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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삼국지의 '장비'는 정말 단순무식한 장수였을까?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0.11.10]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삼국지의 '장비'는 정말 단순무식한 장수였을까?

       
    
(사진=중국 드라마 '삼국' 캡쳐)

(사진=중국 드라마 '삼국' 캡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중국의 역사인물 중 한명인 삼국지의 '장비(張飛)'. 그는 중국 동한말기부터 삼국시대 활약했던 장수로 소설 삼국지연의를 통해 알려진 캐릭터와 실제 역사적 인물 간에 괴리가 아주 큰 인물 중 하나다.

삼국지연의의 장비는 그야말로 무서운 무력을 자랑하면서도 사고뭉치 막내캐릭터로서 유비가 항상 미덥지 못하게 여기는 장수로 알려져있다. 삐죽삐죽 사방으로 뻗은 수염과 앙칼진 말투, 술을 너무 좋아해 실수를 연발하는 장비 캐릭터는 유교의 이상적 군주상으로 그려지는 유비와 민간의 신으로 추앙받는 충의지사 관우 옆에서 삼국지 스토리라인을 이끌어가는 없어선 안될 중요한 캐릭터다.

일본 코에이사가 제작한 삼국지의 장비 캐릭터. 지력이 무력에 비해 상당히 낮게 나온다.(사진= 코에이 '삼국지10' 게임 캡쳐)

일본 코에이사가 제작한 삼국지의 장비 캐릭터. 지력이 무력에 비해 상당히 낮게 나온다.(사진= 코에이 '삼국지10' 게임 캡쳐)


그러나 실제 전장에서 장군으로서 활약했던 장비의 군사적 능력은 삼국지연의의 캐릭터 설정으로 인해 상당히 폄하됐다. 그러다보니 2차 저작물에서도 장비는 무력은 뛰어나도 지력은 한없이 낮다. 일본 코에이(Koei)사가 만든 삼국지 게임에서 장비의 지력은 항상 30대 초반. 하지만 정작 당대 정사를 기록했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의 기록에서 보면 장비는 관우보다 더 냉철하고 뛰어난 전략과 안목을 지닌 장군으로 나온다.

삼국지연의에서 장비는 푸줏간 주인을 하다가 유비를 만난 후, 도원결의를 맺고 재산을 처분해 유비의 의용군 조직에 보태는 협객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 그의 출신성분이 어땠는지는 추측만이 무성하다. 유비, 관우, 장비가 실제로 도원결의를 통해 의형제가 됐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다만 세 사람이 함께 잠을 자고 같은 침상을 썼으며 유비가 내려준 은혜가 형제와 같았기 때문에 함께 동고동락했다고 나온다.

흔히 삼국지연의에서 술을 좋아하고 덤벙대는 캐릭터 설정에 크게 기여한 사건은 유비와 관우가 원술을 치러 떠났을 때, 홀로 서주성을 지키다 빼앗겼을 때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유비가 장비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떠나지만 결국 이 군령을 어기고 술을 마신 후, 수하 병사들을 때렸으며 이 소문을 듣고 쳐들어온 여포에게 서주성 전체를 빼앗긴 것으로 나온다.

중국 쓰촨성 청두에 위치한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에 있는 장비상(사진=위키피디아)

중국 쓰촨성 청두에 위치한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에 있는 장비상(사진=위키피디아)


