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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연해주 한민족사 ‘2300년 맥’ 찾았다…옥저·발해 ‘쪽구들’ 발견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10.06]

 

연해주 한민족사 ‘2300년 맥’ 찾았다…옥저·발해 ‘쪽구들’ 발견

러시아 연해주에서 2300년 전의 옥저 온돌(쪽구들)과 발해 온돌이 한꺼번에 확인됐다.

6월28일부터 8월3일까지 러시아 조사단과 함께 연해주 체르냐치노 발해유적을 발굴한 한국전통문화학교 발굴단(단장 정석배)은 주거지 1기에서 발해 온돌과 옥저 온돌을 차례로 발굴했다.

연해주 한민족사 ‘2300년 맥’ 찾았다…옥저·발해 ‘쪽구들’ 발견

◇옥저·발해 온돌이 한꺼번에=지난 7월22일이었다.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의 눈이 빛났다.

발굴단은 이미 이 발해 주거지에서 발해시대 쪽구들(부분 온돌) 1기를 확인한 바 있다. 그때 확인한 발해 쪽구들의 길이는 4.5m가량이었고, 아궁이 일부와 ‘ㄷ’자 모양의 구들이 대부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날 발해인들이 버린 생활 폐기물 구덩이를 파다가 바닥 땅부분에 불에 탄 흙(소토) 2줄기를 본 것이다.

“아, 이건 옥저의 쪽구들이야.”

정교수의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소토의 흔적을 파서 옥저-크로노브카(러시아에서 옥저시대와 비슷한 초기철기시대를 일컬음) 문화층에서 ‘ㄱ’자 모양의 쪽구들을 확인한 것이다. 아궁이는 폭이 약 60㎝로 약간 넓은 타원모양이고, 위에는 작은 판석 3장이 놓여 있었다. 아래쪽은 재가 충진돼 있었고, 바닥은 불에 딱딱하게 달궈져 있었다. 쪽구들의 전체길이는 2.2m가량 됐다.

이렇게 발해 온돌(AD 698~926년)이 확인된 주거지 바로 1m 밑에서 옥저(BC 3세기~AD 3세기)의 온돌을 확인한 것은 획기적인 성과다. 온돌의 기원문제를 가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면면히 흘러온 우리 역사의 일맥을 밝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연해주 한민족사 ‘2300년 맥’ 찾았다…옥저·발해 ‘쪽구들’ 발견

◇온돌의 기원은 옥저=온돌의 기원은 문헌상으로 “고구려의 풍속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겨울에 긴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아래 불을 때서 따뜻하게 한다”(후당서)고 돼있다. 이 문헌 자료는 ‘온돌의 고구려 기원설’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옥저, 즉 북옥저 기원설이 힘을 받고 있다. 연해주 지역에서 기원전후의 온돌이 잇따라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가장 이른 시기(BC 3~BC 2세기가량)의 옥저 쪽구들이 발견됨으로써 옥저기원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또한 옥저 온돌 1m 위쪽에서 발해 온돌이 발견된 것도 주목거리다. 옥저와 발해 사이에는 약 400년간의 시간 공백이 있다.

이 시기 연해주 지역은 말갈의 영역이었다. 송기호 서울대교수는 “말갈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에서는 쪽구들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쪽구들과 말갈의 연관성은 별로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유적(체르냐치노 유적)을 보면 그렇습니다. 옥저와 발해문화층 사이에 말갈의 문화층, 즉 온돌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정석배 교수)

결국 고고학적 층위를 살펴보면 온돌은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 민족만의 고유 문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옥저 이후 400년간이나 발걸음을 끊었던 우리 민족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둥지를 틀었을 때 고유의 난방법인 구들을 얹고 불을 땠던 것이다. 그리고 발해 이후 900년 이상 연해주에서 사라진 우리 민족은 19세기 중엽부터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이곳에 이주함으로써 다시 역사 속에 나타난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쪽구들뿐 아니라 옥저-크로노브카 문화층에서 토기가마의 흔적을 찾았다. 이밖에도 생활폐기물 유구와 토기, 조개껍데기 단추, 뼈 장신구, 골·철촉 등 다량의 옥저 및 발해유물이 쏟아졌다.

◇연해주에 이어진 2300년의 역사=그러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이 연해주에서 우리 역사의 맥이 2300년간 끊길 듯 끈질기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보시다시피 옥저와 발해 주거지가 확인되었고, 불과 70년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던 한인 이주민의 흔적도 보입니다.”

바로 이 옥저·발해 주거지에는 1937년 스탈린의 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려인들의 판잣집과 저장시설인 움터, 그리고 백자편들이 확인된다. 유적 바로 곁에는 옥저와 발해인, 그리고 고려인의 터전을 묵묵히 지켜본 라즈돌나야강이 흐르고 있다. 발해의 솔빈부(지방통치조직의 하나)를 따라 흐른다 해서 솔빈강이었는데 러시아가 이름을 바꿨다.

“옥저인, 발해인, 한인 이주민 모두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동일민족입니다. 그러니 농사에 적합한 땅을 찾는 눈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을 겁니다.”

정석배 교수는 “이번 발굴성과는 한반도를 벗어난 이 연해주 땅에서 우리 역사의 맥락이 2000년 이상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체르냐치노|이기환 선임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8170343481&code=960201#csidx62de8a8b9caab48977919b77e8583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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