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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는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한국의 문화재다.
글쓴이 tntv 등록일 [2011.04.06]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는 한국의 문화재다.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작은 돌섬이다. 크기도 5만5000여 평에 불과하고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 중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거니와 환경생태적으로나

자원 측면에서, 그리고 국방.외교 등 국토관리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일찌감치 1982년 11월 16일 제336호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당시 표면적 지정 사유는 해조류 번식지로서 보호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관리도 해경이

담당했다.

그러다 99년 6월 독도관리지침을 제정하면서 문화재청으로 관리권이 넘어갔고
 
그해 12월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국방.외교적 측면을 제외하고 순수 천연기념물 쪽에서 독도의 중요성과 가치를 보면

뭐니 뭐니 해도 생태적 보고라는 점이다. 울릉도에서 87.4㎞(일본 오키군도에선 157.5㎞)

떨어진 곳에 위치, 두 개의 주섬과 78개의 돌섬.암초로 구성된 독도는 화산섬 고유의 식생을

갖추고 있어 귀중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가장 최근 실시된 중앙일보의 조사를 포함,

지금까지의 학술조사 보고를 종합하면 현재 독도에 살고 있는 식물은 모두 69종으로 돌피군락,

돌피-왕해국 군락, 돌피-섬제비쑥 군락, 섬제비쑥-왕해국 군락 등이 있다.

또 작으나마 술패랭이꽃 군락, 번행초 군락, 왕호장 군락, 땅채송화-왕해국 군락 등도 있다.

나무 종류로는 사철나무와 섬괴불나무가 독도 환경에 적응해 작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단목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새종류로는 이곳을 번식지로 삼고 있는 괭이갈매기.슴새.바다제비 말고도

천연기념물 제215호 흑비둘기와 천연기념물 제323호 매를 비롯, 환경부 지정 보호종인

솔개.물수리.쇠가마우지 등 129종이다. 또 호리꽃등에.꼬마꽃등에.긴꼬리꽃벼룩.

넉점물결애기자나방 등 58종의 각종 곤충이 살고 있다.

이 같은 육상 생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수산자원적 가치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

한류와 남쪽에서 북상하는 쓰시마 난류가 교차해 모두 86종의 플랑크톤이 살고 있어

특히 회유성 어족이 풍부하다. 연어.송어.대구를 비롯해 명태.꽁치.오징어.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해삼과 전복.문어 등도 많이 잡힌다.

독도는 이와 함께 특이한 지질학적 특성으로 인한 관광지로서의 가치도 남다르다.

지금부터 460만~250만 년 전인 신생대 3기 플라이오세 기간에 해저 화산활동으로 생긴

까닭(제주도나 울릉도보다 오래됨)에 조면암.안산암.관입암 등으로 구성된 '암석학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특히 주상절리와 해식아치 등이 많아 해면화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적 지질 유적으로서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다 97년 12월 러시아과학원 소속 무기화학연구소가 독도 주변 해역을 포함한 동해바다

밑에 일종의 고체 천연가스인 하이드레이트가 매장돼 있을 것이란 발표를 하는 등 해저자원

발굴의 전진기지로서도 각광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괭이갈매기와유조


 



슴새

 


바다제비
 

 




괭이갈매기

 


 

 



독도(위성사진)

  

   '독도는 朝鮮땅' 명시된 日정부 공식地圖 발견
  • 양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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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4.14 03:00 | 수정 : 2015.04.14 06:53

