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downwbe wojodown nuebfile monjdown yesnkdown lpmedown jneepudw mndownfile bafdownco yabiqedown amehdown fadowntero evnhdown
문화재방송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홈으로 | 즐겨찾기등록 |  +관련사이트 
[문화재방송 캠페인]'문화재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숨 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휴일이면 가족과 더불어 각종 문화재와 함께 하여 민족의 숨결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문화유산 답사기]임진강 고랑포 좁은 물길에서 1500년 역사를 보았다..고구려에서 대한민국까지.
 수라상에 올랐을 전통음식의 변화와 흔적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태평무 배우며 한국의 여름나기
 2018년도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한국의 서원’ 선정
 [화보]집중호우로 '1천년의 신비' 진천 농다리 상판·교각 유실
 [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망우묘지공원과 안창호 유상규
 [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성자는 혼자 즐긴다
 ‘오자’ 논란 2017서예비엔날레 공모 대상작품 선정 취소
 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일본, 일본인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2] 임진왜란의 산물 천왕문
 [이한우의 知人之鑑 ]《논어(論語)》로 보는 항우(項羽)의 패망 이유
 용산으로 옮기려던 국립민속박물관, 세종 이전 추진된다
 익산 연동리 '백제시대 석조여래좌상' 원형 복원 추진
 [조선의 잡史]더럽다고 얕보지마… 똥장수 연수입, 한양 집 한채 값
 [고구려사 명장면-4]또 다른 시조, 태조대왕
 종이로 인천근대 건축물을 세우다...
 [이야기가 있는 마을]일제에 맞선 두 소년, 만경암 돌담 아래 잠들다
 한국과 일본의 모시 문화, 한자리에서 만나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듣는 대한제국의 역사와 음악
 토요공방 -전통의 창조적 계승- 참가신청(안내)
 줄 위에서 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보유자 김대균과 국내 제1호 슬랙사이너 손인수
 수백만원 하던 '고려시대 금속활자' 10만원에도 안 팔리는 까닭
 여름철 걷기 좋은 국립공원 내 힐링로드 10곳은
 [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박병래 컬렉션과 기증의 미학
 '미인도는 없다'..26년만에 발견된 '천경자 코드' 5가지 비밀은?
 
PageNo : 01
제 목 [물밑 한국사-18]환국은 없다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7.17]



환국은 없다

  • 이문영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임신본 "삼국유사"
▲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임신본 "삼국유사"
[물밑 한국사-18] 유사역사학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환국(桓國)이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근거는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에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라고 쓰여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사학계는 이 부분을 "옛날에 환인이 있었다-昔有桓因"이라고 읽는다. 어째서 한쪽에서는 국(國)이라고 읽고, 한쪽에서는 인(因)이라고 읽을까?

 현재 전해지고 있는 삼국유사는 꽤 종류가 많다.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보통 '임신본'이라 부르는 것이다. 중종 7년인 1512년에 인쇄된 것으로 이 해가 임신년이어서 임신본이라고 부른다. 이 임신본은 몇 종이 남아 있다. 이 임신본에는 문제의 글자, 즉 환국인지 환인인지 혼란스러운 글자가 '□+王'으로 적혀 있다.

'□+王'이라면 나라 국(國)의 약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환국이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조선시대로부터 이런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세종10년(1428년) 6월 14일자 기사에 "북쪽 벽에는 단웅천왕, 동쪽 벽에는 단인천왕, 서쪽 벽에는 단군천왕을 문화현 사람들은 삼성당이라고 항상 부르며…"라고 하여 단인, 즉 환인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단종실록 즉위년(1452년) 6월 28일자에는 "삼국유사에서 말하기를 고기에 전하되 옛날에 환인이 있었다"라고 정확히 환인(桓因)이라고 쓰고 있다.

조선왕조실록(태백산본)의 단종실록에 나오는
▲ 조선왕조실록(태백산본)의 단종실록에 나오는 '석유환인'




 단종실록은 늦어도 예종 1년(1469년)에는 편찬을 마친 것으로, 중종 때 만들어진 삼국유사 임신본보다 일찍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역사학자들이 조선왕조실록을 모두 검열하고 글자를 고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태백산본, 정족산본 등이 남아있는데 이걸 다 살펴보고 고쳤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한글 번역본을 읽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을 뒤져서 모든 부분을 찾아내고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유사역사가들은 이런 불가능한 일도 다 해낼 수 있는 슈퍼파워를 일제 식민사학자들에게 부여해 준다.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또한 고려시대에 단군신화를 전한 또 하나의 책인 제왕운기에도 환인(桓因)으로 나온다. 제왕운기는 초간본은 전해지지 않지만 공민왕 9년(1360년) 발행된 중간본은 전해지고 있다.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 결과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王'자를 보고 國자의 약자로 오해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결과 1904년 도쿄제국대에서 나온 삼국유사에는 환국(桓國)이라고 되어 있었다. 흔히 일본은 환국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환국으로 된 글자마저 환인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도쿄제국대가 발간한 책에 '환국'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일본이 환국을 환인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그것은 1921년에 나온 교토대 영인본 때문에 나온 이야기다.

