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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다시 보는, 인천 속 이야기​ '아암도'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9.06]

다시 보는, 인천 속 이야기​  '아암도'

 

인천의 섬 호적에서 사라진 섬은 하나둘이 아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매립으로 인해 제 몸 내어주고 땅 한 뼘을 넓힌 섬들이 수십 개에 달한다.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개중에는 뭉개지지 않고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섬 아닌 ‘섬’도 있다. 아암도兒岩島가 그러한 섬이다. 인천의 168개 섬 명부에서는 지워졌지만 중년 이상의 인천 시민이라면 그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1976년 아암도 기행 모습(인성여고 앨범 중)




바다 출구 ‘엑소더스’


아암도는 가족 섬이다. 아암도와 소아암도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주변 바위섬들이 함께 있어 아빠 섬과 엄마 섬 그리고 자식 섬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양새다. 전체 면적이 6,058㎡(1,832평)로 웬만한 동네 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섬이다.
 

아암도는 배를 타고 가는 섬이 아니었다. 옛 송도유원지를 통해야 그 섬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바다 쪽으로 나 있는 유원지 쪽문부터 아암도까지 거리는 700m 정도. 바닷물이 빠지면 길이 열렸다. 사람들은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섬으로 건너갔다. 아암도로 향하는 행렬은 마치 모세의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의 ‘엑소더스’와 같았다. 1990년대까지 인천에서는 바다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곳곳이 공장 담으로 막혔고 그나마 바다가 찔끔 보이던 곳은 군 철책으로 두루 감쌌다. 아암도행 엑소더스는 시민들의 바다 갈구 행렬 그 자체였다.

유원지 측에서는 아예 걸어가기 편하게 돌을 깔고 시멘트를 부었다. 해수욕장은 한철 장사였지만 아암도 ‘기행’은 철을 타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바위섬에 행락객들이 덕지덕지 올라앉았다. 그저 섬 하나였지만 그곳에 서 있으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개방은 되었지만 이곳은 군인의 섬이었다. 총기를 든 군인들이 초소를 지키며 관광객들을 감시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이 섬 안에서의 기념사진은 물론이고 이곳에서 바라본 인천 앞바다나 송도유원지 혹은 청량산이 담긴 사진을 지금도 거의 볼 수 없는 이유다.
 


▲풍화혈 등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아암도 갯바위



▲아암도 앞바다에는 갖가지 기암들이 흩어져 있다.


▲섬 앞에는 여러 갈래의 갯골이 나 있다.




멀어진 ‘와이키키 비치’의 꿈


아암도는 바다를 갈망하던 인천 사람들의 숱한 사연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80년대 초부터 송도유원지 일대를 넓히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80년과 1981년 인천위생공사와 ㈜한독은 송도 갯벌을 매립했다. 이 바람에 아암도와 그에 딸린 소아암도는 육지와 붙어버렸다. 더이상 섬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작은 동산으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1994년 섬을 스쳐가듯 왕복 6차선 해안도로가 뚫렸다. 자동차가 그 옆으로 쌩쌩 달리면서 발걸음은 뜸해졌고 육지에 딸린 아암도는 점차 기억 속에서 잊힌 섬이 되었다. 이듬해 3월 아암도 해변을 ‘하와이 와이키키 비치’처럼 만들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갯벌 일부를 인공 백사장으로 만드는 구상이었다. 비치를 조성하기 위해 섬 주변에 바닷모래 수십 톤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며칠 후 모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루에 두 번 드나드는 밀물과 썰물이 모래를 쓸고 나갔다. 아마도 모래는 원래 있던 섬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인천의 와이키키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2001년 아암도는 주변에 있던 철책과 해안 초소를 없애고 폭 10m, 길이 1.2km의 해양공원으로 꾸며지면서 시민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이후 이곳에서 ‘바다 그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시티 투어 버스를 정차시키는 등 발걸음을 이끌었지만 아암도 ‘기행’의 배후였던 송도유원지가 문을 닫으면서 시민들의 바다 출구도 서서히 닫혀갔다.


▲갯골에 비친 송도국제도시 야경




청룡이 물고 놀았던 ‘여의주’


지난 8월 한낮, 아암도에 들어갔다. 비록 한쪽은 육지에 붙어 있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하루에 두 번 아암도는 바닷물에 몸을 담근다. 그 덕에 갯가에는 갯질경이, 칠면초 등 염생식물들이 자라고 앞쪽 갯벌에는 송도국제도시의 아파트 수를 웃도는 게집이 깔려 있다.

아암도 앞바다에는 여러 갈래의 갯골이 나 있다. 그 갯골 따라 게, 갯지렁이 등 생물의 움직임이 빈번하다. 하늘에는 이를 먹이로 삼는 검은머리갈매기를 비롯해 황조롱이, 노랑부리백로, 저어새 등이 무리를 지어 날고 있다. 바다와 통하는 아암도에는 여전히 바다 생태계가 살아 있다.

흩어진 갯바위는 바닷물과 바람이 만든 풍화혈의 시간을 품고 있다. 특히 공룡 발자국처럼 움푹 패어 있는 암석은 태초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갯바위를 디딤돌 삼아 갈 수 있는 데까지 나가 갯벌의 끝에 서서 아암도를 바라보았다. 울창한 숲으로 쌓인 채 봉긋 솟은 섬의 자태가 앙증맞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나 보아온 아암도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동안童顔’이다.​
 

▲소아암도 위를 나는 갈매기


▲일몰 무렵의 아암도


그 뒤로 청량산이 눈에 들어왔다. 청량산은 인근 마을에서는 ‘청룡산’으로도 불렸다. 옆의 봉재산과 함께 이어서 바라보면 한 마리의 청룡이다. 갯벌에서 조개를 잡다가 문득 아이들이 생각나 집 쪽을 바라본 아낙네의 눈에 이 아암도는 청룡이 입에 물고 놀았던 ‘여의주’였을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을 무렵 두 명의 아이가 섬에 ‘상륙’했다. 옥련동에서부터 해안 길을 따라서 걸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물 빠진 갯바위를 오르내리며 뛰어놀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섬을 빠져나가다가 작은 해변에서 돌을 집었다. 그러곤 시합하듯 물수제비를 떴다. 그들이 던진 돌들이 붉게 물든 바닷물을 파편으로 만들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맞았는지 갈매기도 그들의 놀이에 어지러운 비행으로 화답했다.

세상과 비대면해야 할 이때 청룡이 갖고 놀았던 여의주 섬, 아암도에 들어오면 대면해야 할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옛 추억을 대면할 수 있다.


원고출처 : 굿모닝인천 웹진 https://www.incheon.go.kr/goodmorning/index
글·사진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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