    1897년 제작 '대일본제국全圖'
    日 아닌 한국영토로 색깔 구분… 이름도 '竹島' 대신 러式 표기

    일본 농상무성이 1897년 제작한 '대일본제국 전도'. 울릉도와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가 아닌 '조선'의 영토로 표시했고, 이름도 일본명인 '죽도'가 아니라 러시아식 명칭인 '올리부차, 메넬라이'라고 썼다. /이덕훈 기자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명시한 일본 정부의 공식 지도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견됐다. 일본이 최근 독도가 자기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중학교 교과서와 외교청서(外交靑書)에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 스스로 독도가 자국 영토가 아님을 공식 시인한 증거가 나온 것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은 13일 "독도를 한국 땅으로 명시하고, 일본 땅이 아님을 시인한 일본 농상무성(農商務省)의 1897년 '대일본제국전도'가 최근 발견됐다"며 "그동안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한 민간 지도는 발견됐지만, 일본 정부가 이를 시인하는 내용을 담은 지도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호사카 교수가 이날 공개한 지도는 농상무성이 1897년(메이지 30년) 직접 제작한 일본 전도(全圖)다. 이 지도에서 한반도와 울릉도·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표시하지 않고 하얀색의 '조선(朝鮮)' 영토로 표시했다. 특히 독도는 자신들이 주장했던 죽도(竹島)가 아니라 러시아식 명칭인 올리부차(독도 서도)와 메넬라이(독도 동도)로 표기했다. 반면 당시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해 일본 식민지가 됐던 대만은 자신들의 영토로 표시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강제 편입할 때 내·외무성과 농상무성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며 "당시 농상무성이 독도가 어업적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농상무성은 현 일본 농림수산성과 경제산업성의 전신이다. 호사카 교수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지도에는 독도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일본 측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할 일말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번 지도 발견으로) 아베 정부의 '고유 영토' 주장은 명백한 허위임이 밝혀졌다"고 했다.
    출처: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14/2015041400280.html

     

     
    '"독도는 조선 땅" 일제시대 국정교과서에 명백하게 나타나" 
     
     
    ◀ANC▶
    지금 독도영유권 문제 때문에 한일간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일제강점기에 독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된
    일본의 국정교과서가 공개돼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서윤식 기자입니다.
    ◀ V C R ▶
    일제 강점당시인 1939년에
    발행된 일본의 국정 교과서
    '심상소학국사회도'입니다.
    역사부도로 쓰인 이 책의
    40쪽,일본 해전도에
    독도와 울릉도가조선 본토와 똑같이
    회청색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일본땅은 붉은 색으로 표기돼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 I N T ▶ 허종화 교수/경상대
    (조선땅으로 표기)
    이 일본 역사부도의 판매공급처는
    일본 전국국정교과서 취차판매소였고
    동경제국대학 사료편찬과
    나까무라 조교수 등이 감수했습니다.
    초판 인쇄연도가 천 928년이니까
    일제 강점당시 최소 10여년 이상
    일본 초중등학생의 역사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 I N T ▶ 허종화 교수/경상대
    이 일본 교과서는
    허종화 경상대 명예교수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가 이번에 공개했습니다.
    독도를 우리영토로 표기한 일제강점기
    일본 역사교과서의 존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서윤식입니다.
     

    1748년 프랑스 발랭의 중국지도(L'EMPIRE DE LA CHINE),

    1749년 프랑스 보간디의 일본도폭지도(LE JAPON) 등

    서양 고지도에는 동해 바다 이름이 모두 한국해(Mer de Coree)로 나타나 있습니다.

    ‘독도 영토제외’ 법령 첫 발견
     
     


     일본이 패전 후 전후처리 과정에서 독도를 자국부속도서에서 제외한 법령을 공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일본이 1951년 6월 6일 공포한 ''
    총리부령 24호''와 같은 해 2월 13일 공포한 ''대장성령() 4호''에서 이 같은 내용을 찾아내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에 서면 보고했다고 3일 밝혔다.

    ''총리부령 24호''는 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 소유의 일본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제정한 상위법(정령ㆍ)을 시행하기 위해 세부 사항을 정한 것으로, 일본의''부속도서''에서 울릉도와 독도, 제주도를 제외했다.

    러시아와 일본이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치시마 열도(현 쿠릴열도)와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 등도 부속도서에서 함께 제외돼 있다.

    1861년 일본 영토가 된 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관할하다 1968년 6월 일본에 귀속된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도 빠져 있다.