3교토대에서 영인한 순암 수택본 "삼국유사"
▲ 3교토대에서 영인한 순암 수택본 "삼국유사"




 보이는 바와 같이 '□+王'자 위에 덧칠을 해서 因자로 바꿔놓았다. 이걸 본 사람들이 쉽게 흥분한다.

 "이런 나쁜 일본인! 역사책에 덧칠을 해!"

 그런데 이 영인본은 '순암수택본'이라고 부르는 책으로 바로 순암 안정복이 가지고 있던 책이다. 안정복은 자신이 쓴 역사책 동사강목에서 환인(桓因)이라고 쓰고 있다. 그는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환인(桓因)을 환국(桓□+王)이라고 잘못 썼다고 생각하고 글자를 수정한 것이다. 훗날 이런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잘못된 건 다 일본 탓이라고 생각하고는 엉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앞서 삼국유사 중에는 중종 때 만들어진 '임신본'이 제일 유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만들어진 삼국유사도 전해지고 있다. 이 삼국유사들을 고판본이라고 한다. 고판본 삼국유사에는 문제의 글자가 조금 다르게 전해진다. 고판본 중 필사본인 '석남본'에는 이 글자가 □자 안에 士자가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석남 송석하가 소장했던 필사본 석남본
▲ 석남 송석하가 소장했던 필사본 석남본 '삼국유사'(좌)와 손보기 교수가 소장했던 판각본 파른본 '삼국유사'(우)




 이 석남본은 필사본이라 잘못 쓴 오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13년에 연세대 손보기 교수가 가지고 있었던 파른본 삼국유사가 공개되었는데 여기에도 같은 글자가 쓰인 것을 알게 되었다.





 파른본이나 석남본이나 다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판본들로 인해 '□+王'자는 이 글자들의 오각임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 글자는 인(因)자와 모양이 다르지 않은가? 이 글자가 인(因)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조경철 소장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고려대장경에서 이 글자를 찾아내었다. 고려대장경의 '신집장경음의수함록'에 해당 글자가 사용되었다. 이 책은 10세기 중엽 송나라 가홍(可洪)이 편찬한 것으로 대장경에 나오는 어려운 용어의 음과 뜻을 설명한 책이다. 여기에서 바로 해당 글자가 나오고 그 글자는 因으로 읽는다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이 글자가 나오는 경전을 '문수사리보초삼매경'이라고 해놓았다.

 그런데 '문수사리보초삼매경'에는 해당 글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인(因)을 새겨놓았다. 즉 해당 글자가 인(因)과 같은 글자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문수사리보초삼매경'에 "보인오법이득무위(甫因吾法而得無爲)"라고 나오며 이 뜻은 "비로소 나의 법으로 인하여 무위를 얻게 되었다"이다.

 고려대장경은 삼국유사와 동시대에 만들어졌다. 이도학 교수도 '꿈이 담긴 한국고대사 노트(하)'(일지사, 1996)에서 565년에 만들어진 북제의 '강찬조상기'에 인(因)의 다른 글자체(이체자라고 한다)로 해당 글자가 사용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환인이 맞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를 통해서 다각도로 증명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글자 하나가 획 하나를 잘못 그음으로써 어떤 일을 일으켰는지도 알 수 있다. 환국에 대한 엉뚱한 집착은 '환단고기'와 같은 위서를 탄생시키는 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역사학에서 글자 하나하나를 고증해나가고 파악해나가는 것은 바로 이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함이다.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대부분 환국이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읽으면 일연이 달아놓은 주석을 해석할 수 없게 되고 문장 자체도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기는 데는 목청만 크면 된다. 이렇게 해서 역사학의 물밑에는 엉터리 지식들이 자꾸만 쌓여나간다.

(이 글은 조경철 소장의 논문 '단군신화의 환인·환국 논쟁에 대한 판본 검토'를 많이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삼국유사 사진들도 해당 논문에서 인용하였다.)

[이문영 소설가]
원문보기
http://premium.mk.co.kr/view.php?cc=110002&field=&keyword=&page=&no=16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