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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유럽문명 발상지 ‘크레타’, 달의 여신 ‘에페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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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신전 정중앙 입구에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조각이 새겨져 있다.

유럽문명 발상지 ‘크레타’, 달의 여신 ‘에페수스’

글 | 박정원 월간산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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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고향 ‘크레타’엔 신전이 없어
 
그리스신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신들은 언제부터 활동했으며, 인간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까? 간혹 인간과 신이 뒤섞인 조각과 그림이 나온다. 이 또한 어떻게 해서 나온 모습일까? 신과 인간은 위계가 없는 동격이었을까?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에 가면 갖게 되는 의문점들이다.

그리스에서 제일 큰 섬 크레타에는 사람 몸에 소의 얼굴을 한 반인반우(半人半牛)의 형상을 한 조각과 그림이 있다. 다른 어떤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형상과 그림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무엇을 상징할까? 내용을 담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것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고, 신화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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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에페수스는 고대 그리스와 같은 문화권으로서, 비슷한 건축양식과 신전 형태를 띤다. 사진은 에페수스의 원형극장. 당시 2만여 명 이상 수용했다고 한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 어느 곳을 가든지 신전이 있다.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크레타에는 신전이 없다.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정말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왜 없을까? 

이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고 크레타 섬으로 향했다. 지중해에서 시실리·사르디니아·키프로스·코르시카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섬 크레타는 유럽문명의 발상지라고 불린다. 왜, 어떻게 해서 유럽문명의 발상지가 됐을까? ‘신화의 나라’이자 ‘서양문명의 발상지’ 그리스에 가면 궁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크레타는 지중해에 있지만 그 절묘하고 독특한 지리적 위치 덕분에 소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문화를 받아들였던 듯하다. 시대를 앞선 문화는 다양한 문화 요충지로서의 지리적 위치에 있으면서 새로운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특징을 나타낸다. 크레타는 3개 대륙의 문화를 융합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융성하게 꽃 피웠다. 그리스 본토에 합병되기 전까지 유럽 최대의 문명권이었다. 

크레타섬에 발을 딛는 순간 굉장히 차분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예사롭지 않다. 차분한하고 좋은 기운은 고대문명 발상지를 방문할 때마다 받는다. 입지 선택에 다양한 자연적 요소가 고려됐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작지 않은 섬이지만 제법 높은 산도 보인다. 고대문명이 번성했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 영감은 곧바로 유럽 최초의 문명 발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역시 그렇지’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예사롭지 않은 크레타의 기운을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가이드는 크노소스에 있는 미노스 궁전으로 안내한다. 유럽 최초의 문명 발상지인 바로 그 유적이다. 가이드는 뚜렷한 영어발음으로 활기차게 설명한다. 너무 활기차고 빨라서 놓치는 부분이 많다. 조금 천천히 해달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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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신전 정중앙 입구에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조각이 새겨져 있다.

크레타는 신석기시대 왕궁으로 시대 구분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크레타섬의 역사를 기원전 8,000~6,000년 전으로 본다. 지금으로부터 최소 8,000년 전에 크레타섬에서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다고 파악한다. 그 시기는 신석기 시대(6000~2600 B.C.). 그 다음 시기를 왕궁 이전 시기(Pre-Palace period, 크노소스 신화의 미노스 왕의 집권시기)로 분류한다. 왕궁 이전 시기를 세분화해서 초기 미노아(Early Minoan: 2600~2000 B.C.), 중기 미노아(2000~1600 B.C.), 후기 미노아(1600~1100 B.C.)로 나눈다. 이어 고대 왕궁시기(Old Palace period: 1900~1700 B.C.), 새 왕궁시기(New Palace period: 1700~1450 B.C.), 후기 왕궁시기(Post-Palace period: 1450~1100 B.C.)가 이어진다. 하지만 미노스 왕국의 크레타 독자문명권은 여기까지다. B.C. 1400년경에 그리스 본토의 침입으로 미노스 왕국은 멸망하고, 오랜 세월 역사에서 잊혀진 채 신화로만 존재했다. 이후 지중해 문명의 중심은 크레타에서 그리스 본토로 넘어간다. 크레타는 그리스에서 지배세력이 넘어오면서 아카이안(Achaean)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세워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가 후기 왕궁시기로 본다.

이와 같이 크레타섬의 역사는 왕궁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크레타의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다른 고대 도시들이 대개 신이 모셔진 신전 중심의 도시라면, 크레타의 수도라 할 수 있는 크노소스는 왕궁 중심의 도시다. 따라서 궁전을 장식한 벽화에는 기하학 문양과 각종 동식물, 궁정 생활 등이 정밀하게 묘사돼 있다. 반면 신에 관한 장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독립된 신전은 없고, 신상(神像)이라 할 만한 조각상도 없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왕은 지배자인 동시에 최고의 신으로서 신성시된 것 아닌가 여겨진다. 이른바 제정일치의 사회다. 그리스와 같이 체계화된 신관(神觀)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신의 형태만 존재했던 듯하다.