    ''대장성령 4호''는 ''구령()에 의해 공제조합 등에서 연금을 받는 자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4조 3항 규정에 기초한 부속 도서를 정하는 명령''으로, 울릉도와 독도, 제주도 및 치시마 열도와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섬을 부속도서에서 제외했다.

    연금 지급을 위한 이 특별조치법은 연금 지급과 관련해 호적법 규정의 적용을 받는 일본인을 본방(ㆍ혼슈, 훗카이도, 시코쿠, 규슈)과 소관부처에서 정한 부속도서 등에 거주지가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ㆍ해양영토연구센터는 "일본이 독도가 부속도서가 아니라는 점을 공식 인정한 법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며 "법령으로 볼 때 일본은 적어도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전까지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구센터는 또 "이 법령은 일본 정부가 제정한 것으로, 일본의 독도 고유영토설이 허구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연구센터 최재선 박사는 "법령의 존재는 일본에서 한일회담 관련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벌였던 최봉태 변호사가 지난해 7월 일본 외무성에서 받은 문서에서 확인됐다"며 "당시 문서에는 총리부령 24호 관련 부분이 지워져 있었다"라고 전했다.

    일본이 법령을 제정하기 전 연합국 최고사령부(GHQ)는 1946년 1월 29일 지령(SCAPIN) 제677호를 발표하면서 제3조에서 울릉도와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독도), 제주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앞서 일본은 1877년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ㆍ현 총리실)과 내무성이 ''독도를 일본 영해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태정관 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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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기사의 원문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1030177&top20=1

    "조선 과거시험에 독도문제 출제됐다"

    입력: 2011-11-14 15:08 / 수정: 2011-11-14 15:46
    대구변협, 17세기 고문서서 발견
    조선 숙종 때 있었던 과거(科擧)시험에서도 독도 관련 문제가 중요시 돼 독도관련 사항이 과거시험 기출문제나 예상문제로 다뤄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지방변호사회 독도
    특별위원회경북 의성지역 선비였던 신덕함(申德函.1656-1730)이 남긴 문집에 있는 '전책(殿策)' 형식의 글에 울릉도와 독도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4일 밝혔다.

    전책은 임금이 묻고(策問), 자대부(子大夫:사대부)가 답(對策)하는 형식의 과거를 일컫는다.

     
    이 전책 형식의 글은 1693년 발생한 울릉도쟁계(鬱陵島爭界.안용복 등이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일본에 납치된 뒤 발생한 조선과 일본의 영토분쟁)에 대한 과거응시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으로, 실제로 전시에 출제됐다면 1696년 치러진 문과전시(文科殿試)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임금의 책문 뒤에 '등(謄)'이라고 적힌 것은 문집을 남긴 신덕함이 전시에 응시했을 때 나온 문제를 베낀 것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가져온 문제를 베꼈거나 예상문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문건을 분석한 한아(韓亞)문화연구소 유미림 박사는 "울릉도쟁계 관련 기록이 실록 등 사서에 남아 있고, 과거시험에서도 독도가 거론된 것을 보면 당시 울릉도ㆍ독도 문제가 조선-일본 관계에 매우 중대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햇다.

    한편 해당 문집을 남긴 신덕함은 독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
    국내에서 대책담당자를 잘 선정하고 덕을 통해 일본 내에서 부당한 영토야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얻어가자"는 심세득인(審勢得人)의 방법을 제시했다.

