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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문화유산 답사기]오롯이 깃든 역사, 그 시간을 달리다 왕가의 길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9.03]

오롯이 깃든 역사, 그 시간을 달리다 왕가의 길 메가시티 서울은 백제시대에 위례성이라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불렸다. 서울은 약 600년간 이 땅의 수도로써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 왔다. 특히 조선의 역사가 오롯이 깃들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조선 왕조의 궁궐이 다섯 개나 있는 서울은 수원, 화성, 김포, 강화에 이르기까지 왕가의 흔적을 흩어 놓았다. 왕가의 길은 그 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다. 00. 국보 제223호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근정전은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문화재청은 올해부터 진행하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방문할 수 있도록 홍보한다.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에서는 우리의 대표 문화유산을 지역과 특색에 따라 묶어낸 일곱 가지의 길(문화유산 방문코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번 호에서는 일곱 가지 중 다섯 번째 길인 ‘왕가의 길’로 안내하고자 한다.

창덕궁, 조선시대 궁궐의 전형(典型)을 이루다

창덕궁은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비정형적으로 지어졌다. 특히 북한산과 매봉산 줄기가 창덕궁과 연결된 까닭에 궁의 건물들을 일직선 위에 놓지 않고 제각기 용도와 규모에 따라 공간을 배치했다. 정문인 보물 제383호 돈화문에서 정전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여기에 연못, 정자 등이 어우러진 후원은 조선 궁궐 정원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넌 뒤 진선문과 인정문 안으로 발길을 들이면 국보 제225호 인정전에 닿는다.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등 나라의 공식 행사가 열리던 정전이다. 창덕궁의 진가는 낙성재 옆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야 모습을 드러낸다. 창덕궁 전체 면적의 60%가량을 차지하는 후원이 바로 그곳인데 호젓한 숲길마다 연못과 정자가 있어 마치 비밀의 숲을 거니는 듯하다. 왕가의 길은 이처럼 아늑한 숲길로 이어진다. 창덕궁은 1997년 조선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후원 관람 소요 시간은 약 90분(약 2.5km구간)이다.


01. 부채꼴 모양으로 지은 관람정 02.수원천을 잇는 화홍문

수원 화성, 조선 중흥을 향한 정조의 꿈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 당쟁의 희생양으로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향한 지극한 효심 그리고 꿈꾸던 이상 국가를 만들기 위해 축조한 사적 제3호 수원 화성이 그 결정판이다.


1776년 즉위한 정조는 1789년 10월 와신상담하던 일을 드디어 감행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옛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꾸준히 현륭원을 방문했다. 그 무렵 정조는 또 하나의 꿈을 이루었다. 1789년 화성행궁, 1796년 수원 화성을 완성한 것이다.


수원 화성은 동서양의 축성 방식이 결합한 성곽 건축의 백미이다. 팔달산을 중심으로 5.7km에 걸쳐 이어진 성곽은 곡선미가 특히 돋보인다. 정조는 성을 지으면서 “미려함이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라며 곡선을 살려 성을 쌓을 것을 주문했다.


수원 화성은 4개의 성문을 비롯해 망루, 포루, 각루, 장대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 가운데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정조가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수원 화성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행궁을 시작으로 구불구불 성곽이 이어지고 안팎에는 크고 작은 건물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과거와 현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장관이다. 서장대 이후부터는 길이 완만해 걷기에 편하다.


보물 제403호 화서문은 성문을 감싼 반원 모양의 옹성이 특히 아름답다. 이후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과 수원천을 잇는 화홍문을 돌아보고 보물 제1709호 수원 방화수류정에 발걸음을 멈춰 보자. 원래 군사지휘소 역할을 했던 곳인데 요즘은 주변 카페에서 피크닉 세트를 주문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방화수류정 가까운 곳에는 무예를 수련하던 연무대가 있다. 국궁 체험장 맞은편으로는 동북공심돈이 눈에 띈다. 동북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 적의 동향을 살피는 망루이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국적인 모습이다. 수원 화성은 전통 성곽의 장점에다 서양 성곽의 장점까지 알뜰히 챙겼다. 젊은 실학자 정약용이 정조의 뜻을 설계에 반영했고, 영의정 채제공이 축성을 맡았다. 창룡문을 지나 팔달문에 이르면 수원 화성 성곽길 걷기가 마무리된다.


