삼 전 대통령이 쓴 ‘무궁화동산’이라는 글자 아래, 조성경위를 알리는 서울시장의 안내문이 있다.
  대한민국 현대의 물굽이를 바꾼 10・26의 드라마가 벌어진 곳은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던 궁정동(宮井洞) 안가였다. 궁정동 안가는 중앙정보부장의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측근들과 술자리를 하던 만찬동(나동) 등으로 되어 있었다. 만찬동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당시로서는 모던한 건물이었다.
 
  지금 이곳에는 무궁화동산이 들어서 있다. 김영삼 정권이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1993년 궁정동 안가를 철거하고 조성했다. 김영삼 정권의 첫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朴寬用) 전 국회의장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돈이나 받고 나쁜 일 하는 장소인 안가가 뭐가 필요한가. 없애버려라’고 했고, 참모들도 다 찬성했다”고 말했다.
 
  동산 입구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쓴 ‘무궁화동산’이라는 글자를 새긴 표지석이 서 있다. 그 속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이 공원은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께서 취임하신 후 청와대는 국민과 함께 더불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신 뜻을 받들어 안가(안전가옥)를 헐어내고 조성한 곳입니다. 새로운 국민시대의 개막과 함께 열린 이 공원이 청와대를 찾는 여러분의 쉼터로, 그리고 어려웠던 민주화의 길을 되돌아보는 역사의 배움터로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1993년 9월 1일 서울특별시장〉
 
  ‘역사의 배움터’ 운운하고 있지만 이곳이 10・26사태의 현장이라는 얘기는 없다. ‘문민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기세등등하던 당시의 대통령을 향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만 있을 뿐이다. 표지석 옆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찰관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곳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안가가 있던 곳을 헐어서 김영삼 대통령 때 공원을 만들었다고 들었다”고 대답했다.
 
  ‘청와대를 찾는 여러분의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던 23년 전 서울시장의 바람과는 달리, 공원에서 서울시민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쉴새없이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들만이 가득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곳은 어디?
 
지난 200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를 맞아 무궁화동산을 찾아 참배한 이승률 반도환경개발 회장(오른쪽). 왼쪽은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웠던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사진=이승률 회장 제공
  무궁화동산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장소가 은밀하게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무궁화동산 서쪽 출입구로 들어서면 낮은 자연석 성곽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끊어진 곳이 보인다. 그 앞에는 가지가 멋있게 굽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바로 이곳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곳이다. 이런 표시를 해놓을 생각을 한 사람은, 무궁화동산 조경사업을 맡았던 이승률(李承律) 반도환경개발 회장이었다. 이 회장의 회고다.
 
  “김영삼 정부는 출범한 직후인 1993년 3월 초 열린 국무회의에서 궁정동 안가를 헐어버리기로 결정하고, 공사 입찰 공고를 냈습니다. 청와대 공사 경험이 있는 업체를 대상으로 했는데, 우리는 현대건설의 하청업체로 청와대 관련 공사를 여러 번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3월 말인가 4월 초에 낙찰받았습니다. 사업은 종로구청에서 발주했지만, 실제로는 경호실에서 관리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공사금액은 30억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무궁화동산 안내도.
④ 자연석 성곽의 위쪽 끝 부분이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곳이다.
  이 회장은 당시 궁정동 안가에는 모두 5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공사 감독을 나온 경호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장소가 어디쯤 되는지 물어보았어요. 나중에 그 자리에 표지석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펄쩍 뛰더군요.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제 나름으로 표시를 해둔 것입니다. 자연석 성곽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무너지듯 끊어진 것은 역사의 흐름이 끊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소나무 앞에는 나중에 그 위에다가 제사상이라도 차릴 수 있도록 묘실(墓室) 비슷한 크기로 넓적한 돌을 깔았습니다. 그 앞에는 옆면을 깎은 돌 위에, 멀리서 보면 새처럼 보이는 돌을 하나 올려놓았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을 추념하는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게 될 경우를 생각해서 소나무 맞은편에 잔디밭을 만들었습니다. 제사라도 올릴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서였죠. 얼마 전에 가보니 잔디밭에 무궁화를 심어놓았던데, 그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으면 좋겠어요.”
 
 
  “조그만 표지석이라도 세웠으면…”
 
무궁화동산 안에 있는 김상헌의 시비(詩碑). 옛 궁정동 안가 자리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신(斥和臣) 김상헌의 집터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설계에서 조경까지 턴키베이스로 수주했기 때문에 그런 역사성을 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궁화동산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무궁화동산, 무궁화공원은 전국 어디에 가도 있잖아요? 궁정동의 역사성을 담은 이름을 붙였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게 이 얘기를 하자 “전혀 몰랐다”고 했다. 경복궁역 인근에 사는 양경석씨는 “무궁화동산에 여러 번 가보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자리가 그런 식으로 표시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곳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커다란 화강암 시비(詩碑)가 서 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로 시작하는 낯익은 시조다. ‘이 시비가 왜 여기에…’ 의아해하는데, 그 옆에 작은 표지석이 보인다. 이곳이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1570~1652)의 집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김상헌의 집터라는 것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곳이라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역사적 의미가 더 클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하건 부정하건 간에 그분이 돌아가신 곳이라는 흔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승률 회장은 “김상헌 시비는 무궁화동산 조성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라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곳에 조그만 표지석이라도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색 없는 청와대사랑채
 
  무궁화동산에서 나와 인근에 있는 청와대사랑채에 들어가 봤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연관된 특성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1층 한국문화전시실에서는 의(衣)생활, 아리랑 등 한국인의 전통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우리 꽃 우리 옷에 스미다’라는 주제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예진흥원에서 경영하는 기념품점도 특색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눈길을 끄는 청와대기념품이 별로 없었다. 청와대 로고가 들어간 시계나 머그잔, 마그네틱 정도였다. 그것 외에는 꼭 청와대 앞이 아니어도 살 수 있을 법한 공예품들이었다. 장난감 헬리콥터도 있었다. 2층에 마련된 ‘대통령실’이 그나마 역대 대통령들이나 청와대에 대해 알리는 곳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외국 인사들로부터 받은 기념품들을 전시해 놓은 코너도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4년 방미(訪美) 시 받은 ‘행운의 열쇠’와 미8군사령관이 증정한 신년인사패(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아폴로11호 월석(月石)기념패’와 1970년대 남북대화 시기에 김일성이 보내온 청자, 다른 대통령들이 외국 국가원수들로부터 받은 선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에서부터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역대 대통령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물건들일까?
 
  많지는 않더라도, 복제품이라도 좋으니,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문(英文)일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결재한 경제개발계획 관련 서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 휘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증서 같은 것을 전시해 놓는 게 낫지 않았을까? 청와대사랑채를 작은 ‘역대 대통령기념관’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역대 대통령 관련 물품들을 전시하고, 역대 대통령들의 흉상이나 미니어처, 역대 대통령 관련 서적, 영어·일본어·중국어 등으로 번역된 역대 대통령의 간단한 전기(傳記) 같은 것들을 팔면 좋지 않을까?⊙
 
[월간조선 2016년 9월호 / 글=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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