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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불꽃으로 새기는 이상(理想)과 꿈
글쓴이 tntv 등록일 [2018.11.09]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 기능보유자 김기찬 ‘타닥타닥’ 붉게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달아오른 인두를 붓 삼아 대나무 화폭을 지진다.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한없이 부드러운 인두의 끝에서 꽃봉오리가 피어오르고, 천년 학이 훨훨 날아오른다. 산과 구름이 어우러진 가운데 강직한 시(詩) 한 구절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몸 받아 스스로 선택한 일은/ 대나무에 무늬를 넣은 일이라/ 하고 또 해도 싫증이 안 나/ 천직이라 여기네.’ 낙죽장(烙竹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노력해온 명장 김기찬의 인생과 예술 궤적을 따라가 본다. 01.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 기능보유자 김기찬

‘운명’이 ‘숙명’으로 바뀌는 시간

‘낙죽, 얼레빗 작품전시관’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입구로 들어서자 대나무의 향이 짙게 배어난다. 하얀 전시장 내부로 진귀한 낙죽공예품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과 글씨, 그리고 신비스러운 무늬가 시선을 빼앗는다. 불에 달군 인두로 대나무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낙죽장 기능보유자 김기찬 씨가 빚은 작품들이다.

“어릴 적부터 뭐든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겨울엔 얼음썰매를 만들고, 팽이도 직접 깎고요. 새끼줄에 짚을 엮어 축구공을 만들기도 했죠. 저뿐만 아니라 그때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했어요. 만드는 것도 하나의 놀이였으니까요. 아버지께서도 짚으로 만드는 물건인 멍석, 둥구미, 걸망태 등과 싸리나무로 엮어 만드는 채반, 소쿠리, 삼태기 등 무엇이든지 모양이 좋고 튼튼하게 잘 만드셨어요. 그 손재주를 제가 물려받은 셈이죠.”

경기도 광주 태생인 김기찬이 낙죽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대 초반 남도 여행 중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 갔을 때였다. 그 풍경이, 장소가 주는 따뜻함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절 입구의 여관 겸 식당에 한 달을 머물게 했다. 그리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할 때쯤, 그를 눈여겨봤던 여관 주인이 자신의 딸과 결혼을 제의했다. 그렇게 송광사에 둥지를 틀었다. 우연이 운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결혼 이후 송담(松潭) 이백순 선생님에게 한문을, 상운(祥雲) 김영도 선생님에게 붓글씨를 배웠어요. 이어 국제(菊齊) 이종득 선생님에게 사군자와 산수화를 배웠죠. 그때 화실에 자주 놀러오시던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粧刀匠) 박용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박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만든 죽패도에 낙을 놓으려고 담양에 갔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저에게 그림과 글씨를 공부했으니 그 바탕 위에 낙죽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권유하셨죠. 나중에 당신의 칼자루에 낙(烙)을 넣어주라면서요.”

그렇게 1983년 초, 그는 담양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낙죽장 이동연 선생의 문하에서 낙죽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에 이동연 선생이 작고한 뒤, 국양문 선생이 제2대 낙죽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자, 김기찬 선생은 전수교육조교로서 우리나라 낙죽장의 계보를 잇는 발판을 충실히 다져나갔다. 1987년부터 3년간 동신대학교 김병록 교수에게 목공예를, 1984년부터 3년간 광주대학교 김종식 교수에게 디자인을 지도를 받으며 출품했다. 그의 새로움에 대한 노력은 2000년 7월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낙죽장 烙竹匠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장식적인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기능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낙죽은 온도를 맞추어 그려야 하고 인두가 식기 전에 한 무늬나 글씨를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에
오랜 경험과 속력을 필요로 한다.

텅 빔으로 얻어진 충만함

보성에 오기 전 지냈던 순천 송광사 내에 있던 ‘금죽헌공예미술관’은 이제 없다. 안타깝게도 2007년, 알 수 없는 화마가 덮쳐 그 진귀한 작품들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29년 세월의 정성과 혼의 소실. 그는 어떻게 감당했을까.

“‘텅빈충만’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고 그 전시 중에 원인모를 화재를 당했습니다. 그동안 수집했던 낙죽의 옛 유물들과 20여 년 동안 부단히 해온 작품들, 10년 동안 한 올 한 올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모아 만들어낸 `모정` 작품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 사라졌습니다. 늦게 도착해 보니 소방차는 떠났고 이글거리는 잔불을 쪼그리고 앉아 응시하다가 나는 낙죽역사의 죄인이다 하는 생각이 들자 포기하면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체험(마음)을 합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7월 8일, 김기찬은 보성군 주암호 중류에 위치한 서재필선생기념공원에 ‘계심헌공예미술관’을 확장 개관했다. 낙죽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실험을 위해 필장, 금속공예가, 도예가, 목공예가, 주얼리 디자이너 등과 지속적으로 협업도 추진했다.

