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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문화유산 답사기]송강 정철과 도사 전우치가 살았던 담양 대밭에는 황금이...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7.14]




[박종인의 땅의 歷史] 전우치가 황금을 숨긴 담양 대밭에는…

[54] 정철과 전우치가 살았던 담양

도사 전우치가 명나라 황금 대들보 숨긴 담양 들판…
영산강 강변에는 담양 백성 먹여 살린 '생금밭' 대나무 숲이
시간이 멈춘듯한 창평 고씨 집성촌 삼지내 마을
송강 정철, 담양에서 공부해 장원급제
"최고의 문인" "잔혹한 정치가" 두 얼굴 평가

박종인의 땅의 歷史 로고 이미지

여우가 가르쳐준 도술

16세기 조선에는 도사(道士)들이 많았다.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과 남사고와 곽재우가 이때 살았다. 임진왜란을 예언하고 전쟁을 도술로 치른 영웅과 기인들이 이때 사람들이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모르나, 전우치(田禹治)도 이때 사람이다. 개성 사람이라는 말도 있고 담양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실학자 이덕무는 전우치를 담양 사람으로 보았다. 그의 문집 '청장관전서'에는 이리 적혀 있다.

어릴 적 절에서 공부하던 전우치는 어느 밤 절 스님이 잘 지키라 신신당부한 술독을 도둑에게 빼앗겨버렸다. 누명을 쓴 우치는 "다시 술을 빚어놓으면 도둑을 잡겠다"고 했다. 며칠 지난 밤 무지개 기운이 창문으로 들어와 술독 주둥이에 박히길래 따라가 보니, 동굴 속에 고주망태가 된 여우 하나가 자빠져 자고 있는 게 아닌가. 그놈을 꽁꽁 묶어 내려오자 술에서 깨어나 하는 말이, "놓아주면 보답하리라"였다. 하여 풀어줬더니 가져다준 책이 도술 책이었다. 붉은 점을 찍어가며 술법을 익히는데, 어느 날 늙은 종이 아비 부음을 전하길래 통곡하며 나갔더니 종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보니 붉은 점을 찍은 페이지를 빼고는 나머지 책이 몽땅 잘려나가고 없었다. 전우치는 기행과 이적을 행하다가 명나라 자금성에서 황금대들보를 훔쳐와 어느 강변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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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는 도술 부리는 전우치가 살았고 글 쓰고 정치하는 정철이 살았다. 전우치가 황금을 숨겨놓은 들판에 비가 내리면 태목리 대밭은 서걱대며 춤을 춰댔다. /박종인 기자

전우치가 공부했던 절은 연동사다. 전남 담양에 있다. 전우치가 공부했다는 굴도 있다. 여우가 훔쳐 먹은 술은 지금 추성주라는 이름으로 복원돼 있다. 황금 대들보를 묻은 강은 영산강이다. 설에 따르면 황금을 찾기 위해 숱한 사람들이 강변과 들판을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대신 그들이 뒤집어엎은 땅은 곡식이 자라기 좋은 낙토(樂土)로 변해 해마다 풍년을 이루게 되었다. 영산강변 담양군 수북면에 있는 이 마을 행정명은 황금리이고 주민들은 마을을 황금마을이라 부른다.

태목리 대밭과 영산강

음력 5월 13일은 죽취일(竹醉日)이다. 죽미일(竹迷日)이라고도 한다. 대나무가 비에 취해서 옮겨 심거나 죽순을 잘라도 모른다는 날이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담양 사람들은 마을마다 대나무를 심고 술을 담갔다. 담양사람에게 대밭은 금밭이었다. 바구니며 빗이며 부채며 수저통까지 대나무로 만들던 1990년대까지 대나무는 금이었다. 나라가 윤택해지고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제품이 들어왔다. 담양 죽세공은 망했다. 1756년 담양 부사 이석희가 '추성지(秋城誌)'에서 '전주에서 이사 온 김씨 부부가 참빗을 만들면서 시작됐다'고 기록한 그 산업이 망한 것이다.

그런데 윤택해진 사람들은 플라스틱 빗으로 머리 곱게 빗고서 바로 그 대나무숲을 구경하러 담양으로 몰려드는 게 아닌가. 망했던 죽공업은 관광업으로 부활했다. 2003년에는 담양군에서 개인 대밭을 매입해 죽녹원이라는 대나무공원까지 만들었으니 말 다했다.

영산강 담양 습지. 대도시 광주와 한 뼘 거리인 이곳에 희귀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영산강 담양 습지. 대도시 광주와 한 뼘 거리인 이곳에 희귀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황금마을에서 강을 따라 서쪽에 있는 태목리 마을 대밭은 아득한 옛날부터 대나무가 자생하는 군락지다. 천연기념물이다. 대밭 앞 영산강 담양습지는 습지보호구역이다. 대도시 광주가 강 건너인데, 습지와 대숲에는 희귀식물과 동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다. 자, 대나무 숲에 안개처럼 비가 내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 몽환(夢幻) 속에 서서 댓잎 서걱대는 소리를 듣고 있는 선비를 떠올려보라. 선비 이름은 정철(鄭澈·1536~1593)이다.

16세기 지성의 완전체, 정철

정철은 대한민국 대밭 일 번지 담양에서 어린 시절과 늙은 시절을 보냈다. 담양에는 송강 정철이 남긴 흔적이 많다. 모두 관광지다. 정철은 몇몇 사화에 연루된 아버지 정유침을 따라 귀양살이를 했다. 큰형은 유배 전 곤장을 맞은 후유증으로 죽었다.