그렇다고 크레타에 그리스 신의 존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리스의 지배를 받은 이후 지명부터 신과 관련된 창세신화가 등장한다. 물론 언제 이런 신화가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크레타라는 이름은 크레타의 가장 오래된 왕국인 미노스왕국의 ‘아스테리우스’의 딸에서 유래했다고 신화는 전한다. 아스테리우스는 제우스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낳은 에우로페(Europa)를 아내로 삼고, 그 자식들을 양자로 삼은 크레타 왕이다. 

여기서 잠시 그리스신화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크로노스가 천국의 왕이었을 때, 크로노스는 레아와 결혼을 하고 포세이돈(바다의 신), 하데스(죽음의 신), 헤스티아(화로와 불의 여신, 크로노스의 맏딸), 데메테르(곡물과 수확의 여신), 헤라(결혼과 가정의 여신)에 이어 제우스(주피터)를 낳는다. 제우스는 델피의 신탁에 따라 아버지인 크로노스로부터 왕위를 빼앗았다. 그리고 누나인 헤라와 결혼한다. 제우스는 워낙 호색한이었고 질투의 화신인 헤라를 부인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숱한 염문을 뿌린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에우로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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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섬 미노아왕궁의 많은 특징 중 하나가 건물을 떠받드는 기둥이 위는 두껍고 아래가 더 가늘다는 것이다.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가 크레타 왕위 계승

크레타섬은 ‘최고의 신’ 제우스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천국의 왕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인 우라노스와 어머니 가이아로부터 그의 아들 중 한 명이 그의 권력을 이어받을 강력한 힘을 가진 인물이 태어난다는 신탁을 듣는다. 크로노스는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즉시 삼켜버린다.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녀는 마지막 아들은 해를 입지 않도록 우라노스와 가이아에게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우라노스와 가이아는 가엾게 여겨 그를 크레타로 데려가서 ‘에게 산(Mount Aegean)’에 숨기라고 했다. 무사히 숨겨진 아들 제우스는 님프인 아말테이아가 양젖으로 양육한다. 그래서 아말테이아는 풍요의 상징이 된다.

어른이 된 제우스가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처단하고 왕이 된다. 제우스는 크로노스가 삼켰던 아들을 전부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제우스 대신 위장해서 삼키게 했던 돌도 토해내게 했다. 제우스는 이 돌을 델피의 파르나소스 산에 가져가  신탁(神託)의 돌로 삼게 했다. 그래서 신과 인간은 항상 그 돌을 보면서 제우스의 힘을 존경하고 감탄하도록 했다고 신화는 전한다.

그래서 제우스가 크레타 종족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럽의 역사가 크레타의 제우스로부터 시작한다는 신화와 연결된다. 시리아 연안의 고대국가인 페니키아의 아름다운 공주인 에우로페와 그녀의 친구들이 해변을 걷고 있을 때 제우스가 접근했다. 제우스는 흰색의 황소로 변신해서 그녀를 유혹했다. 그녀는 황소의 등에 올라타서 매우 즐겁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그 황소는 순식간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소의 등에 꽉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제우스는 그녀를 데리고 크레타 섬에 도착했다. 제우스는 크레타에서 에우로페와의 사이에 미노스, 라다만티스, 사르페돈 세 아들을 낳았다. 세 아들의 어머니인 에우로페가 지금의 유럽의 어원이 된다. 이로 인해 유럽문명의 발상지가 바로 크레타 섬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에우로페는 제우스의 주선으로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우스(별이 빛나는 하늘)와 결혼한다. 아스테리우스에 이어 크레타의 왕은 미노스가 잇는다. 미노스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인 파시파에와 결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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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최소 4,000여 년 이전에 건립된 크레타섬의 미노스왕궁이 한창 발굴 중이다. 사방은 평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 조금 솟은 지형에 왕궁을 건립했다.

반신반우 형상은 크레타에서 유래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에 의해, 아니 정확히 하면 파시파에에 의해 ‘반인반우’의 형상도 탄생한다.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이 되어 통치권을 공고히 했다. 그 세력을 더 다지기 위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또 포세이돈과 서로의 증표로 제물로 바칠 흰 소를 보내달라고 했다. 포세이돈은 보호를 약속하며 미노스 왕에게 흰 소를 보냈다. 그런데 미노스 왕은 너무 멋진 흰 소를 받고 마음이 변했다. 제물로 바치기 아까웠다. 그래서 유사한 다른 흰 소를 제물로 바쳤다. 화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 왕의 아내인 파시파에에게 흰 소에게 욕정을 느끼도록 저주를 내렸다. 그녀는 욕정을 참을 수 없어 최고의 장인 다이달로스(Daedalus)를 찾아가 속이 텅 빈 나무로 만든 암소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나무 암소 안에 들어가 흰 소와 결합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미노타우로스(미노스 왕의 소라는 뜻)’다.

