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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동서양 세기의 의거’, 윤봉길 의사 폭탄 투척 vs. '안드로포이드 작전'
글쓴이 tntv 등록일 [2019.02.09]



‘동서양 세기의 의거’, 윤봉길 의사 폭탄 투척 vs. '안드로포


이드 작전'

글 |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동양과 서양에서 벌어진 두 가지 폭탄 사건이 시기는 다르지만 내용면에서 너무 닮은 곳이 많아서 역사의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첫 번째 사건은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일어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이며,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10년 뒤 체코 프라하에서 나치 총독이 폭탄에 의해 피살된 사건인 ‘안드로포이드 작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조선에서 계몽운동에 한계를 느낀 청년이 상하이로 건너가서 김구 선생과 의기투합하여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뒤, 일본군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등을 폭살한 사건이다.
 
그리고 ‘안드로포이드 작전’ 은 영국의 특수작전국(SOE)이 선발한 체코군 출신인 얀 쿠비시(Jan Kubiš) 준위와 요제프 가브치크(Jozef Gabčík) 준위가 1942년 5월 27일, 체코의 나치 총독 라인하르트 하인드리히(Reinhard Heydrich)를 수류탄으로 중상을 입혀 죽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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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윤봉길 / 중 얀 쿠비시 / 우 요제프 가브치크

언뜻 봐도 두 사건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어떤 점들이 비슷한 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일제와 나치의 현지 점령군 총사령관들이 각각 폭탄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명 모두 최고통치권자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점도 똑같다. 한 명은 일왕 히로히토에게, 또 다른 한 명은 나치 총통 히틀러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던 자들이었다.
 
일본군 육군 대장 시라카와는 육군 대신을 지낸 일왕의 군부 오른팔이었고, 일왕의 명령에 따라 상하이를 침공해 1932년 3월에 이곳을 점령한 인물이다. ‘프라하의 도살자’라고 불리던 하인드리히는 나치 친위대의 보안방첩대(SD)와 게슈타포를 합친 제국보안본부(RSHA)의 수장을 지냈고, 1941년 9월 체코의 총독대리로 부임해 침략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
 
점령군 총사령관이 폭탄에 의해 피살된 두 사건은 20세기 동서양을 통틀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나치의 백러시아 총독이 1943년 9월 현지 빨치산 대원에 의해 암살된 사례가 있으나, 사건의 성격과 파급력을 볼 때 두 사건과 비교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둘째, 두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한국과 체코는 각각 중국과 영국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똑같다. 두 사건은 또 망명정부의 승인을 받고 수행점도 같다.
 
윤봉길의 의거는 김구의 주도 하에 임시정부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한인애국단 소속의 대원이 일으킨 거사였다. ‘안드로포이드 작전’ 또한 체코 망명정부의 대통령 에드바르트 베네시(Edvard Beneš)가 주도하여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협조 아래 일으킨 사건이었다.
 
셋째, 한국과 체코의 망명정부가 이와 같은 거사를 실행하게 된 배경 또한 비슷하다. 한국은 의거 1년 전에 발생한 ‘만보산 사건’과 ‘만주사변’ 등으로 임시정부의 입지가 매우 좁아진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체코도 폴란드 등 나치에 점령당한 국가들에 비해 나치에 대한 저항이 약하다고 연합국들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결국, 위기에 봉착한 두 망명정부가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 독립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작전을 계획하게 된 것도 두 사건의 닮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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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 / 우 안드로포이드 작전 당시 피폭된 총독 차량

넷째, 두 사건은 단순한 ‘테러’가 아닌 전시에 이루어진 ‘군사작전’ 이었다는 점도 같다.
 
일본군이 상하이를 침공하고, 나치가 체코를 점령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즉 전시에 벌어진 사건이다. 두 사건은 각각의 망명정부가 주도한 공인된 ‘군사작전’이었으며, 사살자와 피살자 쌍방이 모두 민간인이 아닌 군인 신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체코의 경우, 영국 군인 신분인 체코 레지스탕스가 적국의 총사령관을 폭살한 것이며, 상하이 의거 또한 마찬가지다.
 
일본 육군성 자료는 시라카와 대장이 홍커우 공원이라는 ‘전장(戰場)’에서 ‘전사(戰死)’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윤 의사의 처형 방식도 민간인에게 행하는 교수형이 아닌 군인에게 내리는 총살형으로 집행되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윤봉길의 의거는 결코 민간인에 의한 테러가 아닌 임시정부의 특공대원이 교전 상대국 사령관을 상대로 수행한 ‘군사작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일본과 나치의 두 사령관은 사건 현장에서 즉사를 한 것이 아니라 사건 이후, 폭발로 인한 부상으로 사망한 점과 이들의 장례식에 최고통치자인 일왕과 히틀러가 참석했다는 사실도 닮은 꼴이다.
 
마지막으로 두 사건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점은, 두 사건이 식민지배에 놓여있던 한국과 체코가 훗날 영토를 회복하고 독립국의 지위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윤봉길 의거는 중국의 장개석 총통을 감동시켜 한국 임시 정부를 적극 지원 하게 만들었고,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장개석이 연합국 수뇌들을 상대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여 이를 선언에 포함하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하인드리히 폭살 사건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1938년 뮌헨회담에서 독일에게 승인해 준 체코의 수데텐 지방의 합병을 무효화시켰다. ‘안드로포이드 작전’의 성공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코의 독립과 수데텐 지방을 돌려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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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시라카와 요시노리 (1869~1932)  우 라인하르트 하인드리히 (1904~1942)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20세기 동양과 서양을 뒤흔들어 놓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사건은 놀라울 만큼 공통점이 많다. 내용 뿐만 아니라 사건이 미친 영향 또한 닮은 꼴이라서 흥미를 더한다.
 
‘윤봉길’과 ‘얀 쿠비시’, 두 애국청년들이 던진 폭탄은 한국과 체코에 독립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의 행동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당기게 된 ‘세기의 의거’로 기억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7&nNewsNumb=20160720800&nidx=20801&dable=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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