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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조선의 안(평대군)빠들, “안평대군 작품을 소장하라”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9.29]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안평대군과 ‘소원화개첩’

이기환 논설위원

“안평대군의 글씨가 자연미를 방불케 하니 불세출의 사람이다. 중국의 선비들도 그의 글씨 한 장만 얻어도 가보로 삼았고…”(<태허정집>). 최항(1409~1474)의 극찬은 허언이 아니었다.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의 글씨는 ‘늠름한 기운이 날아 움직일 듯한 보물’(<용재총화)이라 했다. 북경을 방문한 조선인들이 “어디 가면 좋은 글씨를 찾느냐”고 물으면 중국인들은 딱 잘라 반문했다. “당신네 나라에 제일가는 사람(안평대군)이 있는데 뭐 때문에 멀리까지 와서 글씨를 사려 합니까”(<연려실기술>).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안평대군과 ‘소원화개첩’

안평대군에게 당대의 문·재사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이게 화근이 됐다. 계유정난(1453년)의 희생양이 되어 사약을 마셨다. 그토록 아꼈던 안견마저 사세가 위태롭게 돌아가자 스스로 도둑누명을 뒤집어쓴 뒤 안평대군의 품을 서둘러 떠났다(<백호전서>). 하지만 안평대군의 글씨는 천고의 보물로 전해졌다. 예컨대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안평대군의 책을 베껴 인쇄본으로 재출간하자 사대부들이 앞다퉈 달려왔다. 윤근수(1537~1616)는 “안평대군의 글씨 한 조각이라도 얻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진귀한 보배로 여긴다”고 전했다(<월정집>).

안평대군은 ‘수집 덕후’였다. 중국 작가 35명의 작품 222점을 수집했다. “좋은 작품은 후한 값을 들여 구입했다”면서 자신의 수집병을 한껏 과시했다. 사대부들은 안평대군의 사후에 몰수된 작품 가운데 시중에 흘러나온 것을 구하느라 혈안이 됐다. 심지어 안평대군의 옛 집터에서 우연히 발굴된 벼루까지 ‘보물’ 대우를 받기도 했다. 윤근수는 벼루의 소유주(박동열)를 지칭하며 “무슨 복인지 모르겠다”고 부러워하면서 “가보로 삼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남겼다. 이렇게 안평대군의 글씨와 소장품을 갖고 있다는 것은 사대부의 자랑이자 로망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안평대군의 진적은 ‘몽유도원도’ 발문과 ‘소원화개첩(그림)’ 정도다. 그나마 국내에 남아있는 안평대군의 유일한 진필은 ‘소원화개첩’이었다. A4 크기도 안되는 소품이지만 안평대군의 친필이기에 국보(238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이마저 2001년 도난당한 뒤 15년 이상 행방이 묘연하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무릉도원을 보았다는데…. 이제는 ‘소원화개첩’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군의 꿈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조선의 안(평대군)빠들, “안평대군 작품을 소장하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기자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최근 도난 당한 <삼국유사> ‘기이편’을 갖고 있던 문화재 사범이 적발됐습니다. 이 사람은 1999년 도난된 <삼국유사> ‘기이편’을 어떤 경로인지 모르지만 입수해서 보관했다가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올해 1월 경매시장에 내놨다가 잡혔습니다. 범인을 잡고, 문화재까지 찾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난문화재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2001년 도난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행방이 묘연한 문화재인데, 바로 안평대군이 직접 쓴 <소원화개첩>입니다. 1987년 국보 238호로 지정된 문화재인데요. 크기가 A4용지보다 작은 크기인데 안평대군의 낙관과 도장이 찍힌 진적이어서 국보 대우를 받았습니다. 아직 오리무중인 이 안평대군의 글씨를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번 주는 <소원화개첩>의 출현을 갈망하면서 안평대군의 삶과 글씨를 되돌아보려 합니다. 안평대군의 글씨는 조선시대 내내 국보급 보물로 꼽혔고, 중국인들도 반드시 소장하고 싶은 보물로 여겼답니다. 안평대군의 작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조선 뿐 아니라 중국 사대부들의 로망이었습니다. 안평대군을 좋아하는 이른바 ‘안빠’들도 많았답니다. 이번 주 제79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주제는 ‘안평대군의 작품을 소장하라-조선의 안(평대군)빠들’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262107015&code=990100&utm_campaign=list_click&utm_source=reporter_article&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0%CC%B1%E2%C8%AF_%B1%E2%C0%DA%C6%E4%C0%CC%C1%F6#csidx04c062777485ea891775fad1e4e9b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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