    (
    대구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leeki@yna.co.kr


    "130년전 일본 시마네현 지리교과서에 '독도'는 없다"

    한철호 교수, 1905년 이전 교과서 7종 분석 결과

    1887년 간행된 지리교과서 '시마네현지리소학'의 지도와 본문. 지도와 본문 어디에도 독도와 관련된 사실이 없다. [한철호 교수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1905년 2월 독도를 일방적으로 편입하기 전에 시마네현에서 사용된 지리교과서들을 분석한 결과, 독도가 일본 영토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2005년부터 2월 22일이면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를 여는 시마네현이 오래전부터 독도를 자국 관할에 두었다며 주장하는 고유영토론이 허위임을 드러내는 학술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22일 공개한 '1905년 2월 시마네현 소학교 지리교과서의 현 관할지 서술 내용과 독도 인식' 논문에서 "교과서 본문뿐 아니라 지도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 혹은 시마네현의 관할지역에서 제외돼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일본 중앙정부에서 발행한 지리교과서와 지리부도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독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시마네현에서 사용된 지리교과서를 주제로 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1870년대부터 각 지역의 실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지역마다 별도로 지리교과서를 제작했다.

    '시마네현지리소학'의 오키 전도. 독도가 표시돼 있지 않다. [한철호 교수 제공]

    한 교수가 분석한 시마네현 지리교과서는 시미즈 세이타로(淸水淸太郞)가 1878년 편찬한 '시마네현관내 오키국지지략'(島根縣管內 隱岐國地誌略)부터 고토 구라시로(後藤藏四郞)와 아다치 구와타로(足立초<金+秋>太郞)가 1894년 함께 만든 '소학교용 시마네현지지사담'(小學校用 島根縣地誌史談)까지 7종이다.

    한 교수는 최초의 시마네현 지리교과서인 '시마네현관내 오키국지지략'에 대해 "시마네현 지리교과서 중 유일하게 '죽도'(竹島)가 서술됐으나, 여기서 죽도는 확실하게 울릉도를 지칭한다"며 "이 책이 참고한 교과서인 '일본지지략'(日本地誌略)에 죽도와 송도(松島·독도)가 모두 나오는 것과 달리 송도는 언급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예부터 민간에 전한다'는 서술 구조와 내용을 보면 저자가 죽도(울릉도)를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1890년에 나온 '소학교용 시마네현지지'의 '시마네현 관내 전도'. 독도는 없다. [한철호 교수 제공]

    한 교수는 이후 발행된 시마네현 지리교과서에는 독도가 명백하게 배제돼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구라하시 겐스케(倉橋健助)가 1884년 집필한 '(신찬)시마네현지지략'((新選)嶋根縣地誌略)에는 시마네현 북쪽에 있는 제도인 오키(隱岐)의 관할지역이 북위 35도 59분에서 36도 19분까지로 명시돼 있다. 독도의 위도는 북위 37도 14분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시마네현의 위도를 북위 36도 20분 내외로 서술하는 경향은 뒤이어 간행된 시마네현 지리교과서에서도 확인된다.

    한 교수는 지리교과서 중 일부는 동해상에 울릉도와 독도로 추정되는 섬을 그려놓기도 했으나, 섬의 명칭을 기재하지 않거나 본문 내용에 독도를 적시하지 않아 시마네현이 독도를 자신들의 땅으로 인지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마네현 지리교과서는 일본 문부성의 엄격한 조사·인가·검정을 거쳐 발행됐으나, 당시 학생들이 이 교과서를 통해 독도의 존재를 배울 수는 없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시마네현에서 사용된 지리교과서는 시마네현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 교수는 이 논문을 23일 영남대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경상북도와 영남대 독도연구소,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에서는 8건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된다.