화가 난 미노스 왕은 마찬가지로 다이달로스에게 궁전 지하에 미궁을 짓게 한 다음 미노타우로스를 가뒀다. 아테네에서 잡혀온 소년과 소녀를 미궁 속으로 내려보내 미노타우로스의 먹잇감이 되게 했다. 다이달로스가 지은 궁전이 바로 지금 유적으로 남아 있는 크노소스의 미노스 궁전이다. 이 궁전은 또한 미로의 유래가 된 바로 그 궁전이다.

이와 같이 크레타 섬은 에우로페 왕비의 이름에서 유래한 유럽의 어원이 되고, 유럽 문명의 발상지이며, 반인반우의 신화가 탄생한 곳이다. 또한 제우스의 주요 성장지이며, 세 아들을 낳은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그리스신화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인간과 신이 어울리는 그런 공간이기도 한 곳이다.

현지 해설사의 안내로 미노스 왕궁 안으로 들어간다. 찬란했던 왕궁은 사라지고 없지만 수천 년 전의 그 흔적은 고스란히 그 영광을 대변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이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데 왕궁 터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산세가 전형적인 토체의 산이다. 토체의 산은 오행에서는 정중앙을 가리키며, 왕이 나올 형국이라고 한다. 중국의 중악 숭산도 사방이 토체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표적인 산은 남아공의 테이블마운틴이다. 한 방향만 평평한 토체가 아니라 사방이 토체다. 신기한 그 형체에 눈을 뗄 수 없다. 동양에서는 토체, 화체, 목체를 따지겠지만 서양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크레타에서 누가 그 형세를 보고 입지를 선택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문명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연적 입지적 조건을 상당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델피도 그렇고, 아테네도 그렇고…. 자연적 조건과 그 지역의 신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사실을 이미 지난번에 확인했다.

사방 토체의 산에서 동쪽으로 문필봉과 같은 목체의 산이 우뚝 솟아 있다. ‘아, 이럴 수 있나’ 싶다. 오행에서 동악이 목체의 산이며, 흔히들 문필봉이라고 한다. 사방 평평한데 어찌 동쪽만 문필봉이 솟아 있을까. 절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서양에서도 오행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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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아왕궁의 벽면에는 당시 모습을 볼 수 있는 각종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람과 동물에서부터 고래의 모습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미노아왕궁의 어디에도 신에 대한 벽화는 없다.

궁전 내부 어디서도 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전부 벽화나 항아리에도 기하학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궁전을 장식한 벽화는 각종 동식물, 궁정생활 등이 정밀하게 묘사돼 있다. 벽화는 동물의 모습에서부터 고래가 노는 모습까지 다양하다. 목욕탕에 상하수도까지 보인다.

건물을 지탱하는 둥근 기둥은 위가 두껍고 아래가 가늘다. 상식적으로는 위가 가늘어야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분명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하다. 이 궁전은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에 건립됐다. 도저히 상상이 안 될 정도다. 신화로만 전하던 미노스 문명을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가 19세기에 발굴하기까지 무려 4,000년 가까이 지하에 묻혀 있었다. 미노스 문명에 푹 빠져 있던 에번스는 이를 신화가 아닌 역사로 끄집어냈다. 그의 동상이 궁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무려 8만여 명이 살았다고 전한다. 크노소스 사방 2㎞ 지역 안에 궁전과 별궁, 주택, 무덤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고 한다. 궁전은 정말 미로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연결 통로가 매우 복잡하다. 과연 미노타우로스의 미궁답다. 지중해에서 화려하게 꽃 피웠던 크레타문명을 확인하고 떠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우리는 아직 신화로만 존재하는 단군신화가 과연 역사로 탄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한편으로 그들의 과거 찬란했던 문명이 부럽다. 문명의 발상지였던 지중해가 지금은 시리아 난민으로 인한 죽음의 바다로 변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떠나는 길에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다음은 터키 에페수스(Ephesus)로 간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에페수스는 라틴어이고, 영어로는 에페스(Efes). 사실 터키 서쪽 연안은 고대 그리스와 동일 문화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페수스와 트로이 등은 모두 그리스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신전과 건축양식도 비슷하다. 구조와 입지조건이 별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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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아왕궁의 지하 시설엔 당시 목욕탕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벽에 그려진 벽화가 눈길을 끈다.