03. 융릉의 홍살문과 정자각 04. 화성 융릉과 건릉의 울창한 참나무숲

화성 융릉과 건릉, 역사의 비극도 막지 못한 왕가의 길

수원 화성에서 15km 남짓 떨어진 곳에 사적 제206호 화성융릉과 건릉이 있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능이고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이다.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다. 부왕인 영조와 왕실의 기대에 충분히 부합할 정도로.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인의 기질이 강했지만 학문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인 영조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부자간의 관계가 극심해진 때는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정국은 당쟁의 폐해가 나날이 더 심각해 가던 때였다. 결국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양으로 제 아비 영조의 명에 따라 뒤주에서 죽어 갔다. 천륜을 저버린이 비참한 사건을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똑똑히 기억했다.


한 맺힌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정조는 즉위한 후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왕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감행하였다. 그 첫 번째는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높이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경기도 양주시 배봉산(현재 동대문구 휘경동) 기슭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현재 경기 화성 화산동)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이장을 마친 뒤 이곳을 현륭원이라 했다. 이후 고종이 장헌을 장조(莊祖)로 추존하고 현륭원을 융릉으로 격상시켰다.


정조의 행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과제가 남아 있었는데 바로 당쟁 종식을 통한 왕권 강화였다. 이를 위해 정조는 당파 간 정치 세력에 균형을 꾀하는 탕평책, 국왕호위군대 장용영, 개혁 정치의 기반이 될 신도시 수원 화성 축성 등이 대표적이다. 정조의 계획은 치밀했고 실행은 단호했다. 또 정조는 재위 기간 수차례 현륭원을 찾아 참배했다.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기본이었겠으나 수원 화성 축성 현장을 직접 챙겨 보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정조의 지극한 효심과 정성 덕분일까. 생부가 묻힌 융릉은 물론이고 자신이 묻힌 건릉까지 볕이 잘 들고 숲이 우거져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명소가 되었다. 화성 팔경 중 제1경에 꼽히는 게 당연해 보인다.


융건릉 관광안내소를 지나면 곧바로 오솔길이 열린다. 길섶에서 500년을 지켜 온 왕가의 기품이 느껴진다. 숲이 깊으니 늦여름의 뜨거운 햇살도 문제되지 않는다. 산책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도 1시간이면 두 능을 마주할 수 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건릉, 오른쪽으로 가면 융릉이다. 기왕이면 아들 정조의 정성과 온기가 느껴지는 융릉부터 찾아보자. 길은 참나무숲 사이로 조붓하게 나 있다. 참나무는 흔히 도토리나무로 불리는 수종으로쓰임새가 많아 유용한 나무라는 뜻을 지녔다.


홍살문을 넘으면 박석이 깔린 참도를 마주한다. 윗단 길은 왕이 걷는 길이고, 아랫단 길은 대신들이 읍한 채 걷는다. 정자각을 지나면 봉분을 에두른 화려한 병풍석이 보인다. 병풍석에는 목단과 연화문을 번갈아 새겼다. 정조가 잠든 건릉은 부자간처럼 융릉을 닮았다.


건릉을 돌아 나오는 길에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조가 이곳을 조성할 때 소나무 45만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그때 심은 나무가 아직 자라고 있다면 250년은 족히 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숲에서 그 정도 수령의 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설령 그때 심은 소나무가 모조리 죽었다 해도 그 씨가 떨어져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지 않았을까. 왕조의 길이 쉽게 끊어지지 않듯이.


05. 국보 제225호 창덕궁 인정전 06.전등사 경내 풍경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이범수) 07.사적 제137호 강화 부근리 지석묘

조선 왕조의 유교적 예법이 깃들다

경복궁은 조선시대 다섯 개의 궁궐 가운데 첫 번째로 지어진 궁궐이다. 그렇지만 준공 당시 규모는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것이어서 왕실의 존엄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했다. 궁궐로서 완전한 모습을 선보인 것은 세종 대에 이르러서이다. 세종은 1421년부터 1426년까지 5년에 걸쳐 근정전을 포함한 전각 대부분을 새로 짓고 개보수했다. 경복궁 건립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법궁(法宮)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실제로 높은 궁성과 장대한 광화문 앞에 서면500년 왕조의 위엄이 느껴진다.