    psh59@yna.co.kr


    "독도, 일본(日本)땅 아니다" 1946년 대장성 법령 발견



    chosun.com  2009.11.16
    홍영림 기자
    ylhong@chosun.com 

    일본이 대한민국 광복 다음해인 1946년에 스스로 ’독도(獨島)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인정한 사실을 담은 법령 자료가 발견됐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실이 익명의 일본 고위관료를 통해 15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46년 8월 15일 일본 대장성(大藏省)이 발표한 고시(告示) 654호에서 독도(竹島로 표기)는 조선, 대만,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 등과 함께 외국(外國)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박 의원실에 따르면 "일본은 패전 직후인 1946년에 일본 기업들이 부담할 배상 및 노무자들에 대한 미지급 임금 채무 등의 해결을 위해 ’회사경리응급조치법’을 제정해 회사가 실행 중인 사업 및 전후 산업 회복에 필요한 동산, 부동산, 기타 재산 등을 정했다"며 "이 법의 칙령에서 ’재외(在外) 자산’의 범위를 규정하고, 대장성 고시에선 패전 전 점령했던 영토 중 외국으로 분류한 지역을 규정했는데 여기에 독도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독도학회장)는 "1946년 1월 일본 도쿄에 설치된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지령(SCAPIN) 제677호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되는 곳으로 명시했다"며 "이번에 발견된 1946년 대장성 고시는 당시 군정하에 있었던 일본이 연합국 방침을 추인하고 실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史料)"라고 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광복 이후에 독도를 자국(自國) 영토가 아니란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법령 자료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 보고한 ▲1951년 6월 6일 공포된 ‘총리 부령(府令) 24호’와 ▲1951년 2월 13일 공포된 ‘대장성령(大藏省令) 4호’ 등 두 개의 일본 법령이었지만, 이번 자료는 이보다도 5년 앞선 것이다. ‘총리 부령 24호’는 일본이 옛 조선총독부의 소유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장성령 4호’는 공제조합 등에서 연금을 받는 자를 위한 부속 도서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 등을 일본의 섬에서 제외했다.

    박선영 의원은 “이 자료는 일본 정부가 패전 직후에 영토의 서쪽 경계로 독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법령 자료”라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이런 법령·역사적 자료를 발굴하고 활용해서 일본과 독도 영유권 분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독도 전문가인 귀화 일본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일본이 패전 이후 독도를 자국 영토에서 제외시킨 최초의 법령 자료로 보인다”고 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은 연합국과의 종전 협정을 통해 자치권을 회복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년) 이후부터는 태평양 전쟁 패배에 따라 반환해야 할 영토목록에서 독도를 삭제했는데, 그 시점 이후에도 독도를 자국영토에서 제외한 일본 정부 법령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독도, 대한민국 영토 입증 민간사료 또 발견”
    출처 : 뉴시스 등록일 : 2011-11-15
    첨부파일 :  20111114.jpg


    【대구=뉴시스】최창현 기자 =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민간사료가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경북도 의성지역 선비였던 신덕함(1656-1730)의 문집 안에 실려 있는 대책(對策)이 그것.

    대구지방변호사회(회장 김중기)는 독도와 관련한 조선시대의 사료로 숙종 연간 최대 외교 현안이던 안용복 사건(울릉도 쟁계’의 대책에 관해 출제된 과거시험 문제와 그에 대한 답안지)을 발굴했다고 14일 밝혔다.

    대구변호사회는 독도영유권에 관한 법률적, 논리적 근거를 조사·연구·심의하는 독도특별위원회(위원장 최봉태·이하 특위)를 두고 있다.

    특위 부위원장인 방문일 변호사는 최근 경북 경산시 하양읍 사단법인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지부장 황영례)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중 독도와 관련한 문건을 발견, 위원회에 보고했다.

    문건 작성자는 조선 숙종 때 의성지역 선비 신덕함이라고 알려졌으며, 특위는 독도전문가인 한아문화연구소 유미림 박사에게 문건의 번역과 사료적 의미를 해석·의뢰했다.

    유미림 박사에 따르면 이 문건은 1693년에 일어난 안용복 사건(울릉도 쟁계-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한·일간의 경계분쟁)과 관련, 숙종이 과거시험에 이에 관한 문제를 출제, 그 대책을 기술하게 했다.

    유 박사는 "이는 숙종 연간 최대의 외교 현안이었던 안용복 사건 울릉도 쟁계 문제를 가지고 출제된 과거시험 문제와 그에 대한 답안지"라고 밝혔다.

    그는 "시험문제 1장 반, 답안지 12장 반 모두 14장(A4사이즈)으로 된 이 사료는 울릉도 쟁계로 인한 대일(對日) 대처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조정대신들의 의견을 제시해 주고 이에 대해 응시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책문(策問)과 대책(對策) 형식으로 돼 있어 이 사료가 과거시험에 출제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유 박사는 전했다.