에페수스 셀수스도서관은 고대 3대 도서관

에페수스는 아네테의 왕자 안드로클로스가 세운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꼽히는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과 당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인 셀수스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안드로클로스는 아테네에 새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델피에 신탁을 한다. 예언자는 “멧돼지와 불과 물고기가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면 번성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바다(지중해)를 건너 어느 곳에 도착,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고 있었다. 마침 그때 숲에서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죽이게 된다. 멧돼지와 불과 물고기가 딱 맞아 떨어졌다. 안드로클로스는 바로 그곳에 도시를 세운다. 그때가 B.C. 7C경, 그 도시가 바로 성경에 에베소로 나오는 에페수스다. 

에페수스로 들어서는 순간 정말 고대 도시의 입지조건은 하나같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사방은 평평한 산으로 덮여 있고, 가운데 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크레타와 아테네의 입지조건과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에페수스엔 신전이 있다. 바로 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신전이다.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에페수스인들에게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 받던 대상이었다. 또한 순결과 자애의 처녀신으로도 통했다. 이후 태양신 아폴론에 대비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로 거듭났다.

에페수스에도 다른 고대도시와 마찬가지로 폐허가 된 유물만 남아 있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하다. 상수도와 하수도, 목욕탕과 공중화장실, 아궁이 등 형체만 알아볼 정도로 남아 있다. 화장실은 오픈 공간으로 앉아서 볼일 보면 그 밑으로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이 오물을 씻어 내려가도록 만들었다. 목욕탕 앞에는 유곽이 있다. 사창가다. 방향을 가리키는 듯한 왼쪽발 모양과 나란히 오른쪽에 여자 얼굴, 그 위에 ‘+’, 그리고 거기서 45도 왼쪽 위로 하트표시와 구멍을 나란히 새기고 있다. 여자가 있는 집이 이쪽 방향 위에 있고, 발 크기가 기준 이상 돼야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표시다.

가이드는 “왼쪽으로 가면 당신의 상처 난 영혼을 치료해 줄 아름다운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석을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듯하다. 모두들 발을 재본다. 제법 발이 크다. 나름 성인으로 기준을 잡은 듯하다.

유곽 바로 앞에 고대 세계 3대 도서관인 셀수스도서관이 있다. 도서관과 사창가, 이 무슨 조화인가. 공부하다 지치면 잠시 쉬어가면서 하라는 의미인가. 고대 서양에서는 성(性)을 숨기려거나 나쁘게만 보지 않은 듯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적당히 해소하는 게 인간의 본능으로 해석하지 않았나 싶다. 로마에서는 너무 지나쳐 결국 멸망을 자초했지만.

B.C. 6세기경 건축됐다는 셀수스도서관(Celsus library)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 전에 1만 권의 장서를 보유했다고 전한다. 당시 파피루스를 수출하던 이집트에서 셀수스도서관이 너무 커지자 견제하기 위해 아예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했다고 한다. 에페수스는 파피루스 수입을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양피질로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양피산업과 양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양가죽은 터키제품을 최고로 평가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셀수스도서관의 책들과 건물은 서기 250년쯤 고트족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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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평평한 산으로 둘러싸인 데 반해 동쪽에는 문필봉 모양의 우뚝한 산이 솟아 있다.

조금 더 가면 원형극장이 나온다. 피온산 기슭에 있는 에페수스 대극장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건축물이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2만4,000여 명이 수용가능한 극장이다. 정면 3층의 무대 건물은 무려 18m에 달했으나 1층만 남아 있다. 아직도 활용 가능한 건물로 보인다. 그 옛날 에페수스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하다. 에페수스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다. 에페수스를 한 바퀴 돌아본 뒤 이 도시가 왜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신전의 주인으로 모셨을까 하는 의문이 조금 풀렸다. 도시는 매우 안정적이지만 음기가 잔잔히 흐르는 듯했다. 중간은 강이 흘러 물이 넘쳐 났다. 자연 도시가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성이 많은 도시는 번성하게 돼 있다. 남자뿐인 도시는 십중팔구 곧 망한다. 아르테미스가 이 도시를 지배하던 당시는 분명 매우 번성했을 것이다. 아르테미스신전 입구에 조각으로 새겨져 있는 아르테미스 상이 그 사실을 대변하는 듯했다.

크레타와 에페수스, 두 도시는 전혀 다른 지형과 자연환경을 가졌지만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사방이 평평한 산으로 둘러싸인 안정적인 기반에 도시를 건설했다. 고대도시의 입지조건은 결국 동서양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褪於日光則爲歷史, 染於月色則爲神話).’

소설가 이병주가 자주 쓰던 아포리즘이다. 태양의 신과 달의 여신을 모시던 고대 도시들이 서서히 신화에서 역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하의 세계에서 드디어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역사, 아니 신화도 그런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