아버지 유배가 풀리고서 15세부터 26세까지 11년 동안 산 곳이 이곳 담양이다. 그 시기에 정철은 마음 독하게 공부를 했고 26세에 장원급제를 했다. 공부를 한 곳이 담양에 살던 여러 선비들 정자였으니 대표적인 곳이 환벽당이다. 나주 목사를 때려치우고 담양에 내려와 환벽당을 만든 김윤제는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고 환벽당 아래에서 소년 정철을 만났다. 제자로 삼음은 물론 외손녀와 결혼까지 시켰다. 송순, 임억령, 양산보 같은 쟁쟁한 스승들을 환벽당에서 만나 공부를 했다.

담양 여행지도

당대 최고 지성들의 지혜가 결집된 캐릭터가 바로 정철이다. 그들이 만든 정자 면앙정, 식영정, 소쇄원에 모두 정철 발자국이 찍혀 있다. 파락한 집안 출신에 최고 지성이 응축된 이 완전체는 문학으로는 가사문학의 완성자(시호가 문청(文淸)이다)요 정치적으로는 냉혹한(冷酷漢)으로 성장했다.

홍만종(洪萬宗)이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비길 만하다"고 극찬한 '사미인곡(思美人曲)'을 본다. 우선 원문. '이 몸 생겨날 제 임을 좇아 생겨나니/ 한평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젊어 있고 임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 다시 없다/ 평생에 원하기를 함께 가자 하였더니/ 늙어서 무슨 일로 홀로 두고 그리는고' 현대어로 풀이해본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각하를 흠모하였다. 이 운명을 하늘은 몰라주는가. 나는 젊은데 각하께서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사랑 비할 데가 따로 없다. 평생 나와 함께하겠다고 하셨는데, 늙은 지금 어이하여 각하께서는 나를 외면하시는가.'

아무리 군주가 곧 국가인 시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가. "주정뱅이에 말이 심하고 성격이 편협하다"라는 숱한 제보에도 "술 적당히 먹으라"는 충고를 했을 뿐, 선조 임금은 정철 편을 들곤 했다. 서인(西人)이던 정철은 기축사화 때 1000명이 넘는 동인(東人)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일가족이 몰살당한 이발 후손은 부엌칼로 고기를 다질 때면 '정철정철정철'하고 도마를 두드린다고 한다).

그 정철이 선조 눈 밖에 날 때마다 내려왔던 곳이 담양이고 선조를 향한 애정시를 쓴 곳이 담양이다. 정철은 훗날 강화도에 은거했다가 거기서 죽었다. 승정원일기에는 선조가 이렇게 후회했다고 기록돼 있다. "악독한 정철이 나의 어진 신하를 죽였다(毒澈殺我良臣)."

창평 삼지내마을과 창평 고씨

정철이 살았던 땅은 창평이다. 담양 남쪽이다. 장성, 곡성, 보성과 창평, 남평, 함평 이렇게 삼성삼평은 일제 강점기 '산조산뻬이'라 불렀다. 깡다구가 워낙 세서 일본인들이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고집과 기개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말이다. 창평 삼지내마을은 의병장 고경명 후손이 사는 집성촌이다. 동학 때 한 집안은 의병을 일으키고 한 집안은 군자금을 댔다. 개화기에는 영어선생을 서울에서 모셔와 가르칠 정도로 깨인 사람들이었다. 해방 후에도 후손들은 상당수 사법부와 행정부 고위관료를 지낸 명문가다. 그 사람들을 낳은 삼지내마을은 지금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흙과 돌로 쌓아 만든 마을 담장은 보기에도 일품이다. 담장 아래에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후손들이 다 출세하여 대처에 나가 사니, 삼지내마을 또한 빈집투성이요 관광객들이 잦아지며 그나마 문을 닫은 집투성이다. 그래도 푸근하다. 모든 것이 느리니까.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후손들이 사는 삼지내마을 토담.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후손들이 사는 삼지내마을 토담.

우리는 대숲을 걸었고 영산강변을 걸었고 피해의식과 문학적 감성이 혼재된 옛 사내 흔적을 보았다. 도사 전우치는 요술을 쓴다 하여 말년에 나라에서 사형 명령을 내렸다. 이 말에 전우치는 친구인 황해도 재령군수 박광우의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2년 뒤 누군가 박광우를 찾아와 전우치 지팡이를 달라기에 보니 전우치였다. 급히 무덤을 파보니 관이 비어 있었다. 2016년 가을, 담양 대숲에서 만난 그가 전우치인지도 모른다.

[담양 여행수첩]

〈볼거리〉

1. 태목리 대숲과 영산강 습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나무 자생 군락지. 대숲 앞 습지에서는 진귀한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영산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돼 있다. '용산교'를 검색한 뒤 지도에서 용산교 동쪽을 살필 것.

2. 환벽당: 송강 정철이 젊은 시절 공부했던 정자. 소쇄원 부근.

3. 삼지내마을: 의병장 고경명 후손들이 살고 있는 창평 고씨 집성촌. 완벽한 전통 마을은 아니지만, 슬로시티로 지정돼 혼잡한 도심 풍경을 피해 산책할 수 있는 마을이다. 관광객이 워낙 많아 민박, 식당, 체험 공방을 제외하면 문이 닫혀 있는 집이 많다. 대신 토담길 산책 적극 추천.

〈맛집〉

1. 창평국밥: 삼지내마을이 있는 창평면. 한우와 국밥이 유명하다. 면 소재지에 몰려 있다. '전통창평국밥' 창평면 사동길 8-1, (061)381-8253. 6000~7000원.

2. 광주 토호지: 담양과 맞붙은 광산구 월계동 맛집 골목. 삼계탕. 월계동 881-1, (062)953-1819, 1만4000~1만7000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http://travel.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05/20161005009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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