    아울러 사료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울릉도 쟁계 관련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등을 비롯한 관찬 사서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번 책문의 존재가 새로이 밝혀져 당시 한·일간에 독도의 영유권이 조선에 있었음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이 사건이 국가적인 중대사였음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다"고 말했다.

    유미림 박사는 이 문건과 관련된 논문을 독도연구소 영토해양연구저널에 소개할 예정이다.

    대구변호사회 관계자는 "반복되는 일본의 독도문제에 대한 망언과 도발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좀 더 학술적이고 논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사료 수집과 함께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1892년 지도에도 ‘독도는 한국땅’

    한겨레신문 | 기사전송 2012/03/28 21:26

     


     
    [한겨레] 동북아역사재단 3점 첫 공개

    일본 본토 색깔과 달리 표시 지난 27일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서도 나타나듯 일본 교과서에서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기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런 주장을 뒤집는 근거가 될 일본의 고지도들이 공개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하거나 일본의 영토와 무관한 지역으로 나타낸 일본의 고지도들을 공개했다. 이 지도들은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 전도로, 메이지유신 전후로 일본에서 교과서 및 교과서 부록으로 쓰였던 지도들이다. 특히 <일본신지도-대일본국전도>(지도 작성자 오노 에이노스케, 1892년·사진)와 <분방상밀 대일본전도>(하기와라 구니조, 1892년), <만국신지도-대일본제국>(오노 에이노스케, 1893년) 등 3점은 국내 처음으로 공개됐다.

    재단 쪽은 이들 지도들이 독도를 일본과 무관한 영토로 나타내거나 독도를 조선과 같은 색깔로 채색하는 등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 쪽의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일본신지도-대일본국전도>를 보면, 일본 본토는 채색이 되어 있지만 울릉도와 독도는 채색이 되어 있지 않다. <분방상밀 대일본전도> 역시 일본 본토는 채색했지만 독도는 채색을 하지 않았으며, 부록 성격인 ‘시마네현전도’에서도 오키섬만 그려 넣었을 뿐 독도는 아예 그려 넣지 않았다.

    이훈 독도연구소장은 “이 지도들은 한·일
    강제병합 이전에는 일본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인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일본의 독도 고유영토론을 뒤집는 학술적 근거”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3] 독도 영유권, 이미 1946년에 결판났다

  • 허동현 경희대 교수·역사학

     

  • 입력 : 2012.03.29 22:34

    독도는 "근세 이래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1905년 시마네(島根)현 고시는 이를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일본 외무성의 공식 입장이다. 이는 일제가 독도를 앗아갈 때 내세운 "주인 없는 땅을 선점(先占)했다"는 주장과 정면 배치된다. 애초 일본 내무성은 독도 편입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한국령이란 의문이 드는 황막한 일개 암초를 얻어 환시(環視)하는 여러 외국이 우리가 한국 병탄에 야심이 있다는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은 이익이 극히 적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일제는 갑자기 독도 영토편입을 강행했을까? 1905년 1월 뤼순(旅順) 함락 이후, 일제가 독도 앞바다를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마지막 결전장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2월 22일 독도 편입이 일방적으로 공포되었고 5월 28일 독도 앞바다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는 무릎을 꿇었다.

