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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그때 그 시절] 가까스로 남은 역사(驛舍)의 흔적... 수인선과 옛 송도역​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9.24]

 

 

[그때 그 시절] 가까스로 남은 역사(驛舍)의 흔적

발간일 2020.09.23 (수) 15:03
       


인천, 다시 걸어보고서

수인선과 옛 송도역


문득, 그곳은 안녕하신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기억 속에서 다소 멀어진 인천의 공간들이 있다. 넓은 공간을 쓱~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을 다시 걸어보고자 한다. 걷다 보면 점(點)은 선(線)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모이면 다시 넓은 면(面)을 싹~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인천, 걸어서 쓱~싹~이다. (편집자 주)

 


인천과 수원을 이어주는 새 철길, 수인선이 완전 개통했다. 옛 협궤노선 폐선 이후 25년 만이다. 다만 ‘지각 개통’이 아쉽다.

정부는 인천 남부지역의 인구 증가와 남동공단 근로자들의 통근 편의 등을 위해 ‘2008년까지’ 인천~수원간 52.8㎞ 전철 복선의 새 철길을 내겠다고 했었다.


▲소래철교를 지나는 수인선 열차


옛 수인선을 ‘낭만 철길’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속이 좀 쓰리다. 이 철길은 쌀과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수탈의 노선이었다.


인천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상권을 경기 내륙까지 확대시키기 위해 수원~여주간의 수여선과 수인선(인천~수원)을 1937년 연결했다. 이로써 여주 곡창지대 들판의 곡식들이 인천의 신흥동 정미소 창고에 쌓이게 되었다.



▲수인선 통학생 졸업 앨범 사진( 인천고 1968년)


수인선은 건설비를 줄일 요량으로 철로의 폭이 경인선의 절반(76.2㎝)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흔히 ‘꼬마 기차’로 불렸다.

 

개통 당시에는 인천항역-송도-문학-남동-논현-소래-군자-신길-원곡-성두-일리-빈정-야목-어천-오목-고색-수원역 등 열일곱 개의 역이었다.

 

수인선이 화물만 옮긴 것은 아니었다. 철마다 행락객도 실어 날랐다. 같은 해 7월 에 개장한 송도유원지를 가기 위해 인천과 경기도 각지에서 수인선을 이용해 ‘송도역’에서 내렸다. 송도유원지 때문에 ‘송도역’이란 이름을 얻었다.
 


▲송도역 구내에 세워진 ‘꼬마 열차’ 


일제의 물자수탈 수단으로 탄생했던 수인선은 해방 후에는 인천~수원간 해안가 서민들의 발 노릇을 톡톡히 했다. 출퇴근용으로, 등하교용으로, 장보기용으로 이만한 교통수단이 없었다.

 

송도역 시장 안쪽으로 가면 송도초등학교가 있다. 1948년 학익국민학교의 분실로 개교한 학교다. 당시 군자, 소래 등 수인선 변에 살던 학생들이 수인선 꼬마열치를 타고 이 학교를 다녔다.
 

‘꼬마’였지만 반세기 넘게 실어나른 애환은 ‘작은 거인’급이었다. 바람과 갯벌과 사연들이 모여 수많은 소설의 무대가 되었고 시인의 시심(詩心)을 일으키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산업구조 개편과 타 교통수단의 발달로 철길은 점차 줄어들었다. 1973년 11월 당시 종착역이었던 남인천역이 폐쇄되었고 송도역이 졸지에 종착역이 되었다.
 


▲송도역사로 걸어가는 승객들


이후 92년 7월엔 소래역~송도역 운행이 끊겼고 수인선 복선전철화 계획이 구체화된 지난 94년 9월 한양대 안산캠퍼스~송도역 26.9㎞ 구간이 폐쇄되었다.
 

수원역~한양대역까지만 열차를 운행하다가 마침내 1995년 12월 31일 운행 58년 4개월 만에 완전히 ‘퇴역’했다.
 


▲현재의 송도역사


열차운행이 중지되자 그간 운영되었던 역사(驛舍)들도 급격히 사라졌다. 수원역 쪽에서 보면 열여섯 번째 정거장이었던 송도역은 인천 시민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정거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착역 송도역을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검은 연기 내뿜으며 달려온 기차는 역에 가까이 왔다고 ‘왝왝’ 거리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수원, 군자, 소래 등지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이 키운 닭이며 각종 곡식을 이고지고하며 송도역에 내려놓았다.

 

역 앞에는 금방 큰 장이 서고 거래로 왁자지껄 소란해졌다. 장이 서는 동안 열차 맨 앞의 목마른 기관차는 급수대의 물을 벌컥 마셨다. 그리곤 거대한 회전기(전차대)를 이용해 다시 수원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희미하게 남은 ‘송도’


옥련동 비류대로에 접한 송도역의 역사는 한동안 광고 기획사의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게다가 역사 주변이 새로운 수인선 전철 복선 공사로 오랫동안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26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에 ‘역사(驛舍)’의 흔적은 가까스로 남아 있다. 역무원 사무실로 사용했던 방 외벽에 아직도 ‘송도’라는 명찰을 희미하게 달고 있다. 수없이 덧칠해진 페인트 속에도 감춰지지 않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송도역사 옆에 서 있는 급수탑


 

▲잡풀로 둘러싸인 물탱크


그나마 낡은 물건 하나가 철도 정거장이었음을 명확히 말해준다. 송도역에서 새로운 전철역인 송도역 쪽으로 30미터 가량 내려가면 녹슨 철탑 위에 커다란 통 하나가 놓여 있다. 급수탑이다. 백리를 달려온 화차가 목마름에 물 한 모금 마셨던 곳이다.

 

증기기관차가 수인선을 달렸을 때 사용한 물통이니 족히 60년은 된 물건이다. 비바람에 심하게 녹슬고 담쟁이가 둘러싼 낡은 급수탑이지만 주둥이에서 금방이라도 물을 쏟아낼 것 같은 모습이다.
 

역사를 포함해 주변은 주택조합 사업지구에 포함돼 있다. 조만간 이곳에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개발주의의 폭주 앞에 놓인 송도역과 급수탑 그리고 ‘꼬마 열차’의 추억들이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 사진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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