그러나 실제 사서에서의 기록은 전혀 다르다. 삼국지 선주전에서 유비가 장비를 남겨 성을 지키게 하고 원술과 싸우러 간 사이에 원래 유비에게 반감이 크던 조표라는 장수가 성내에서 반란을 일으킨 후 여포를 불러 성을 차지했으며 장비는 성문이 열리자 어쩔 수 없이 패주했다고 나온다. 장비가 술을 먹고 실수했다는 내용은 유비 쪽 기록이나 여포 쪽 기록이나 모두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서 속의 장비는 가식없는 술꾼이 아니라 군자나 높은 사람들은 경애하지만 군기를 엄격하게 적용했던 인물로 나온다. 병졸들을 잘 대우해줬으나 사대부에게 교만했던 관우와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이에 유비가 늘 이것을 경계해 장비에게 충고한 말이 "경은 형벌로써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친데 또 매일 장정들을 채찍질하고는 그들을 좌우에 있게하니 이것은 화를 초래하는 길이오"라고 했다. 이를 봐서는 전시상황에도 술을 가까이했던 허술한 캐릭터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유비군은 중원 곳곳에서 조조를 비롯해 각종 군웅들과 합종연횡을 이루며 패퇴와 재건을 반복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장비의 군사적 능력이 나온 기록은 없다. 하지만 관도 전투에서 적장 안량을 단번에 제거해 전국적 명성을 얻은 관우와 함께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것을 보면 관우 못지 않은 용맹과 통솔력을 자랑한 장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장판교 위에 홀로 조조의 대군을 맞는 장비. 장판파 전투 기록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용기를 발휘하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됐다.(사진=중국드라마 '삼국' 장면 캡쳐)

장판교 위에 홀로 조조의 대군을 맞는 장비. 장판파 전투 기록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용기를 발휘하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됐다.(사진=중국드라마 '삼국' 장면 캡쳐)


장비의 담력과 전략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아주 유명한 부분인 장판파(長阪坡)에서 조조군과 대치할 때다. 당시 고작 20여기를 끌고 온 장비는 5000기가 넘는 조조군 앞에서 뒤로 달아날 수 있는 다리를 끊고 단기필마로 나와 조조군 전체에 덤비라고 외친다. 이에 조조군은 장비가 소수 병력으로 막아선 것이 또다른 계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나아가지 않고 대치상황을 이루며 이에따라 유비가 피신할 시간을 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썼다는 공성계(空城計)와 유사한 계책이었던 셈이다.

장비가 일군의 사령관으로서 군사적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유비가 형주에서 익주로 들어가 지역군벌이었던 유장을 몰아낼 때부터다. 이때 장비는 순식간에 익주 서부 성들을 줄지어 함락시키며 유비를 돕는다. 당시 파군태수로 이름이 높았던 엄안이란 장수를 항복시키고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둔 후, 익주의 주도인 성도에 들어와 유비와 만나게 됐다.

이후 조조군과의 한중 대치전에서 매우 훌륭한 산악기동전을 보여주게 된다. 당시 조조군의 뛰어난 장수 중 한명이던 장합과 대치하던 장비는 50여일에 걸쳐 산악전을 펼쳤다. 장합이 3만 군사로 한중 일대 탕거와 몽두, 탕석이란 지역을 공격해들어왔는데 장비가 1만의 병력을 이끌고 들어가 교전했다.

산지에서 장기 주둔하며 군의 분산 및 유격전에 익숙해진 장비의 군대는 평지의 교리대로 군을 집합시켜 움직인 장합의 군대를 크게 이겼다. 장합군은 지형적 한계로 자연스럽게 분산됐고 체계적인 분산작전에 익숙치않아 패배했다. 장합은 본인이 탔던 말을 버린 채 산을 타며 병사 10여명만이 함께 돌아갈 정도로 참패했다. 이후 여기서 산악전에 대한 전략을 터득한 장합은 훗날 역으로 촉군을 이끌던 마속을 똑같은 전술로 이기게 된다.

생애 전반을 오늘날 중국 베이징에서부터 쓰촨성까지 오고가며 전쟁으로 단련됐던 장비는 단순무식하며 술을 좋아하는 덜렁이 막내 캐릭터가 아니라 지용을 겸비한 전사 캐릭터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역으로 삼국지연의가 만들어준 막내 캐릭터가 오랜 역사동안 중국 민중의 사랑을 받으며 장비라는 인물을 오늘날까지 기억하게 만들어줬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만하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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