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방송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홈으로 | 즐겨찾기등록 |  +관련사이트 
문화재방송 한국 " Since 2008. 2. 1 "
[공지 사항] 문화재방송.한국(www.tntv.kr)은 기획. 취재. 촬영. 편집. 내레이션을 '김종문 VJ' 혼자 담당하는 1인 5역의 1인 방송국입니다 / [문화재방송 캠페인] 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숨 쉬고 있습니다.
hudownwbe wojodown nuebfile monjdown yesnkdown lpmedown jneepudw mndownfile bafdownco yabiqedown amehdown fadowntero evnhdown
HOME >
문화재뉴스 >
무형문화재 >
유형문화재 >
기타문화재 >
영상문화 >
역사기행 >
유네스코세계유산 >
문화재연감 >
유튜브 바로가기 >
PageNo : 01
제 목 진정한 예인으로 살다 간 ‘피리꾼’
글쓴이 tntv 등록일 [2018.11.28]
산조란 장구 반주에 맞추어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독주형태의 음악으로, 대금산조는 대금으로 연주하는 산조를 일컫는다. 대금산조는 대금 특유의 기법과 다양한 가락의 변화를 통해 청자에게 긴장과 흥겨움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대금산조의 장단은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짜여 있으며, 청공(淸孔)을 떨어주는 장쾌한 소리가 큰 묘미이다. 연주자의 고도의 기교와 예술적 감각이 빚어내는 대금산조 선율은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01.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강백천은 남도민요에서 터득한 시나위풍의 가락을 근거로 하여 시나위더늠을 만들었다. ⓒ한겨레음악대사전 02. 대금은 대나무로 만든 가로저(횡적, 橫笛)이다. 한국의 대금은 취구와 여섯 개의 지공이 있으며, 갈대 속청을 붙여 세게 불 때 특유의 노이즈를 내는 청공이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청 03, 04. 강백천류 대금산조 악보 ⓒ청산대금산조 전수원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젓대’라고 부르기도 하는 대금은 오랜 역사를 지닌 악기이다. 신라시대 이전부터 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라 31대 신문왕에 얽힌 신화, <만파식적>은 대금의 역사를 가늠하게 해준다.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짓고 추모하는데, 죽어서 바다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군이 물러가고, 병은 낫고, 물결은 평온해졌다는 이야기다. 나라의 모든 근심과 문제를 해결해주는 악기로 여겼던 대금은 훗날 대금정악과 대금산조라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천년 세월을 우리민족과 함께 해오고 있다.

1898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출생한 강백천은 어려서부터 대금시나위를 잘 불었다고 한다. 강백천은 17세부터 박준필에게 대금으로 풍류를 익히면서 남도 시나위 가락에 심취했다. 이후 전추산과 대금산조의 시조(始祖)로 꼽히는 박종기 등에게 대금과 정악풍류, 단소, 가야금, 양금, 시조 등의 기본을 익혔다. 이후에는 여러 창극단에서 대금을 연주하며 음악적 토대를 다져나갔다.

대금산조의 창시자인 박종기와의 교류는 자신만의 산조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었다. 박종기가 자주 사용하는 몇 가지 시김새를 강백천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 강백천의 대금산조는 박종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계면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강백천 대금산조는 박종기의 ‘소리더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는 강백천 ‘시나위더늠’의 근본이 되었다. 이처럼 강백천과 박종기는 교분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특한 대금산조를 이루어 나갔고 이로부터 대금산조는 소리더늠과 시나위더늠의 두 갈래로 발전하게 되었다.

시나위더늠 시나위+더듬의 복합어로 남도의 시나위가락을 바탕으로 모방하여 엮은 대금산조의 가락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판소리가락을 모방하여 만든 소리더늠이라는 말과 대칭어로 사용되고 있다.

강백천은 남도민요에서 터득한 시나위풍의 가락을 근거로 하여 시나위더늠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현악에만 있던 산조를 발전시켜 남도 시나위에 뿌리를 둔 대금산조를 창조한 것이다.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장단으로 구성됐고, 우조와 계면조로 짜되 계면이 주가 되어 대금시나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박종기의 소리더늠 대금산조가 우조·설렁제(드렁조)와 같은 판소리조를 구사하고 선율이 판소리형에 가까운 것과 대조적이다. 강백천 시나위더늠이 가지는 남도식의 깊은 성음과 절제된 가락의 미학은 소리더늠의 현란한 가락과는 또 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강백천의 대금은 현재 사용되는 산조 대금에 비해 장2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흔히 이러한 대금을 시나위 대금이라고 하는데, 보통 무악 반주나 민요 연주에 사용한다. 이와 같은 높은 키의 대금은 소리더늠 대금 연주자들이 사용하는 대금보다 한 음이 높기 때문에, 쾌활하고 가벼운 느낌의 계면성음을 연주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음악을 표현해 낼 수 있다.

평생을 초야에 묻혀 자신의 음악으로 수양을 쌓은 강백천은 1951년 전주에, 1954년에는 남원에 국악원을 창설하기도 했다. 1971년 3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됐으며, 1976년 12월 문화재관리국과 문화재보호협회 제작 의 <한국의 음악>에 대금산조를 취입했고, 1979년 10월 21일 국가무형문화재 대금산조 발표공연에 출연했으며, 1981년 10월 26일 국가무형문화재 발표공연 때 대금산조 공연을 하였다.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1982년 이 시대의 진정한 예인으로서 그의 생을 다하였다.

강백천은 1898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82년 4월 30일 부산에서 사망할 때까지 대금 연주에 심혈을 기울여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음악 중 하나로 꼽히는 시나위더늠 대금산조를 완성한 대금의 명인으로 남아있다.


글. 성혜경

 
 


 

주소:서울 강서구 화곡로185 서안오피스텔505호 | 이메일:tntvkr@nate.com
Copyright(c)tntv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