경복궁은 광화문, 홍례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을 중심축으로 일직선 위에 놓인 대칭 구조이다. 그러나 이들 건물을 제외하면 크고 작은 건물이 자유롭게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무쌍한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경복궁 관람을 마친 뒤 30분 정도 걸으면 종묘에 닿는다. 조선 왕조는 유교 예법에 따라 수도 한양의 공간을 구성했다. 그중 가장 먼저 지은 것이 조상에게 제사하는 사적 제125호 종묘였다. ‘종묘’는 그 자체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며, 종묘에서 치르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국내 단일건물 가운데 가장 긴 건물인 국보 제227호 종묘 정전은 길이만 101m에 이른다. 검은색 기와를 이고 있으며 붉은색 기둥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19칸의 태실에 모두 49위의 신주가 봉안돼 있는 이 건축물 앞에 서면 누구나 엄숙하고 경건해진다. 관람코스는 하마비에서 출발해 정전과 영녕전을 돌아본 뒤 돌아 나오게 되며 소요 시간은 1시간 이내이다.


사적 제202호 김포 장릉은 선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자, 인조의 생부인 추존왕 원종 그리고 그의 부인인 인헌왕후의 무덤이다. 원종은 아들 능양군이 1623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후 대원군에 봉해졌고, 그 이후 왕으로 추존되었다. 그의 무덤도 장릉으로 불리게 됐다. 장릉은 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있는 쌍릉으로 왼쪽이 원종, 오른쪽이 인헌왕후의 능이다.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 강화도에서 만나는 옛 선인의 자취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 강화도에는 1,600여 년을 이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 전등사가 있다. 창건 시기는 1,639년 전인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으로 알려져 있다. 전등사에 가려면 성문을 먼저 지나야 한다. 성은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았다고 전하는 삼랑성이다. 원래는 토성이었는데 여러 국난을 겪으면서 민초들이 돌을 다듬어 고쳐 쌓았다. 성벽을 지탱하고 있는 돌에서 그들의 한과 정성이 느껴진다.


성곽 길이는 약 2.3km이고 동서남북 각 방향에 성문이 있다. 전등사는 문화재가 있는 지점을 따라 관람 동선을 짜는 게 편하다. 먼저 삼랑성의 정문 격인 남문을 지나 곧장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7호 강화 정족산사고지로 향하자. 이곳은 국보 제151-1호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을 보관해온 곳으로 유일하게 전책(1,187책)을 보존했다. 이어서 보물 제179호 강화 전등사 약사전과 보물 제393호 전등사 철종을 돌아보고 보물 제 178호 강화전등사 대웅전을 살펴보면 된다.


강화도에는 160여 기의 고인돌이 고려산 기슭을 따라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에 흩어져 있다. 그 가운데 사적 제137호인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길이 6.4m, 폭 5.2m, 두께 1.1m로 남한에서 가장 큰 탁자식 고인돌이다. 축조할 때 동원된 인원만 약 1,000명으로 추정한다. 고인돌 주인의 권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용도는 부족장의 무덤이라는 주장과 제단이라는 주장이 있다.


고인돌공원에는 청동기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움막과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 모형을 전시해 놓았다. 그 외에도 48번 국도변에는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군’과 ‘점골지석묘’가 있다. 점골지석묘는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로 발굴 당시 쓰러져 있던 것을 2010년에 복원했다. 모두 12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7호 오상리 고인돌군에서는 발굴 당시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편, 청동기시대의 석촉, 석검 등이 출토됐다.


여행정보 즐길 거리 # 수원에서 핫한 데이트 코스 | 팔달문 관광안내소에서 이면 도로를 따라가면 공방 거리와 연결된다. 주말에는 데이트 나온 연인들로 북적이는 수원의 핫플레이스이다. # 통닭 골목 | 바삭바삭한 튀김옷에 부드러운 속살을 숨기고 있는 통닭이 발목을 붙잡는 골목이다. 통닭 한 마리를 주문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맥주를 찾게 된다. # 수원화성박물관 | 수원 화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화성성역의궤』뿐만 아니라 정조와 그 당시 실학자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많아 꼭 챙겨 봐야 할 곳이다. 문의 창덕궁 02-3668-2300 종묘 02-765-0195 남한산성 031-743-6610 수원 화성 031-290-3600 화성 융릉과 건릉 031-222-0142 경복궁 02-3700-3900 김포 장릉 031-984-2897 전등사 032-937-0125 강화 고인돌유적 032-933-3624 왕가의 길 탐방 코스 ➊ 창덕궁 - 종묘 - 남한산성 - 수원 화성 - 화성 융릉과 건릉 ➋ 경복궁 - 종묘 - 김포 장릉 - 전등사 - 강화 고인돌 유적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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