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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日 한반도 유사시 파병의 역사적 연원이 된 '백강전투'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9.15]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日 한반도 유사시 파병의 역사적 연원이 된 '백강전투'


       
    
(사진=KBS1TV 드라마 '대왕의꿈' 화면 중 캡쳐)

(사진=KBS1TV 드라마 '대왕의꿈' 화면 중 캡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 도발을 계기로 미·중·러·일 한반도 주변 4개 열강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한반도위기론을 이용해 유사시 한반도에 자위대 진출 등을 검토 중인 일본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파병한 역사적 연원으로 꼽히는 전투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는 전투지만 왜군이 백제 부흥군을 도와 나당연합군과 싸운 백강전투가 전 근대시대 일본이 한반도에 파병했던 최초의 전투로 알려져있다.

백강전투는 서기 663년, 일본에 있던 백제 왕자 부여풍이 백제가 멸망했다는 소식에 귀국해 도침, 귀실복신 등 백제 부흥군과 연합하여 주류성 등 전북 일대를 장악하자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이 이를 공격하고 백제 부흥군과 왜군이 연합해 싸운 고대 국제전투를 뜻한다.

같은 전투를 두고 동북아 삼국이 부르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백강전투로 불리며 일본에서는 백촌강(白村江)전투, 중국에서는 백강구(白江口)전투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이 승리해 백제는 660년 의자왕 항복 이후 국내 남아있던 잔존 세력까지 사실상 완전히 소멸된다.

(사진=KBS1TV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화면 중 캡쳐)

(사진=KBS1TV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화면 중 캡쳐)


일본의 고대사를 수집해 정리한 사서인 일본서기에 따르면 당시 백강전투에 파병된 왜군 병력의 숫자는 2만7000명에 달했으며 삼국사기 기록에도 왜병이 타고 온 배가 1000척에 달했다는 것으로 봐서 상당한 규모의 병력이 한반도로 파병됐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의 백제 파병은 백제와 일본의 특수관계에서 이뤄진 것으로 일본 입장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해상운송을 통해 한반도로 병력을 파병한 전투였다. 왜군은 주로 일본 내에서의 전투에만 익숙해 대륙의 선진적인 전략적, 전술적 이해와 숙련도가 많이 부족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전투 자체도 대단히 싱겁게 끝났다.

백제-왜 연합군은 수적 우위를 이용해 공세를 펼쳤으나 나당연합군은 차분하게 화공작전으로 적의 주력을 분산시킨 후 4차례 전투를 펼쳐 궤멸시켰다. 그러다보니 이 전투에 대해 당나라가 기록한 구당서(舊唐書)의 내용은 짤막하다. 총사령관인 유인궤가 백강 입구에서 부여풍과 연합한 왜인들과 싸워 4번 이기고 배 400여척을 불살랐단 이야기가 전부다.

(사진= KBS1TV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화면 중 캡쳐)

(사진= KBS1TV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화면 중 캡쳐)


오히려 패배자 입장이던 일본 측의 기록이 이보다는 좀더 상세하다. 당시 당나라군은 유인궤가 이끄는 1만여 병력과 전선은 170척에 불과했으며 신라 측 병력도 상세히 나와있진 않지만 대부분 대 고구려 전선에 나가있는 상황이라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왜병 장수들이 부여풍에게 일단 돌격해 적의 사기를 꺾는다면 적이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 진언했고, 이에따라 왜병들은 진형을 제대로 짜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돌격했다고 한다. 당시 당나라는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진형을 완벽하게 짜놓은 상태였다. 당나라 선박들이 좌우에서 왜병 선박을 에워싸고 싸우자 순식간에 왜병들이 전멸했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부여풍은 배를 타고 고구려로 달아났다고 한다. 이로서 백제 부흥운동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단판에 막을 내린 전투긴 하지만 이 전투가 나당연합군의 완승으로 끝나면서 이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백제 부흥운동이 완전히 막을 내리자 나당연합군은 고구려 전선에 전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됐고, 5년 후 고구려 평양성이 무너지며 결국 고구려가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한반도는 치열한 나당전쟁을 다시 거친 후 당과 신라 양자가 전쟁 전 합의한 대로 대동강-원산만을 기점으로 분할된다. 북위 39도선에 가까운 이 분할선은 훗날 몽골제국이 한반도 북부지역을 분할해 자국에 강제로 편입시킬 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전 한반도 분할론이 나올 때마다 기준점이 된다. 역사는 시대에 따라 완전히 반복되진 않지만 먼 훗날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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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51609392739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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