    1954년 10월 부산항에서 열린 원양어업 출어 선단식장.‘ 평화선 사수’라는 구호가 가슴에 와 닿는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독도의 험난한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세력을 구축(驅逐)한다." 1943년 카이로 선언의 이 같은 정신은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님을 명문화한 1946년 1월 29일자 연합국최고사령부(SCAPIN) 지령 제677호와, 그해 6월 독도 수역(水域)에서 일본의 어로 활동을 금하는 '맥아더라인' 공포로 확인됐다. 일본은 1951년 9월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일본은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포함하는 모든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란 문구에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다며 한국 영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연합국이 독도를 모도(母島) 울릉도에 부속된 도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1월 독도가 포함된 해양주권선인 '평화선'을 선포했고, 넉 달 뒤 일본 마이니치신문사가 외무성의 자문을 받아 펴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해설서에 실린 '영역도(領域圖)'는 독도를 한국령으로 명기했다. 그해 9월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한반도 주변에 설정한 해상방위수역(클라크라인) 역시 독도를 포함했다. 그때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 자신도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점을 인정했던 것이다. 지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자가당착의 우(愚)를 범한다.
    1908년 日지도, 독도를 대한제국 영토로 표시
  • 유석재 기자
  • 강동철 기자

    [오늘 독도의 날… 우리 영토 증명하는 지도 공개 잇따라]

    1844년 만든 日지도엔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기한 1908년 일본 지도가 새로 공개됐다. 수집가 변규창(48)씨는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지도 '대자명세(大字明細) 제국이정전도(帝國里程全圖)'를 24일 본지에 공개했다.

    메이지(明治) 41년(1908년) 오사카(大阪)에서 출간된 이 지도는 맨 왼쪽에 '조선전국도(朝鮮全國圖)'란 제목 아래 한국 지도를 싣고 오른쪽에 죽도(竹島)와 송도(松島)를 그려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죽도'와 '송도'는 각각 울릉도와 독도를 19세기까지 일본이 부르던 명칭이다. 지도 제작자가 고지도를 보고 그린 듯, 독도를 울릉도보다 큰 섬으로 표시한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정작 일본 영토를 그린 지도에서는 어디에도 독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새로 발굴된‘대자명세 제국이정전도’중 한국 지도(부분). 1908년 일본 오사카에서 발행된 이 지도는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를 대한제국의 영토인 것으로 표기했다(왼쪽 위). 일본의 세계지도‘신제여지전도’(오른쪽·1844)와 우리나라에서 만든‘해좌전도’(왼쪽 아래·19세기)의 일부분. 신제여지전도에는 동해가 조선해로 표기돼 있고, 해좌전도에는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로 표기)가 그려져 있다. 국가기록원이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기존의 자료를 복원·복제해 공개했다. /변규창씨 제공·뉴시스

    이상태 한국고지도연구학회장은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시마네(島根)현에 강제 편입한 직후 제작된 일본 측 지도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당시에도 일본인이 독도를 여전히 한국 영토로 인식했음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말했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독도의 날(10월 25일)을 맞아 이미 학계에 알려진 독도·동해 관련 고(古)지도 두 점을 복원·복제해 24일 공개했다. 이 중 일본 최고 학자였던 미쓰쿠리 쇼고(箕作省吾)가 1844년 만든 세계지도 '신제여지전도(新製輿地全圖)'에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해역을 조선해로 표기했다.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한 일본 지도는 이 지도 외에도 지구만국산해여지전도설(1785), 신정만국전도(1810) 등이 있다.

    19세기 중엽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해좌전도(海左全圖)에는 울릉도와 독도(우산도)가 표기돼있고, 여백에는 우산국(울릉도와 독도)이 신라 때 편입된 사실도 기록돼 있다. 이 지도에는 울릉도의 크기, 울릉도 내의 촌락 규모, 울릉도와 울진 사이의 뱃길도 표시돼 있다. 박강국 국가기록원장은 "독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출처:조서일보

    기사원문 보기: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25/2013102500263.html

    일본 공문서가 밝힌 '한국의 섬' 독도

    •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정치학

    입력 : 2016.08.17 03:09 | 수정 : 2016.08.17 08:57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정치학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정치학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패했고 한국은 해방되었다. 그때 독도가 한국 영토로 돌아왔다. 그런데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만들기 위해 연합국 측에 섬 이름은 '다케시마'이고 한국 이름은 없다고 죽 거짓 보고를 했다. 이름이 영유권의 소재를 나타내므로 일본은 독도라는 명칭을 숨긴 것이다.