그의 남도인연 40년의 전기는 송광사 금죽헌 시절(1998~2007)과 후기 서재필선생기념공원 계심헌(2008~)으로 나눌 수 있겠다. 전기 금죽헌 시절의 낙죽은 합죽선, 죽장, 필통, 선추침통, 불자, 고비, 실패 등 쓰임새 위주의 전통공예품의 기물 표면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문양의 종류도 전통적으로 시문되는 소라문, 산수문, 사군자문 등이 있는가 하면, 부귀와 장수 그리고 길상을 상징하는 박쥐문, 백수백복문, 귀갑문, 십장생문, 불교에서 시작된 만자문(卍字文), 연화문, 문자문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매년 5월 보성다향대축제에 맞물려 낙죽 전시회를 열고 있어요. 올해는 ‘기찬 삼씨전(글씨·솜씨·맘씨)’을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죠. 차 도구 30여점과 글씨도 30여점 전시하고 있죠. 다른 작가들과 함께 협업한 낙죽 작품들은 물론, 낙죽을 주제로 시를 쓴 시인들의 이름을 문양으로 새롭게 만들어 차칙(茶則)에 새겨 넣는 작업도 했어요. 창작의 고통보다도 새로운 시도가 주는 감흥이 저에겐 더 큰 것 같습니다.”

02. 김기찬의 배움은 낙죽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03. 섬세한 문양을 놓은 붓대 작품 04. 심정필정 낙죽 붓 05. 인두의 온도와 누르는 힘으로 농담을 표현해내는 낙죽은 고도의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낙죽, 사슴의 발자국을 남기는 일

전시관 뒤편에 있는 작업실로 들어섰을 때는 범상치 않은 장비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편에는 크고 작은 대나무와 오동나무, 갖가지 재료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에게 전수를 받는 학생들의 습작들도 한가득이다. 낙죽은 본인 작업의 30%에 불과하다는 말이 그제야 이해가 간다. 나무를 고르고, 다듬고, 형태를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붓고 있는지 감히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다. 대나무 화폭이 준비됐다면, 무늬를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린 이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낙죽작업을 할 때에는 정좌(正坐)하여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오른발 바닥에 낙죽할 재료를 얹고 왼손으로 잡는다. 오른손으로는 인두를 잡고 지지는데 이때 재료를 잡은 왼손은 인두의 움직임에 맞추어 적절히 이동시켜 주어야 한다. 낙죽에 사용되는 인두의 몸체는 앵무새 부리처럼 두툼하게 생겼으나 그 끝이 뾰족하다. 보통 두 개를 화로에 달구어 번갈아 사용한다. 이는 알맞은 열기를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인두를 들어 자신의 볼에 살짝 접근시킨다. 인두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인두의 열기가 높으면 빠른 손놀림이 요구되고, 낮으면 손에 힘이 들어가요. 그런 이유에서 높은 열기에서는 선을 그리고, 낮은 열기에서는 질감을 넣습니다. 열기가 너무 높으면 무늬의 강도, 즉 색채가 짙어지고, 낮으면 색채가 얕아져요. 그 때문에 낙죽에서 인두를 쓰면서 농담(濃淡)을 섞어 문양, 즉 무늬나 그림의 내용을 효율성 있게 나타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래서 낙죽장은 날렵한 재질과 속력이 있어야 하고 경험과 훈련 또한 많아야 합니다.”

그는 낙죽공예가 현대 생활에 스며들기를 바라기 때문에 전통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안방 스탠드에 낙죽공예 들인 대나무를 세우기도 하고, 전통의 천 장식에 낙죽을 접목한다. 또한, 낙죽기법을 활용하여 단순한 생활도구인 죽제품을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 죽제품으로 변신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은 뜨거운 인두로 새겨지는 낙죽을 보며 ‘사슴의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라고 표현했어요. 이 모든 작품들의 대부분은 자연이 완성한 것이죠.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 낙죽을 심신의 수련으로 알고, 마른 대나무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보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인자한 그의 미소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감동을 받는다.


글. 백수지 사진. 김병구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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