    독도의 원래의 이름은 우산도였다. 그러나 1882년 이후 울릉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독도를 돌섬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돌섬을 한자 표기한 석도(石島)가 1900년 10월 25일 반포된 칙령 제41호에 독도의 명칭으로 기재됐다. 1904년 9월 25일엔 일본 군함 니타카가 항해 일지에 '독도'라는 이름을 최초로 이렇게 적어 놓았다. '한국인은 이것을 독도라고 쓰고, 본방 어부들은 줄여서 리안코도라고 칭한다.'

    이 자료는 도쿄의 국립공문서관이 소장한 일본 공문서다. 일본은 1905년 2월 이름도 주인도 없는 섬이라며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섬에 편입했으나 사실 1904년 9월 이미 '독도'라는 명칭이 있었고 그 주인이 한국임을 확인한 것이다. 반면 1904년 당시 독도의 일본 이름은 없었다. 그래서 독도를 프랑스가 이름 붙인 '리앙쿠르 록스'를 줄여서 리안코도라고 부른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 사실은 늦어도 1904년 9월 한국이 작은 바위섬을 독도라고 부르며 실효 지배했고 일본은 독도를 소유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일본은 17세기에 독도를 불렀던 그들의 이름 '마쓰시마'를 잊어버린 상태였다. 즉 당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 개념 자체가 없었다. 니타카의 항해 일지는 독도라는 한국 명칭을 확인해 준 사실을 넘어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독도를 실효 지배한 국가라는 증거가 되는 귀중한 자료다.

    그런데 일본은 패전 후 독도라는 명칭의 존재를 계속 숨겼다. 미국 국무부 문서 '한·일 간 리앙쿠르 록스(다케시마 혹은 독도)에 대한 논쟁'(1952년 2월 4일 작성)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1947년 일본 정부는 일본에 인접하는 작은 섬들에 대한 연구를 공표했다. 이 연구는 일본인들이 마쓰시마, 현재는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섬에 대해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이 섬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름이 없다고 일본 정부는 주장한다.' 이 기록은 일본 정부가 1947년 미국에 영토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다케시마에는 한국 이름이 없으니 한국 땅이 아니라고 우긴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은 1951년 8월 주한 미국 대사인 존 무초에게 조회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독도'라는 한국 명칭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국제법적으로 지명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지명위원회는 주권이 인정되지 않은 땅에는 그곳의 주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붙인 지명도 인정하지 않는다. 좋은 사례가 센카쿠(尖閣)열도다. 이곳을 실효 지배하는 나라 는 일본이지만 중국과 대만은 이에 항의하며 '댜오위다오(釣魚島)'라고 부른다. 미국은 중국과 대만의 주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지명위원회의 센카쿠열도 페이지에는 댜오위다오라는 명칭 자체가 없다. 지명은 주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04년 9월 25일의 일본 공문서는 독도의 주인이 처음부터 한국이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키워드 정보] 아름다운 우리 땅, 독도는 어디?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6/2016081603475.html

    李대통령, 현직 대통령 첫 독도 방문

    • 김지혜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2.08.10 16:10

      지난 2009년 해맞이 행사 때 촬영한 독도 모습 /연합뉴스





      이명박(71세) 대통령이 10일 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이 오늘 중 울릉도를 방문한다. 날씨가 좋으면 독도도 들를 예정이다"고 밝혔다. 일본 NHK 인터넷판은 10일 "오늘 오후 2시쯤 이 대통령이 독도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독도를 방문한 건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날 방문엔 환경부 장관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설가 이문열 씨와 김주영 씨 등이 동행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이번 울릉도·독도 방문은 우리 국토에 대한 자연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일부에선 8·15 광복절을 닷새 앞두고 '독도는 우리 땅'이란 사실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한 행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며 방문 중단을 요구했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양국 간 관계 악화가 예상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울릉군, '독도입도지원센터 반드시 건립 돼야'



      조인호 기자  |  eno186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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